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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천둥 속에서도 아름답게 피어 있는 진달래.
지난 밤 천둥 속에서도 아름답게 피어 있는 진달래. ⓒ 김현
새벽부터 천둥이 요동치고 번개가 번쩍거립니다. 거센 바람이 조금 일찍 핀 봄꽃들을 우수수 길 위로 나뒹굴게 합니다. 그 천둥과 번개와 먹구름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을 보고 있으려니 미당의 '국화 옆에서'란 시의 구절이 떠오릅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개나리.
개나리. ⓒ 김현
어찌 한 송이 국화꽃만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울고, 먹구름 속에서 천둥이 그렇게 요란하게 울었겠습니까. 봄이 되면 흔히 보는 진달래, 개나리도 인고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며, 막 꽃눈을 틔우며 작고 고운 흰 꽃의 미소를 살짝 웃는 조팝나무의 꽃도 아주 긴 시간을 참고 견뎠을 것입니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목련꽃을 바라봅니다. 눈물 한 방울 머금고 있는 꽃잎에서 청초한 소녀의 모습이 아니라 원숙한 한 여인을 바라봅니다. 그러고 보면 누님같이 생긴 꽃은 국화가 아니라 목련이 아닌지 싶습니다. 목련꽃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누님의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곱디 고운 얼굴을 하고 양 볼이 살포시 패인 모습으로 환하게 웃는 누님의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목련.
목련. ⓒ 김현
사실 난 '누님'이란 단어에 어떤 갈증 같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만 있는 우리 집에서 누님이란 단어를 만나며 이상하게 가슴이 떨려오곤 했습니다. 어릴 땐 나에게도 누님 아니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언제나 저 마음 한쪽에서만의 생각일 뿐 입 밖에 내 본 적은 없습니다.

가끔 내 갓난아이일 때 여섯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누님 이야길 하며 눈물짓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떻게 생겼을까 그려보곤 했습니다. 사진 한 장 없는 누님의 얼굴은 낯선 연상의 여인에 대한 그리움이 되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십대가 끝날 무렵까진 연상의 여인을 좋아했고 노래도 '연상의 여인'을 즐겨 들었고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연상의 여인을 한 번도 사랑한 적은 없지만 왠지 그 노래가 좋아 흥얼거리곤 했습니다. 특히 "내 젊음을 엮어서 내 영혼을 엮어서 / 사랑했던 여인 연상의 여인 / 못다한 사랑이 못다한 내 노래가 / 그리운 마음에서 내 곁을 스치네"란 가사를 흥얼거릴 땐 정말 그런 여인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간절히 염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든 여성이 있어도 입 밖으로 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젊은 날은 흘러갔고 연상의 여인이 아닌 연하의 여인을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동백.
동백. ⓒ 김현
봄이 무르익습니다. 터질 듯한 꽃봉오리가 하늘을 향해 유리알을 비추는 듯합니다. 길가나 아파트 주변에 듬성듬성 심어놓은 동백은 이제야 붉은 얼굴을 활짝 비춥니다. 붉은 동백을 보면 동백꽃의 마을에서 태어나 동백의 품에 묻힌 미당 서정주님이 걸쭉한 입담이 육자배기 가락처럼 들려옵니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모두


이 시는 선운사 입구의 시비에 새겨진 글입니다. 아주 오래 전 선운사에 들렀을 때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조금은 세월을 살고 나서 접하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게 있습니다. 이 시가 그렇습니다. 시를 읽어가며 동백이 아닌 한 주막집 주인여자의 느릿한 노래를 듣는 생각을 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 적다한 즐거움을 줍니다.

허면 동백을 보러 갔다가 동백은 보지 못하고 절 입구에 쭉 늘어선 주막집에서 느릿하면서 구슬픈 육자배기 한 가락에 막걸리 한 입 훔치면 어떤 맛일까요.

조팝나무꽃.
조팝나무꽃. ⓒ 김현
어떤 시인은 이 시를 읽으며 무릎을 치며 이렇게 감탄했다고 합니다. 정작 동백이 피어 있는 곳은 숱한 삶들이 머물다 떠나가며 기쁨과 슬픔이 닳도록 묻히는 막걸릿집이라고요. 질퍽한 육담이 오고 가고, 낭자한 막걸리냄새 속에서 작년의 동백이 쉰 목소리로 피어나는 육자배기 노랫가락이 어쩌면 붉게 피는 동백보다 아름다울지 모릅니다.

꽃이 피면 집니다. 그게 자연의 순리입니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피어 있는 것의 아름다움만 볼 뿐 피기까지의 아픔이나 슬픔, 인고의 세월은 생각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꽃들을 보며 생각해 봅니다.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속에 숨어 있을 인고의 삶을.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것처럼 젊은 날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먹구름 속에서 천둥처럼 울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꽃은 그리운 것들을 위해 피는지 모른다고.

명자꽃.
명자꽃.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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