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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6세대 로봇'이라던 노인 간호 침대. 편리한 기능이 두루 갖춰 있다.
일명 '6세대 로봇'이라던 노인 간호 침대. 편리한 기능이 두루 갖춰 있다. ⓒ 후지TV
이 침대는 노인의 급환에 대해 적절한 처방과 약 조제에 대해 판단할 수 있으며, 식사와 배변, 샤워와 옷 입혀주는 일, 심지어 컴퓨터 게임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애초에는 찬사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선택된 80대 노인 '타카자와 키주로'는 최초로 이 침대의 체험자로 선택되면서, Z-001호로 명명된다. 하지만 그의 간호를 도맡던 간호사 '하루코'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오랜 시간동안 그를 지켜봤기에 알 수밖에 없는 그녀만의 육감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도 흔히 나오는 설정이지만, 인간의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획기적인 기계장치의 탄생은 곧 비극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

<노인 Z>에서도 마찬가지다. <노인 Z>의 궁극적인 이야기는 이 만능 침대가 노인의 자아와 연결돼 폭주하면서 일어나는 일대 소동을 소재로 한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일대 소동에는 '하루꼬'가 근무하는 병원의 노인 환자들도 깊이 관여돼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 작품에서 왕년에 꽤 날렸을 법한 컴퓨터 해커로 등장하는데, 아직 녹슬지 않은 실력으로 메카닉으로 돌변해버린 노인의 침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다.

게다가 침대가 메카닉으로 돌변해 소동을 일으키는 '폭주'까지 같이 생각해본다면, 오토모 가쓰히로의 생각은 분명하게 짐작할 수 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노인에게도 그 자신의 분명한 주체성이 있으며, 치매나 중풍, 심장병 등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할지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침대가 메카닉으로 돌변하기까지, 노인의 의식을 움직이는 '무언가'는 그에 대한 절박함까지 느껴진다.

소동 해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노인 해커단'
소동 해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노인 해커단' ⓒ 후지TV
실버 콤플렉스, '노인의 주체성'으로 극복하라

이 간호침대는 분명 편리한 기계였지만, 중병에 걸린 고령의 노인을 더는 인간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간호사 '하루꼬'가 느낀 불안감의 정체였으며, '노인 해커단'이 왕년의 솜씨를 자랑하는 계기인 것이다.

중간중간에 미모에 풍만한 몸매까지 겸비한 '하루코'를 이용한, 성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장면 역시 그들 역시 엄연한 인간임을 증명하는, 오토모 가쓰히로 특유의 센스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노인 성욕의 문제 역시 우리 영화 <죽어도 좋아!>가 증명하듯,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오토모 가쓰히로가 <동몽>에서도 중시했던 현실의 부조리는 '단절'이었다. 노인문제의 근본적인 이유는 '단절'로부터 비롯된다. 현대 사회에서 일상에 치여 사는 우리에게, 세심한 관심과 더 많은 시선을 필요로 하는 노인 문제는 중대한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바쁜 일상과 세심한 관심은 조화롭게 성립하기 어려운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동몽>에서 노인이 기괴한 살인사건을 저지르며, 소녀를 괴롭히는 이유. 그리고 '아파트 단지'라는 공간. 그 행동의 근원은 '단절'이며, '실버 콤플렉스'였다.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알려야 했으며, 그러기 위한 행동을 비난하는 소녀를 극복해야 했던 노인으로서는 절박하고 처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침대를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던 제조회사의 어긋난 야심과, 현재의 성과와 정치적 과시에 몰입돼 있던 일본 후생성의 성급한 판단은, 일면 편리해 보이지만, '단절'을 의미하는 노인문제의 심화를 불러 일으킨 것이다. 체험자 '타카자와'의 무의식과 소동 해결에 나선 '노인 해커단'의 실력 발휘는 그 단절에 대한 당사자로서의 반란인 것이다.

메카닉으로 돌변한 간호 침대. 메카닉의 테크닉이 가장 극대화된 장면이었다.
메카닉으로 돌변한 간호 침대. 메카닉의 테크닉이 가장 극대화된 장면이었다. ⓒ 후지TV
무미건조한 기계의 힘이 아닌, 따스한 손길로

'타카자와 노인'은 시종일관 '하루코'와 '임자'를 찾는다. 편리해 보이는 기계의 힘, 하지만 그것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강제적인 힘의 작용에 의한 것이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노인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단절'이다. 단절된 환경 속에서 하루코가 돌봐주는 잠깐의 시간과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향수는 노인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을 제공해주는 인간적인 시간이었던 것이다.

'노인 해커단'은 그런 현실에서, 암묵적으로 해답을 제공해주는 설정이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무조건 은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재능을 다시 발휘할 수 있는 또 다른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노인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길인 것이다.

하지만 요즘같은 경기 불안과 취업난 속에서 과연 노인의 재취업이 가능한 일이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는 점 역시 부인하기는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당장 쉽게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함께 고민해보고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뜻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길이 있는 법.

<스팀보이>가 개봉할 당시 "그 이전의 세계관에서 나아가지 못했다"는 아쉬운 평을 들었던 오토모 가쓰히로였지만, 그의 예전 화제작을 돌아본다면 지금의 현실까지 관통하는 놀라운 세계관이 읽혀진다.

아니, 어쩌면 미래에도 여전할지도 모른다. 그가 그 시절, 다루기 좋아했던 '단절'이라는 소재는 미래사회에 접어들수록, 더욱 심각해질 사회문제이기 때문이다. 비록 '나아가지 못 했다'고 하더라도, 경이로운 시선과 테크닉으로 사회문제를 파헤치는 그의 집념은 찬사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

그가 걸어나갈 길이 여전히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토모 가쓰히로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꾸미는 작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신문 필진네트워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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