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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업계 현장 실습생을 포함한 청소년에게도 근로기준법을 지켜 노동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의 자료
ⓒ 청소년위원회
지난 16일 교육인적자원부가 '실업계 고교 현장실습 운영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3학년 2학기가 되면 의무적으로 나가야 했던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의 취업을 대폭 제한한다는 것이 발표 내용의 핵심이다. 산업체가 실업계 고교생들을 저임금 단순 작업 노동자로 이용해 온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동안 대다수 실업계 고교의 현장실습은 다분히 형식적이었고, 학생이 아니라 산업체와 학교 중심으로 이뤄져 온 것이 사실이다.

학교(교사)는 학생들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노동의 가치를 설명하거나 현장실습의 타당한 이유를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현장실습은 본인의 의지나 판단, 근무조건이나 회사 환경 등에 상관없이 당연히 나가야 하는 강요 아닌 강요로 다가왔다.

대부분의 교사들 역시 현장실습을 학생들이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배우는 교육과정이 아니라 군소리 없이 따라주기를 바라는 연례행사처럼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연한 부당노동행위, 외면하는 학교, 고통 받는 학생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이 현장실습 업체에서 '실습생'이란 이름표를 달고 제대로 된 인격적 대우를 받기란 쉽지 않다.

일방적인 작업 배치 및 근무 조건 변경 등 회사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학교로 돌아오면 학교에서는 학생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 인색하다. '그렇게 참을성이 없어서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식의 핀잔과 꾸중이 앞선다. 학생이 의지하고 기댈 곳은 없는 셈이다.

▲ 현장실습 간접고용 고용 형태별 현황 (2005년 12월 기준)
ⓒ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학교 취업게시판에서 ○○를 보고, 굉장히 크고 유명한 회사인 줄 알고 신청했어요. 이렇게 용역업체라는 건 몰랐어요. □□에서 일하게 될 줄도 몰랐고요(R고, 정○○)."

"학교에서 쓰는 협약서는 안 썼고요, 일하러 나가서 이력서랑 계약서 같은 걸 썼어요. 그런 건 처음 써 보니까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이거 어떻게 써요?'하고 물어보니까 ○○소장이 시간 없으니까 불러주는 대로 쓰기만 하면 된대요. 그래서 불러준 대로 급하게 적고 사인만 하고 그냥 냈어요. 계약서에 이런 내용이 있었던 건 기억나요. '실수로 기물을 파손시키면 본인이 책임지고 본인 부주의로 다치게 되면 (산업재해) 보험 처리 못 받는다'(P고, 문○○)."

"학교로 보낸 소개서에는 한 달에 100~110만원 정도 된다고 쓰여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나가보니까 하루 일당이 2만 5000원이고 한 달 기본급이 75만원이래요(ㄱ전자고, 박○○)."


위에 인용한 내용은 ▲실습업체로부터 인력파견업체라는 설명을 아예 듣지 못한 경우(간접 고용)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반드시 알려줘야 할 노동조건을 정해 두는 현장실습계약서를 부실하게 작성하거나 실습생에게 불리하게 작성하는 경우 ▲처음 약속과 달리 현장실습 계약을 위반한 경우다. 이 모든 것은 실습생들이 겪는 문제 상황의 일부분일 뿐이다.

이밖에도 무상으로 제공하도록 돼 있는 작업복 비용까지 실습생의 임금에서 떼면서 잔업과 특근을 강요한다거나, 10시간을 넘어서는 평균 노동시간 등 장시간 중노동, 위험한 작업 환경, 정신적 혹은 물리적 폭력, 성희롱, 부당해고 등 실습현장에서의 부당노동행위는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 현장실습 지역별 의뢰 현황 (2005년 12월 기준)
ⓒ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교육부 방안, 노동인권교육 없이 실효성 있을까

학교에서 제대로 된 노동인권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학생들이기에 실습 현장에서 이러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하다. 오히려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잘못 알아, 불리하게 일이 처리되는데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도 종종 생긴다.

게다가 실습생들이 장시간 중노동을 못 견디고 실습을 그만 두면 학교(교사)는 '애들이 끈기가 없다'거나 '참을성이 부족하다'는 말로 실습 중단 책임을 학생에게 돌린다. 실습 현장에서 벌어진 일을 학생의 인권침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생활 하려면 다 그런 거지, 안 그런 데가 어디 있나?'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노동법에 관한 기본 지식은 물론 현장실습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인권침해에 대한 사전 교육이나 정보 없이 쫓기듯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실업 교육의 현주소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인권교육은 더욱 절실하다(물론 노동인권교육은 실업계 학교뿐만 아니라 인문계 학교를 비롯해 모든 교육과정에서 필요하다).

수능시험에서 실업계 특별전형의 혜택을 늘려 실업계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을 넓혀주는 것도 의미는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노동인권교육을 통해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올바르게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그런 선행 작업 없이는 교육부의 '실업계 고교 현장실습 운영 정상화 방안'도 원래 의도한 뜻을 살리기 어려워 보인다.

▲ 현장실습 고용 형태별 의뢰 건수 (2005년 12월기준)
ⓒ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에 인용한 일부 자료의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교육이라는 이름의 기만과 폭력-'간접고용 현장실습' 실태보고>, 실업계고 현장실습생 인권실태조사 결과 발표회 자료집,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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