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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치 미츠루의 <터치>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 ⓒ 대원씨아이
그렇다고 <터치>가 ‘전통’을 아주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터치>는 전통을 존중한다. ‘고시엔’을 목표로 추구하는 것도 그렇고, 캐릭터들이 ‘대상’을 목표로 설정해 그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도 그렇다.

쌍둥이 형제는 직접적인 말보다는, 깊은 의미가 숨겨진 눈동자와 제스처로 드러내지만, 어떤 캐릭터들은 일그러진 행동으로 잘못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터치>는 눈물을 펑펑 흘리지도 않으며, <거인의 별>처럼 밥상을 뒤엎지도 않는다. 고도성장을 추구하기 위해 무작정 혼신의 힘을 다할 시대는 지났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간접적인 서사로 ‘카인 콤플렉스’를 다루는 것 같았던 <바벨 2세>와는 달리, <터치>는 직접적이라는 점이다. 흐리멍텅한 형 ‘카즈야’와 천재적인 동생 ‘타츠야’는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지만, ‘미나미’라는 소꿉친구를 두고 미묘한 감정을 나누며, 서로를 의식한다.

야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스타로 군림하는 동생이지만, 어린 시절 자신보다 더 빠른 강속구를 던지며 재능을 드러냈던 형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타 학교의 라이벌들은 ‘타츠야’를 극복하기 위해 열성을 기울이지만, 그가 생각하는 마음 속의 라이벌은 오직 형 ‘캬즈야’ 뿐이다. ‘카즈야’가 날개를 펼쳐 비상을 시도할 경우, 누구보다 무서운 상대가 될 것이란 점은 단 몇 분의 차이를 두고 태어난 동생이기에 더 잘 아는 것이다.

<터치>는 ‘타츠야’를 갑작스럽게 사망으로 처리하면서, 이야기를 급회전시킨다. 하지만 어떤 캐릭터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특유의 할말 많은 눈빛과 표정으로 숨겨두고 있으며, 그 암울한 상황에서도 아다치 미쓰루 특유의 쿨한 유머도 여전한 맛을 자랑한다. 그리고 “우에스기 타츠야는 죽어버렸기 때문에, 극복할 기회조차 사라져버렸다”는 타 학교 라이벌들의 탄식이 강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이젠 ‘카즈야’의 어깨에 무거운 짐이 옮겨진 것이다. 천재적인 동생은 이제 죽었기 때문에, 언제까지고 흐리멍텅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지껏 찾지 못했던 자신의 자아도 확실하게 찾아야만 한다. 형제가 동시에 사랑했던 ‘미나미’의 꿈을 이제는 혼자 일궈내야 했으며, 형제 간의 부담스러운 싸움을 애써 피해야 하는 이유도 없어진 것이다.

죽은 동생의 꿈을 대신하기 위해 온몸을 불사른다는 ‘열혈 코드’도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쿨하지만, 열혈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만화 <터치>는 그런 작품이었다. 어떤 인간도 피가 꿈틀거리는 이상, ‘열혈’을 무시할 수는 없다. <터치>는 그 표현 방식을 달리 했을 뿐이고, 그것이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이다.

애니메이션판 <터치>의 한 장면
애니메이션판 <터치>의 한 장면 ⓒ 후지TV

실망스러운 이누도 잇신의 영화 <터치>

일본에서는 <터치>가 영화로 제작됐다. 감독은 <메종 드 히미코>의 이누도 잇신이다. 주장이나 강요 없이, 편하고 사랑스럽게 영화를 연출한다는 장점이 있는 이누도 잇신이었기 때문에, ‘이누도 잇신과 <터치>’는 일면 궁합이 잘 맞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판 <터치>에는 ‘눈물’이 나온다. ‘눈물’이 나오면서, 만화가 일관적으로 견지했던 ‘쿨한 매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나가사와 마사미라는 어여쁜 아이돌 스타가 ‘미나미’로 출연하면서, <터치>는 그저 연애영화가 돼버린다.

형제를 두고 갈등하고 기울임없이 응원하면서도, 은근하게 자신의 꿈을 이뤄나가던 완벽한 여성 ‘아사쿠라 미나미’는 그녀의 출연, 그리고 그녀가 펑펑 흘려대는 눈물로 인해 변질돼 버린다. 영화 속의 그녀는, 형제 중 누가 먼저 자신의 꿈을 이뤄줄지 떼나 써대는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 이래서야 <터치>의 맛을 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2시간 내외의 영화가 26권 분량의 만화를 모두 소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고, 그런 기대를 해서도 안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핵심적으로 살려야 할 부분은 분명하게 있는 것이다. 성공적인 각색에 성공한 작품은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잘 파악한 작품들이다.

<터치>의 핵심은 이누도 잇신을 만나 완전하게 사라져 버렸다. 온갖 콤플렉스와 목표 추구가 충돌하던 성장의 현장을 이누도 잇신은, 그저 흥미있는 연애사건의 장으로 만들어버렸을 뿐이다. 나름의 색깔이 있던 캐릭터들의 맛도 완전히 날려버렸다. ‘카즈야’와 ‘미나미’의 주변에서 무게감있는 조언자 역할을 하던 ‘하라다’도 이누도 잇신의 손길에서는 순간의 조연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

영화판 <터치>의 한 장면, 만화의 맛을 날려버린 한 장면이다.
영화판 <터치>의 한 장면, 만화의 맛을 날려버린 한 장면이다. ⓒ 토호영화사

<터치>의 '무언가'는 여전한 의미가 있다

연애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사건이며, 소중한 일상과 추억이 되곤 한다. 하지만 연애가 다는 아니다. 연애는 수많은 일상 속의 사건들 중에서 제법 비중이 큰 일일 뿐,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각자의 꿈과 희망이 있으며, 야망도 있는 법이다.

영화판 <터치>는 이누도 잇신답지 않게, 야구도, 그리고 형제의 감정도 모두 ‘미나미’의 개인적인 감정에 종속시킨다. 예쁜 아이돌 스타의 매력을 잘 살려야 했기 때문일까? 그녀가 눈물을 펑펑 흘리고, ‘카즈야’에게 떼를 쓰는 그 순간, 필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개인적인 감상을 전한다.

때로는 직접적인 눈물과 ‘떼’보다는, 순간의 눈빛과 지나가는듯한 한 마디가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것이 바로 <터치>가 추구했던 표현 방식이며, 우리 세대가 환호하는 정서이기도 하다. ‘들이대면’ 때로는 징그러울 때도 있다.

<터치>는 그 금언을 너무도 잘 알고 있던 만화였다. 탄생한지 20여 년이 지난 만화에서 여전한 감각이 느껴진다면, 현대에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터치>의 그 ‘무언가’는 결국 우리에게도 여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신문 필진네트워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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