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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곽밖 평촌마을에서 만난 정종철(53), 김상기(54)씨. 인심이 박해져 가는 낙안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 골고루 잘 사는 낙안읍성 주민들이 되기를 희망한다.
ⓒ 서정일

낙안읍성. 1983년 사적지로 지정되면서 문화재청이 관리에 들어간다. 그리고 20여년이 흐른다. 문화재보호법은 사람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틀 안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주민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구속으로 굴레를 씌워버린다. 허물어진 돌담, 망가진 채 그대로 몇 날 며칠을 보낸다.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

'마네킹, 원숭이' 서슴없이 그들은 그렇게 표현한다. 쳐다보는 눈에 이골이 났기에 무심할 수밖에 없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듣는 소리, "그대로 있어보세요 사진 한 장 찍고요." 힘들어도 기필코 문지방을 넘어서야 한다. 그것이 자유다. 문을 닫고 방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만이 가장 편안함이다. 그들에게 있어 민속마을에서의 삶이란 무엇일까?

그들에게도 자유를 주자

그들도 자유를 찾고 싶다. 하지만 2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코딱지만한 돈이라도 차곡차곡 이불 속에 챙겼으니 제법 쏠쏠하다. 사적지이며 관광지이기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내는 돈의 절반은 나라에, 절반은 그들의 이불장 속으로 들어온다. 그것이 장사나 민박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코딱지만한 돈의 전부다. 허가되지 않은 장사, 그것은 성내에서도 또 다른 마찰의 소지를 안고 있다.

어찌되었든 왜 사람을 살게 하면서 억지웃음과 연출을 강요했을까? 그리고 왜 사유재산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또 구속하여 많은 문제들을 만들었을까? 사적지로 지정된 지 20여 년 동안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는 낙안읍성, 생각이 다른 관과 민의 엉킴이며 그곳은 그저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관람객까지 합세하여 얽히고설킨 실타래.

'낙안의 민속마을은 기존의 민속촌과는 달리 신설되는 것이 아니고 현존하는 마을을 지정 보존하는 것이고 유형의 민속자료뿐만이 아니라 무형의 민속자료인 생활까지를 그대로 담는 것이므로 그것을 관광자원으로 이용할 때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을 수 있겠다.'(그렇다고 이것을 그런 쪽에 응용하지 않는다면 막대한 재정의 지출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1979년 12월에 승주군에서 작성한 낙안성 민속보존마을 조사연구보고서다.

▲ 얼마전부터 민속박물관이 성곽밖에 건립되고 있다. 성곽밖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계기로 좀 더 나은 미래가 되기를 희망했다.
ⓒ 서정일

이제 성밖으로 눈을 돌리자

낙안은 북으로 금전산, 동으로 오봉산, 서로는 제석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와 같은 곳이다. 4만여 평의 낙안읍성은 그 안에 있는 것. 그러나 그 밖은 몇 십 갑절 넓은 땅을 갖고 있다. 성 밖은 이렇듯 넓은 공간으로 밭과 논으로 때론 주택으로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낙안읍성 밖을 개발하면 성 안의 주민들에겐 좀더 넓은 자유를, 성밖의 주민들에겐 관광수입을, 관람객들에겐 좀더 많은 볼거리로 충분한 관광을, 지방자치단체엔 관광명소의 자랑스러움과 함께 세 수입을' 일석사조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얘기들이다. 그리고 지금껏 똑같이 문화재보호법의 지배 하에 있었지만 혜택에서 멀어졌던 성곽 주변의 사람들. 평촌, 서내리, 성북, 동내리의 400여 가구, 그들의 힘겨웠던 지난 20여년간의 보상도 필요한 시점이다.

얼마 전 성곽 밖엔 자그마한 움직임이 있었다. '민속박물관 건립'이 그것. 순천시에서 문화재급에 버금가는 옛 유물들을 평생 모은 한 독지가의 지원을 받아 성격이 비슷한 낙안읍성에 박물관을 유치하면서 성내가 아닌 성 밖에 건립하기 시작한 것. 인근지역인 평촌마을 사람들은 반기는 분위기다.

"성 안과 성 밖이 더불어 살아갔으면 합니다." 평촌마을의 정종철(53), 김상기(54)씨. 혜택 없이 희생만 했다는 서운함을 애써 감추며 성곽 밖으로 눈을 돌려 달라 말한다. 하지만 성곽 밖을 개발하기 위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성 안의 주민들과 상업적인 면에서 마찰이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문화재보호법을 내세워 인근지역 난개발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를 달고 있지만 내면엔 상업적인 손실을 두려워하는 성 안의 주민들. 문화재를 보호한다면서 왜 축제는 성 안에서 하느냐며 성곽 밖 공터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쏘아붙이는 성곽 밖의 사람들. 감정의 골이 깊기는 깊다.

하지만 낙안읍성 20여년이 흘렀지만 밝은 방향으로의 진행은 아닌 듯싶다. 예전의 아름다운 마을로 돌아가 다함께 잘 사는 곳이 될 수는 없을까? 사라진 순박하고 아름다운 인심을 되찾아 올 길은 없는 것일까?

관계 당국은 이런 점을 주의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선량한 주민들의 분열을 좌시해서는 안 된다. 결국 이런 모든 책임이 나라에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깊이 있는 검토로 모두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고 긴 안목의 정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함께 만들어가자 낙안읍성
http://www.nag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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