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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따기죠?"
경기도 성남에 있는 은행초등학교 이상선(62) 교장이 만나자마자 던진 첫마디다. 그는 지난 3월 중순께 "소년신문 구독하지 않는 학교를 찾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라면서 밝게 웃었다.

"구독 거부는 하늘의 별따기"

사실이 그랬다. 서울만 해도 '학교는 신문지국, 교사는 신문 배달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재 서울에 있는 국공립 초등학교 500여 개 가운데 소년신문을 구독하지 않는 학교로 지난해 10월 교육청에서 파악한 학교는 서울ㄴ초와 서울ㅅ초. 서울ㄴ초는 잘못된 보고였고, 서울ㅅ초는 '전교생이 300명밖에 안 돼 볼 수 없었다'고 이 학교 교사가 말했다.

그럼 '별 따기'보다도 힘든 것이 소년신문 구독 거부란 말인가. 지난 99년 10월부터 학교 어린이들이 보던 소년ㄷ일보 거부를 선언한 이 교장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선생님들과 합의 속에 기존에 보던 소년신문의 학교배달 체계를 없앴어요. 이 결정을 내린 다음 퇴근 할 때 등뒤를 자꾸 돌아봤죠.-"
소년신문 거부 결정을 내리자 신문지국에서 여러 차례 찾아오고, 전화가 걸려왔다.

이 교장은 "언론이 보도할 학교 비리가 없었기 때문에 다행이었지만, '불안'을 느낄 정도로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은행초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53학급에 학생 2360여 명이 있는 큰 규모 학교다. 이 학교 교사들이 이처럼 '어려운 결단'을 내린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이 교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신문도 일반 문제집과 다름없는 상품인데 교사가 배달하는 게 말이 됩니까. 더구나 신문에 실린 단순 문제 풀이식 학습지는 아이들의 창의성 개발을 막고 있어요. 교사들이 전문가로서 신문내용을 정확히 봐야지 그저 지시대로 배달하는 모습은 참 안타까웠습니다."

가정 구독자 0명

소년신문 배달 거부 3년, 이 학교에서 어른신문처럼 집에서 소년신문을 받아보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6학년 3반 학생 43명한테 '집에서 구독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한 결과 손을 든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반면, 3년 전 학교 구독할 때 신문을 받아본 학생은 29명이나 되었다.

담임을 맡은 이은진(32) 교사는 이런 결과를 보고 혀를 찼다.
"이전 학교에서는 관리자가 신문 보게 하라고 하니까 할 수 없이 아침자습 같은 걸 시키기도 했죠. 하지만, 이 학교는 학교에서 신문을 보지 않으니까 아이들도 신문을 볼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이날 만난 이 학교 교사들은 모두 '학교에서 소년신문을 보지 않아 불편한 점은 전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은행초 정문 왼편에 붙어 있는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안내판'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이 지역은 환경위생 정화구역으로 설정된 지역으로써 학생의 학습에 나쁜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경기도 성남교육장"

냉전 사고를 심어주는 소년조선일보를 비롯한 소년신문을 아침마다 배달하는 초등교사들이 새겨 읽어야 할 글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주간'교육희망' 297호에 실린 내용을 깁고 고쳐 다시 쓴 것입니다. 

* 오늘 오마이뉴스 2월 게릴라상 상품을 받아보았는데요. 무엇보다 기자수첩을 상자 가득 주신 게 정말 고맙고 좋았습니다. 열심히 취재하면서 글쓰라는 운영진의 따뜻한 마음이 배어있는 듯 해서 기분도 좋고 그랬습니다. 

이 소년신문 문제는 생각보다 아주 심각한 학교 안 고질병입니다. 교육당국은 '강제구독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학교에서 지국 노릇하면서 교사가 배달하는 체제 자체 이상의 강제구독 체제가 또 어디 있을까요? 이 체제를 바꾸자는 운동이 이제 서서히 일고 있습니다. 다 오마이뉴스 덕입니다. 

<초등교육 현장고발> 1탄 으로 이 소년신문이 보도된 다음, 3월 12일치 한겨레신문(1면 톱), 기독교방송(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1시간) 등에서 잇따라 보도했습니다. 이번주 금요일(29일)엔 MBC 미디어비평에서 이 문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또 인물과 사상 5월호도 소년신문 문제를 다룰 계획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쎄긴 쎈 모양입니다. 
앞으로 일주일 쯤 후에 <소년조선일보> 내용 분석 기사를 싣겠습니다. 그럼 그 때 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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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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