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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외출 한 번 하기가 하늘에 별따기가 되었다. 차가 없을 때는 더 했다. 두 아이를 안고 잡고 이리저리 뛰다가 버스를 타면 꼭 한 가지씩 잃어버렸다. 모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고, 신발에, 큰 녀석에게 메게 한 조그만 배낭에, 핸드폰까지 합하면 한 재산 날린 듯싶다.

이제 아이가 셋이 되었으니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셋째를 막 가져서 중고차를 한 대 산 덕에 뭘 잃어버리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일은 전쟁이다.

가까운 할인점이나 먼 데 있는 결혼식장에 갈 때 챙겨야 할 짐만 한 보따리. 셋짼 아직 우유를 먹기 때문에 젖병은 필수이고, 손수건에 휴지에 물티슈와 몇 개의 기저귀를 가져가야 한다. 멀리 갈 경우는 5살짜리가 실수할 경우를 대비해 속옷 한 벌도 챙겨야 하고, 차 안에서 먹을 간식거리도 있어야 한다.

세 아이가 모두 장난감을 가져가고 싶어하면 넣어둘 조그만 가방도 가져간다. 겨울철엔 세 아이의 모자와 목도리도 한 짐이다. 씻기고 옷 입히고 족히 30분은 걸리는데 작은 아이 유모차를 끌고 문을 잠그면 비로소 외출의 시작이다.

아이를 태우고 가방을 싣고 유모차를 트렁크에 넣는 일도 사실 보통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란 원래 바깥에만 나가면 천방지축이므로 한쪽에서 노는 녀석 소리질러 타게 하고, 카시트에 앉기 싫어 울어대는 막내를 달래고 문을 닫는 일까지 후닥닥 해치우지 않으면 마냥 시간만 가는 것이다.

다 태우고 나면 문제가 끝나는가? 5분 거리든 10분 거리를 갈 때도 큰 녀석이 멀미를 하는지 "엄마, 토할 것 같아. 머리가 아파" 징징거리고 작은 녀석은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 테이프를 틀어달라고 조른다. 카시트에 앉은 막내는 아직도 훌쩍거리고, 벌써 괜히 나왔다 싶다.

오늘은 똑같이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친구들과 백화점에서 만나기로 한 날. 우리 집만 해도 아이가 세 명인데 두 아줌마 친구들도 젖먹이 한 명과 뛰어다니는 4살, 5살 여자아이가 한 명씩인지라, 아줌마 세 명이 만나면 어른 세 명에 아이들만 여섯 명이다. 밥은 어찌어찌 해서 먹었다쳐도 서로 이야기를 하거나 눈요기 쇼핑이라도 할라치면 다 데리고 다닐 수가 없다.

아줌마가 가장 열받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도대체가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거다. 물론 할인점이나 백화점마다 놀이방이 있긴 하다. 그러나 다 유료다. 대개 시간당 1500원에서 2000원씩 받는다. 네 명이면 6000원에서 많게는 1만 원 정도 든다. 1시간이 넘어가면 조금 낮은 추가요금이 들긴 하나 아이가 둘 이상이면 만만치가 않다.

물론 무료도 있다. 하지만 무료라서 그런지 덜렁 미끄럼틀 하나, 볼풀장 하나인 정도이고 백화점 경우는 비디오도 틀어주긴 한다. 그 곳의 이용자는 대부분 미취학 아동 이하만 받아서 초등학생인 첫째는 천상 유료로 가야 한다. 그나마 할인점이나 백화점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극장이나 결혼식장은 아예 놀이방도 없거니와 화장실엔 기저귀 갈만한 베이비 부스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놀이방에 보낸다고 해도 걱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놀이방엔 전문적인 아동 담당자가 없다. 보통은 젊은 사람이나 아줌마들이 아르바이트로 하기 때문에 늘상 위험이 따른다. 놀이방에 보내본 아줌마들은 다 알 것이다.

