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김현
강당 의자를 정리하고 교무실에 앉아 있는데 졸업생인 수정(가명)이라는 아이가 찾아와 인사를 합니다. 겉옷도 입지 않은 채 얇은 옷차림입니다.

"선생님, 저 왔어요."
"수정이구나. 졸업 축하한다. 그런데 추운데 옷이 그게 뭐니?"
"봄인데요. 안 추워요."

춥지 않다며 피식 웃던 수정이가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고맙다는 말을 합니다.

"저 졸업하게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뭐가 고마워. 다 네가 참아줘서 한건데. 암튼 너 졸업하는 모습 보게 되니 좋구나."
"아니에요. 안 도와주었으면 졸업하지 못했을 거예요. 근데 선생님, 저 살 빠진 것 같지 않아요?"
"응, 좀 빠진 것 같다. 무슨 일 있었니?"
"한 달 동안 봉사활동 하느라 힘들었어요. 정신병원도 가고, 양로원도 가고, 고아원도 가고 한 달 동안 정신없었어요."

수정이는 사회봉사명령을 받고 방학 내내 봉사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학교를 다니는 내내 여러 말썽을 일으키거나 무단결석을 일삼아 몇 번이나 학교를 그만 둘 뻔 했던 아이입니다. 밖에서 일으킨 말썽으로 사회봉사명령까지 받았고, 이로 인해 겨울방학 하루 전까지 학교를 다니게 하니 마니하며 담임과 실랑이를 하곤 했었습니다.

그런 녀석을 옆에서 지켜보며 내가 해준 건 '열흘만 참아라. 일주일만 참아라'하며 학교를 나오게 했고, 그 아이를 데리고 시간 나는 데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 것뿐입니다.

평상시 마음 터놓고 이야길 나눌 사람이 없던 수정인 우연히 인사를 나누게 된 나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놓곤 했습니다. 복도를 오고가며 마주칠 때마다 관심을 보여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자체가 고마웠는지 녀석은 볼 때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사실 난 녀석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특별히 그 아이한테 잘 한 것도 없이 작은 관심만을 보여준 것인데 수정인 과도하게 고맙다고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졸업식 날 아침에 찾아와서도 녀석은 또 고맙다는 말을 하며 새로운 소식을 전합니다.

"선생님, 저 취직했어요."
"정말? 어디?"
"저 한의원에서 일하게 됐어요. 봉사활동 하는데 도와주신 분이 소개해줘서 일한 지 일주일 됐어요. 저 잘 했죠?"
"그래, 정말 잘 됐구나. 힘들더라도 참고 열심히 해. 마음 안 맞는다고 튀어나오지 말고. 알았지?"
"네, 열심히 할 거예요. 학원도 다니면서 공부도 할 거구요."
"잘 생각했다. 암튼 너 졸업하는 모습 보게 되니 선생님도 기분이 좋다."
"자주 연락할게요. 그리고 이따 저하고 사진도 찍어요."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 김현
졸업식 후 사진을 찍자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밖으로 나가는 아이를 보니 기분이 새롭습니다. 한 번도 수업을 같이 한 적도 없는 그 아이와 우연히 알게 되어 인연을 맺고 그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데 마음으로나마 조금의 도움이라도 주었다는 사실 때문인지 모릅니다.

솔직히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생각이 어긋난 아이와 만나 대화를 할 때면 언성이 높아질 때도 있습니다. 자기 생각에 얽매어 다른 누가 어떤 말을 해도 마이동풍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학생부 출입을 수시로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과 일 년 동안 함께하다 보면 진이 다 빠지기도 합니다. 포기하기 전까진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과 마음의 교감을 나누고, 나중에 그 아이가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그 기쁨도 배가됨을 느낍니다. 어쩌면 수정이도 그런 아이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난 그 아이의 졸업식 장면을 보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가끔은 지식 외에 다른 것이 아이들에게 더 필요하다는 것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너! 나! 따로 가지 말고 함께 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