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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은 나만 존중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존중받기 위해서는 남을 먼저 존중해야한다는 상호존중의 가치를 실천할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
ⓒ 임정훈
"내 아이는 달라요, 특별하니까."

10여 년 전에 한 분유회사에서 자신들이 만든 분유가 최고급 분유임을 강조하며 광고에서 썼던 말이다.

세상에 특별하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아이(자식)가 어디 있을까마는 좀 더 특별해지고 싶은 모성을 자극하기에는 더없이 맞춤한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내 아이는 특별하고 다르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아이를 키워 온 일부 학부모들이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방송사 카메라를 대동하고 학교로 쳐들어가 그 앞에서 교사가 사과의 눈물을 쏟으며 무릎을 꿇게 했다.

가히 내 아이에게 위해(危害)를 가한 적군을 무찌른 위대한 학부모들의 승리, 내 아이만큼은 특별하게 키우고 싶다는 뜨거운 모정(母情)의 승리라 할 만하다.

그런데 세상인심은 좀 다르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일이 이쯤 되자 교권이 무너졌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쪽에 힘이 실리고 있는 분위기다. 언론들의 호들갑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교조는 이번 사건을 두고 “교사에게 교권을, 학생에게 인권을, 학부모에게 참여권을 보장하라”며 “실질적인 교권 보호 대책을 마련하고, 교육정책의 방향을 바로 잡으라”고 교육부에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교총도 이와 관련하여 해당 학부모를 사법기관에 고발했다. 교원단체가 교권침해를 이유로 학부모를 고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교권침해 논란 속에 학교 인권교육 무용론 대두

이런 세상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탓에 학교 현장에서 인권교육을 말하는 목소리가 더욱 작아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 버릇이 없는데 인권이다 권리다 해서 아이들 기만 살려 놓으면 결국 돌아오는 건 무참히 짓밟힌 교권의 추락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인권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오늘날과 같이 씁쓸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존중받기 위해 남을 존중해야 하는 상호적인 것이 인권이라는 걸 온전하게 가르치고 배웠다면 말이다.

물론 교사의 권위만을 앞세워 비교육적 방법으로 학생들을 교육하려는 일부 교사들의 뼈아픈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들로 인해 빚어진 문제까지 교권침해 운운할 수는 없다. 사필귀정이다.

그래야 나름대로 학생들을 존중하며 그들과 함께 하려고 애쓰는 다른 일부의 교사들이 있어서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학교가 유지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 아닌가.

학생들에게 인권을 가르쳐서 교권이 위태로워진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르치지 못 했기 때문이며, 겸손하게 존중하고 귀 기울이는 것의 가치를 실천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교권침해 운운하는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교권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먼저 학생에게 인권의 가치를 제대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학부모들은 내 아이만 특별하다는 이기적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학교와 교사를 인정하고 존중하려 노력해야 한다.

교사들의 끊임없는 자기점검과 반성을 통한 인권 행동의 실천이야 더 힘주어 말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그것이 교권을 바로 세우고 학생과 학부모의 인권을 존중하는 가운데 학교(교사)가 희망의 공교육 기관으로 인정받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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