실내 놀이터가 세트로 되어 있는데 부딪히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기둥마다 두툼한 완충장치는 잘 돼 있지만 간혹 칸막이가 그물로 되어 있는 곳이 있다. 볼풀장이나 미끄럼틀의 옆면에 설치되어 있는데 그 그물이 대단히 질긴데다 그물 구멍 사이가 넓은 편이라 손이나 발이라도 걸리면 약한 아이들의 팔이 빠질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노는 아이들의 연령차가 다양하다 보니 나이가 많은 아이들은 잘 피해 다니지만 상대적으로 어린 아이들은 위험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화장실도 안에 설치된 곳이 거의 없다. 다 복도로 나가서 한참 걸어가야 한다. 이쯤 되면 맡겨도 걱정이다. 상황이 이러니 아이 딸린 아줌마들은 외출을 하라는 건지 하지 말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돈 문제나 사고 위험 때문에 하는 수없이 데리고 다녀도 골치 아프긴 매한가지다. 물건 가격이라도 물어보려고 한 곳에 잠시 서 있으면 한 녀석이 꼭 안 보인다.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다. 한 층을 다 뒤져서 찾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어느 새 미아보호소에 가 있는 경우도 있다.

뿐인가. 사달라고 하는 건 뭐 그리 많은지 "다음에 사줄게, 말 잘 들으면 사줄게" 달래고 어르다 보면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치고 쇼핑은 이미 물건너간 것이 된다. 싸구려라도 손에 쥐어야 조용해지는 아이들을 끌고 몇 번씩 내가 왜 나왔을까만 반복하게 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아줌마가 아이들 데리고 쉽게 갈 곳이 여기 말고 또 어디 있다고.

볼일을 다 보고 아이를 데리고 나와도 외출이 끝난 것은 아니다. 다시 차에 태우고 집으로 향하면 어린 녀석은 잠들어 있다. 한 아이만 잠들면 큰 아이들은 걷게 하면 되지만 두 명이 잠들면 집과 차를 서너 번 왔다 갔다 해야 한다. 짐도 꺼내야 하니까.

가방이나 쇼핑백까지 가져온 뒤에도 할 일은 태산이다. 세 아이들이 벗어 던진 옷을 다 챙겨놓고, 젖병 꺼내 놓고 정리하고, 씻기고, 옷 갈아 입히고, 외출 이전 상태로 돌아오기까지 한참이다. 대충 치우고 저녁 준비 하다보면 어라, 난 씻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매번 외출이 끝날 때마다 내 혀를 씹으며 다시는 아이들 데리고 외출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지만 어디 가능한 일인가.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상황은 나아지겠지만 적어도 초등학교는 졸업해야 될 성싶은데 그러자면 아직도 10년이나 남았다. 어쨌거나 나야 10년 후엔 가볍게 외출할 수 있다지만 아줌마들의 외출전쟁은 앞으로도 기약 없이 계속될 게다.

덧붙이는 글 | 사람마다 세상사를 보는 눈은 다릅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똑같은 사건도 각기 다르게 해석합니다. 오늘 우리는 아줌마들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려 합니다. 거창하게 페미니즘을 말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아줌마들의 시각으로 전하고자 할 뿐입니다. '아줌마들만 봐!' 연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오늘부터 약 2주간 한 편의 글이 '아줌마들만 봐!' 타이틀로 오마이뉴스에 연재될 것입니다. 남편을 말한다(2월 18∼19일), 결혼을 말한다(2월 20∼22일), 아줌마를 말한다(2월 23∼26일), 육아를 말한다(2월 27∼ 3월 1일), 나를 말한다(3월 2일 ∼ 4일)의 소제목에 따라 각각 두세 편의 글을 올립니다. 

마침 2월 22일은 오마이뉴스 창간 2주년입니다. 우리는 이 기획연재에 아줌마 뉴스게릴라들의 동참을 기꺼이 환영합니다. 
- '아줌마들만 봐!'연재 참가자 일동 

이현주- 세 아이를 가진 전업주부로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만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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