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수에 출발한 쾌속선은 조심스럽게 가막만을 지나 백야도와 개도를 뒤로 하고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두 섬은 가막만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자 외해로 여수로 들어오는 출입문이다. 여자만과 가막만을 이어주는 두 섬 일대와 금오도, 소리도 등 금오열도 약 1만 8000ha가 2001년 통영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바다목장’ 시범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얘기가 나온 김에 바다목장이란 무엇인가? 흔히 연안에서 볼 수 있는 가두리양식과 달리 ‘자연상태에서 고기를 기르고 생산하는 환경친화적인 양식어업’을 말한다. 가두리 양식의 바다환경 오염과 생산량 한계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시범운영 중이다.

통영 장두도의 바다목장은 조피볼락이 주어종인 반면에 여수 바다목장은 감성돔, 돌돔, 참돔 등이 주력어종이다. 정부는 2008년까지 307억원을 투자해 다도해 섬을 연결, 다도해 바다목장을 조성해 다도해형 바다목장을 개발해 어민소득을 높일 계획이라고 한다.

▲ 소거문도의 반초섬 앞에서 조업중인 어선
ⓒ 김준

▲ 거문도 등대와 서도 동백 숲 사이의 바다
ⓒ 김준
고래가 노닐 던 그 길, 거문도행

1시간 가량 달렸을까 제법 파도가 잦아들면서 배가 속도를 낮춘다 싶더니 다리가 앞을 가로 막는다. 외나로도와 내나로도를 연결하는 다리였다. 여수에서 거문도까지는 뱃길에 거문도에 손님이 있으면 잠시 멈춰 손님을 태우고 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나간다.

다리를 미끄러지듯 빠져 나온 배가 다시 질주하다. 안개 위에 떠 있는 작은 섬들과 그 사이에서 그물을 끄는 작은 배는 한 폭의 수묵화였다. 안개 탓에 거금도 앞 시산도가 아득해 보이더니 이내 배는 무학도를 스치고 지나간다.

시산도가 고향인 연안보전네트워크 김환용 상임이사의 시산 자랑이 이어진다. 전국에서 알아줬다던 ‘시산김’ 이야기, 손죽도의 지척에 있는 시산의 부속도서인 무학도는 여천군에 속했던 섬인데 마을에 편입시킨 일, 어렸을 적에 인근에서 돌고래를 많이 봤는데 정말 시산도 옆에 고래섬(鯨島)이 있다는 이야기 등 끝이 없다. 사실 그는 일찍부터 고래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고래포럼’을 주도하고 있다.

사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과거에도 고래는 포항이나 울산 못지않게 흑산도 인근에서 잡아서 그곳으로 이동한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포경선이 포항이나 울산에 있었지만 고래가 빈번하게 다니는 길은 서남해역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고래를 제대로 보려면 군산의 어청도 인근, 흑산도와 홍도 해역, 고흥 앞 바다 등 수심이 깊으면서 만으로 되어 있어 고래가 새끼를 키울 수 있는 곳에서 발견한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하고 있다.

초도에서 잠시 멈춘 쾌속선은 대마도를 스치면서 거문도로 달린다. 1층에서는 화전놀이를 나온 아줌마들의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아줌마들이 어깨가 들썩거린다. 급기야 '동백섬'을 찾더니 '홍도야 울지 마라'로 이어진다. 초도 옆에는 안목섬, 원도, 장도, 대마도 등 작은 섬들이 이어져 있다. 대마도 이야기를 듣자 모두들 주목한다. 모두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분노한 탓이리라.

육지에 비해서 따뜻한 거문도에서 거문도는 동도에 유촌과 죽촌, 서도에 덕촌과 변촌, 그리고 이들 사이에 있는 작은 섬 고도의 거문리 등 다섯 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280여 호에 이르는데 100여 호가 고도 즉 소재지에 살고 있다. 고도와 서도는 1992년 완공된 삼호교로 연결되어 있다. 세 섬에 둘러싸여 호수 같은 바다를 연결하는 다리라는 의미리라.

▲ 닥대를 잡기 위해 주낙에 미끼를 끼고 있다.
ⓒ 김준

▲ 붉은 색을 띠는 닥대들
ⓒ 김준

▲ 닥대를 손질하는 정매동(61)씨와 며느리
ⓒ 김준
봄철에 가장 많이 잡히는 서민고기 ‘닥대’

봄철에 거문도 항에 내리면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꼬들꼬들하게 말린 생선을 열댓 마리씩 모아놓고 관광객에게 파는 모습이다. 거문도 고도에만 10여 집이 이상 해안을 둘러 자리를 잡고 생선을 팔고 있다.

사실 거문도 하면 ‘삼치’와 ‘갈치’를 꼽지만 곗돈 부어 모처럼 나선 ‘여행’에 삼치회와 갈치회는 물론이고 얼음에 넣어 가지고 가는 것은 쉽지 않다. 이들이 눈길을 주는 것은 아무래도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것은 말린 고기와 젓갈이다. 갈치속젓과 말린 고기로 ‘닥대’, ‘풀치’이다. 물론 삼치, 학공치 등도 좌판을 벌여 놓고 팔고 있다.

