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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드폰 문자 검열이 '정보인권침해'임을 알리는 만화
ⓒ 청소년위원회
학교 안에서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검열과 이에 따른 징계로 학생들의 불만이 높은 것은 오래 전부터 계속된 현상이다.

주로 담임 교사나 학생부에 속한 일부 교사들이 면학분위기 조성, 흡연 예방, 불건전한 이성교제 근절 등을 명분으로 학생들의 일상을 검열, 처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도 애국조회를 이유로 모든 학생들이 운동장에 나갔을 때 일부 교사들이 교실을 돌며 학생들의 가방을 조사하고 책상 속을 뒤지곤 했다.

그동안 학생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덥거나 추운 운동장에 부동자세로 서서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경청해야 했다. 나중에 학생부에서 불러 가보면 가방 속에서 성인 잡지나 담배, 흉기 등 학생으로서 소지하지 말아야 할 물건이 나왔다는 이유로 무지막지한 폭행을 당하고 정학과 퇴학 등 처벌이 뒤따랐던 그 시절.

세상이 변해서 모양새는 조금 달라졌지만 지금 학교의 모습도 그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분별없는 이성 교재를 막는다며(혹은 다른 이유로) 학생의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열어보거나, 고된 학교생활에서 비롯된 푸념을 적어놓은 연습장을 몰래 펼쳐보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 같다며 호주머니를 뒤지는 일 말고도 아주 사소한(?) 검열과 그에 따른 처벌이 여전히 존재한다.

문자메시지에 특별한 내용이 없거나 호주머니에서 담배의 흔적이 나오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을 때다.

호주머니에서 나온 담뱃갑이나,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 문자메시지는 현행범 체포에 해당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문제가 가벼울 경우엔 며칠간 봉사활동 수준의 징계로 끝나기도 하지만 심할 경우 학부모를 학교로 불러들이고 징계위원회가 소집되는 소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검열과 처벌을 내면화하게 만드는 학교와 교사는 곤란

대개 거의 모든 학생들은 학교와 교사라는 권력 앞에서 1차적인 자기 검열을 항상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혼나거나 찍히지는 않을까, 저렇게 하면 맞지는 않을까. 검열하고 또 검열하며 점검하고 또 점검한다.

그런데 교사와 학교는 합당한 설명이나 양해와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생략한 채 검열과 처벌의 칼날을 동시에 휘두른다. "너는 검열 결과 이러이러한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그러한 무차별적이고 무지막지한 폭력 앞에서 아이들은 학교와 교사에 대한 신뢰를 버리게 되고 나아가 자아존중감 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학교는 문제아와 범법자를 만들어내는 곳이 아니다. 학교는 교사와 학생의 진정한 믿음과 존중 속에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곳이다.

반인권적이고 부당하기 짝이 없는 검열과 처벌이 지속되고, 아이들이 검열과 처벌을 당연한 것으로 내면화하게 만드는 학교(교사)가 돼서는 곤란하다.

학교와 교사에 대한 신뢰를 버린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검열과 처벌이 아니다. 자율과 존중의 가치를 전하고 나누는 일이다. 그것이 오롯하게 전해지면 아이들이 잃어버린 자아존중감도 새싹처럼 다시 돋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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