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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고백할 일이 있다. 시사평론가로서는 부끄럽게도, 나는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외동포법 개정안이 상정 처리되는 것을 사전에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 법안이 부결되었다는 보도를 접하고 나서야, 얼마 전에 얘기되던 법안이 어느 사이 본회의까지 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미처 챙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결 직후 언론들은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 국적을 포기한 사람에게 재외동포 혜택을 박탈하는 내용"의 재외동포법이 부결되었다고 보도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나 역시 분노했다. 대한민국 국회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병역회피자들을 감싸고 나서다니, 아직도 정신들을 못차렸구나.' 아니나 다를까 여론은 심상치않게 흘러갔고, 표결에서 반대하거나 기권했던 의원들은 궁지에 몰리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곧 이상한 사실을 알게되었다. 반대하거나 기권했다는 의원들 가운데는 내가 평소 신뢰하고 기대를 걸던 사람들의 이름이 많았던 것이다. 무엇인가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법안의 내용을 좀더 자세하게 검토해보게 되었다.

의무는 회피하고 권리만 챙기는 특권층의 행태에 제동을 건다는 정의로운 취지에도 불구하고, 법안은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지적한 바이지만, 굳이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들이다.

첫째, 재외동포의 자격은 도덕적 잣대에 따라 박탈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둘째, 소수의 병역회피자들 때문에, 그와 무관한 수많은 재외동포들의 권리를 제약할 위험이 있다. 글로벌시대를 맞아 재외동포들을 적극적으로 껴안아야 할 필요에 역행한다.
세째, 병역회피 의도 여부를 정확하게 가려낼 수 없기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넷째,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적이탈을 하게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불합리한 문제가 있다.
다섯째, 병역회피 목적의 국적포기자에게 재외동포 자격을 주지않는 조치는 이미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논란에 비해 막상 실효성은 적다.

어느 한쪽의 견해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 이전에, 적어도 진지하게 경청하고 검토하고 고민해 보아야할 반대 이유들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아무리 우리 정치에 문제가 많다 해도, 이 나라 국회의원들이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특권층의 부도덕한 행태를 싸고돌 겁없는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법안의 취지가 정의롭고 국민감정을 대변하고 있다해도, 하나의 법률로서 그 내용에 문제점들이 있다면, 더 검토되고 수정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문제점들이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여론이 무서워서 그대로 통과시켜 버리는 것은 의원들의 직무유기이다.

물론 본회의 표결 이전에 법안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내용상의 문제점들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을 더 찾기로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최상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길이 막힌 상황에서는, 일단 법안에 제동을 거는 것도 하나의 선택가능한 방법이었다.

지금 '홍준표 재외동포법'에 대해 찬성하는게 옳았느냐, 반대하는게 옳았느냐를 가리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찬성의 도덕적 정당성만큼이나 반대의 현실적 이유도 설득력이 있음을 인정하고, 보다 열려있는 토론을 벌여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기권을 하고, 더욱이 재외동포법에 대한 반대의견을 홈페이지에 올린 임종석 의원은 네티즌들의 '성지순례' 대상이 되고 있다 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다른 의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날 찬성표를 던지지 않은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의 비난속에 곤욕을 치르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찬성의 도덕적 정당성만 강조되고 법안의 내용적 문제는 논외로 하는 이같은 상황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과 합의를 이루어내는 일이 불가능해 보인다. 어차피 재외동포법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재발의 혹은 수정발의 등을 둘러싼 논의가 더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다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서로가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 인터넷 언론에게도 주문을 하게 된다. 재외동포법에 대한 인터넷언론들의 보도과정에서도 이같은 문제는 그대로 드러났다. <오마이뉴스>는 '재외동포법 누가 부결시켰나"는 질문을 던지며, 반대하거나 기권했던 의원들의 명단까지 공개하였다. 그리고 '부결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여러 기사들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반대자들의 목소리도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

<프레시안>의 경우는 더 분명했다. '재외동포법 반대 우리당 의원들의 강변'을 비판했는가 하면, 법리적 근거의 문제점을 지적한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반대하거나 기권한 의원들을 고발하는 분위기가 일색을 이루었다.

적어도 선과 악으로 갈라지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양론(兩論)이 있는 사안에 대해, 다른 입장의 이야기는 들어보려 하지도 않고, 이같이 성급하게 도덕적 단죄를 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명백한 범법자의 경우도 본인의 진술과 변호인의 변론을 다 듣고 판결을 내리는 법이거늘, 인터넷 언론들의 여론재판은 군법회의를 방불케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느낌이다. 인터넷언론의 역할과 책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나는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들의 생각을 당당하게 밝히고 나서는 의원들에게 오히려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인터넷에서의 돌팔매질을 당하더라도 자기의 소신과 주장을 분명하게 밝히는 모습은, 재외동포법 찬반문제를 떠나, 그 자체로 신선해 보인다. 그렇다면 돌을 던져 반대자들을 응징하려 하기보다는, 서로의 주장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합리적인 토론을 벌여나가는 것이 페어플레이 정신이다. 이번 재외동포법 부결 파문은 그 사안 자체 이외에도, 여러 생각할 거리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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