환갑을 앞두고 있는 정매동씨. 그는 매일 배 시간에 맞춰 선착장으로 향한다. 서른 여덟의 며느리와 함께. 젊었을 적에는 직접 고기를 잡기도 했지만 지금은 부산에서 수산고등학교를 나온 아들이 고기를 잡고, 두 노인네와 며느리는 갈무리를 해 포구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판매를 하고 있다.

고흥, 여수, 광양 지역은 서울보다는 부산에 많이 진출한다. 고등학교나 대학도 부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으며, 취업도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곧잘 부산 큰애기와 전라도 총각이 만나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정씨 며느리도 아들이 부산에서 생활하면서 인연이 되었다.

지금 철에는 ‘닥대’가 최고다. 닥대를 갈무리하던 며느리의 거문도 닥대자랑이다.

“이게 고기가 매운탕도 시원하고 맛있어요. 조림도 맛있고, 구워도 맛있고, 생각보다 비링내도 안나고 겁나게 맛있어요. 요즘에 많이 잡는데, 철고기가 맛있는 가봐요.”

약간 전라도 사투리가 섞인 말투다. 맞는 말이다. 철고기가 맛이 있다. 육지 것도 철따라 먹어야 맛도 있고 살로 가는데 하물며 바다 것이야 어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육지야 겨울철에도 딸기를 먹고, 포도를 먹고 그러지만 아무리 먹고 싶다고 봄철에 나는 ‘닥대’를 한 겨울에 먹을 수 없지 않는가.

선창에서 파는 닥대는 16마리에 만 원, 장어는 큰 것은 5마리, 작은 것은 10마리에 만 원씩 , 작은 갈치는 15마리를 준다. 서울에서 관광 온 노 부부 갈치속젓을 만 원 주고 샀다. 갈치속젓 맛을 아는 것을 보니 아마도 남도사람인 모양이다.

▲ 관광객들이 배에서 내리자 며느리는 이내 닥대 손질을 멈추고 관광객에게 달려가 닥대자랑을 한다
ⓒ 김준

▲ 학공치 손질하는 어민, 말려서 관광객들에게 팔 것이다.
ⓒ 김준

▲ 거문도의 은갈치
ⓒ 김준

▲ 조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가장 먼저 어부를 반기는 녀석들은 갈매기들이다.
ⓒ 김준
‘갈치’와 ‘삼치’로 먹고 사는 사람들

거문도 갈치는 그냥 갈치가 아니다. 꼭 ‘은’ 갈치라고 해야 한다. 여름철에는 크기가 그렇게 크지 않고 은갈치를 잡는데 이를 ‘풀치’라고도 부르고, 가을철에 제법 씨알이 굵은 것이 잡히는 이를 ‘댓갈치’라고 부른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채낚기’ 어업을 위한 뱃사람들로 거문도는 한바탕 시끄럽다.

채낚기란 무엇인가. 가장 많이 들어본 말이 동해안의 ‘오징어 채낚기어선’일 것이다. 방법은 똑같다. 그물을 사용하지 않고 여러 개의 바늘이 매달린 낚싯줄을 이용하여 밤에 불을 켜고 갈치를 잡는 것이다. 그물로 잡는 것보다 갈치의 은빛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 싱싱한 갈치를 잡기 때문에 거문도의 갈치회 또한 봄철의 ‘닥대매운탕’과 함께 거문의 대표음식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갈치는 제주 해역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북상하여 산란을 하고 9월쯤 찬바람이 나면 거문도 해역을 지나 월동지역으로 이동한다. 이 갈치가 통통하게 기름진 가을갈치이다. 일면 댓갈치라는. 뱃사람들이 노리는 놈이 바로 이 댓갈치이다. 내친김에 거문도의 철고기를 정씨에게 들어봤다.

“지금 요철에는 닥대 빨간고기가 최고고, 여름에는 갈치, 자리돔, 새우, 여기는 여름에 먹을 것이 많지. 여름에 푸지지, 돌돔도 나오고. 새우는 새우조망으로 잡아요. 빨간새우 가르마 새우라고. 가을에는 갈치 삼치, 겨울에도 삼치, 숭어도 잡고 숭어 많아요.”

특히 거문도의 대표 고기로 꼽히는 삼치는 살이 무른 여름보다 겨울에 맛이 좋다. 뱃살의 쫄깃한 맛과 꼬리의 부드럽게 씹히는 느낌이 최고로 꼽힌다. 현지주민들은 삼치를 ‘고시’라고도 부르는데, 통영에서는 ‘망에’, 동해에서는 ‘망어’ 서해에서는 ‘마어’ 등으로 불리는 것으로 보아 우리 나라 해역 전역에서 잡히는 것 같다.

▲ 여수로 돌아오는 길에 고흥반도로 지는 일몰이 아름답다.
ⓒ 김준
봄철에 거문도에 가거들랑 꼭 값싸고 맛있는 닥대 매운탕을 드셔보길 권한다. 물론 횟감으로 먹을 수 있다. 그리고 포구에서 말린 생선과 갈치 속젓도 장만해 두면 여름철 내내 거문도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바다에서 바다를 보다' 특별기획 '섬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정기적으로 혹은 의무적으로 글을 올리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한달에 1-2회 정도는 쓸 생각이며, 섬사람들의 생활, 문화, 생태, 역사에 초첨을 맞출 것입니다. '거문도 이야기'는 그 첫 번째에 해당합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