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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얘들아, 안녕! 잘들 지냈니?"

교실에 들어서며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자 여기저기서 웅성대던 아이들이 '네', '아니오' 건성건성 대답을 합니다. 자리 정돈을 하고 아이들을 쑤욱 훑어보니 방학 동안에 한 파마를 풀지 않고 왔는지 곱슬머리가 여기저기 눈에 띕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머리를 펴고 오면 더 예쁘다는 말로 마무리하고 방학 동안 지냈던 이야길 나누고 있는데 옆 반의 가람이가 얼굴을 쪽 내밀더니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그 인사가 좀 생뚱맞습니다.

@BRI@"선생님, 방학 동안에 살이 더 빠졌네요."
"응, 안 빠졌는데…."
"아니에요. 더 빠졌어요. 많이 먹고 살 좀 찌셔야지요."

짐짓 훈계조입니다. 그리곤 키득거리더니 또 한 마디 불쑥 내뱉습니다.

"흰 머리는 왜 그렇게 많아요. 곧 흰 서리로 덮이겠어요. 겨울도 다 가는데…."

그리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문을 닫고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반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웃습니다. 조금 어이는 없지만 나도 웃음이 납니다. 살이 빠졌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흰머리가 많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어쩌면 작은 관심의 표현일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사실 요즘 거울을 볼 때마다 늘어나는 흰 머리에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입니다. 아직 얼굴은 아닌데 머리만 흰색으로 덮여가니 신경이 쓰이는 것이지요. 거기에 불혹의 고갯길을 지나다보니 몸에 이상 신호가 자주 옴을 느낍니다. 그런 날 보고 아내는 종합병원이라고 놀리곤 합니다.

며칠 전엔 자다가 허리가 너무 아파 새벽에 여덟 살배기 아들 녀석에게 부황을 뜨게 하고 다시 잠을 청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니 아내가 종합병원이라고 놀릴 만도 합니다.

얼마 전엔 같은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한 선생님이 명예퇴직을 신청했습니다.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건강한 혈색으로 기운차게 근무를 하셨는데 갑자기 살이 빠지더니 핼쑥한 모습으로 변하였습니다. 여러 병증에 시달려 살이 빠진 것입니다. 늙고 주름진 그 선생님을 볼 때마다 이한직의 <낙타>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유난히 등이 굽었던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 선생님이 걸어오신다.
회초리를 들고서

선생님은 낙타처럼 늙으셨다.
늦은 봄 햇살을 등에 지고
낙타는 항시 추억한다.
- 옛날에 옛날에 -

낙타는 어린 시절 선생님처럼 늙었다.
나도 따뜻한 봄볕을 등에 지고
금잔디 위에서 낙타를 본다.
내가 여읜 동심의 옛 이야기가
여기 저기
떨어져 있음직한 동물원의 오후


지금 그 선생님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냥 '왜 그러지 선생님'으로만 기억합니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선생님은 수업 시간이면 '왜 그러지'를 연발하셨습니다. 특히 산수(수학) 시간엔 왜 그러지가 몇 분 간격으로 하얀 분필가루와 함께 튀어 나왔습니다.

"삼각형의 세 각의 합은 180도입니다. 왜 그러지?"
"정사각형은 마름모입니까? 왜 그러지?"

선생님의 왜 그러지는 우리들에게 어떤 대답을 원하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냥 습관적으로 왜 그러지를 말하고 답을 하곤 했으니까요. 뿔테 안경에 굽은 등, 흰 머리를 분필가루처럼 휘날리며 열정을 토하던 그 선생님의 모습이 하도 우스워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으면 선생님은 "어떤 녀석이야" 목청을 높이곤 웃는 아이들을 불러 세워 댓뿌리로 만든 매로 머리통을 때리곤 했습니다.

매 중에서 아마 대나무 뿌리로 만든 매가 젤로 아플 것입니다. 살짝만 힘을 주어 때려도 어찌나 아프던지 눈물이 핑 돕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 웃음을 멈추지 않고 수업 시간마다 맞으면서 웃곤 했습니다.

그러다 '왜 그러지 선생님'의 왜 그러지가 한 시간 동안 몇 번이나 하는지 세어보기로 했습니다. 횟수의 정확도를 위해 분단별로 두 명씩 세기로 했습니다. 그땐 웃지도 않았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우리들은 끼리끼리 모여 각자 센 '왜 그러지' 숫자를 말했습니다.

"야야, 서른 세 번이나 해부렸다.'
"먼 말인고. 서른 세 번이 아니라 서른다섯 번 해부렸다. 자식아, 숫자를 세려면 똑바로 세라잉."
"참말로 그것도 귓구멍이라고 달고 다녀뿌렸냐. 내 귀를 쫑긋 세우고 숫자만 세부렸다. 서른일곱이다 서른일곱."

그러면서 자기들이 센 숫자가 정확하다고 우기다가 결국은 가장 많은 서른일곱이 맞는 걸로 하고 그 선생님이 나타날 때면 "삼칠 왜 그러지 온다"라며 키득거리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그 선생님을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왜 그러지'를 연발하시며 열심히 수업을 하셨던 그 선생님의 모습은 아련하게나마 마음속에 남아 있음을 봅니다.

누구나 학창 시절 좋은 기억이든 안 좋은 기억이든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기억은 물론이고 안 좋은 기억도 세월이 흐르면 추억이라는 빛바랜 필름이 되어 하나의 이미지로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늘 뭔가 추억하려고 합니다. 아마 시인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동물원의 낙타를 바라보며 늙으신 선생님을 떠올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낙타는 어린 시절의 늙으신 선생님만은 아닙니다. 낙타는 늙으신 아버지도 되고, 언젠가 우리 자신도 될 것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굽은 등을 하고서도 묵묵히 걸어가는 낙타의 모습은 오늘의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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