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의 아버지 앞으로 배달된 편지 내용 일부. 발신인은 A가 SNS에 올린 글과 A와 SNS 상에서 친구를 맺은 단체(한국여성의전화, 녹색당, 위티, 수낫수) 목록을 그대로 캡쳐해 편지에 첨부했다. ⓒA씨 제공
아버지는 처음에 A의 친구들을 의심했다. 아버지는 "너는 지금 친구들마저 적으로 두지 않았느냐. 친구가 네 SNS를 캡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A가 스쿨미투 재판에 휘말려 외로운 싸움을 하지 않길 바란 것이다. A는 친구들을 믿었지만 마음 속 한구석에 두려움이 스몄다.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편지 속 한 문장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 000는(A를 지칭) SNS 상에서 페미니스트이고 남성혐오적인 표현을 무척 많이 표현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저희는 모두 캡처하여 두었습니다.
"누가 SNS를 본 걸까"
중학생이던 A는 성실했고 공부에 재능도 있었다. 친구가 부모보다 소중한 여느 중학생 중 하나였다. 충북여중 스쿨미투는 그런 A의 일상을 흔들었다. 더 참았다가는 또 다른 친구가, 후배가 피해를 입는다는 걸 A는 잘 알고 있었다.
A는 충북여중 스쿨미투 공론화 계정을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다. 전국적으로 이슈가 돼 언론을 탔지만, 이내 관심에서 멀어졌다. 곧바로 "스쿨미투는 학교 망신"이라는 말이 학교 안을 떠돌다 A의 귀에 꽂혔다. 모든 걸 덮으려는 어른들과 맞서 싸우는 일이 힘에 부쳤다.
스쿨미투 고발 이듬해인 지난해, A는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같이 미투 운동을 했던 친구들은 각자 다른 학교와 학급으로 진학하면서 동력은 파편화됐다. A는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미투 운동 이후 A가 마주한 세계는 너무도 뒤틀려 있었다.
학교라는 공간은 A에게 너무 좁고 불편하고 또 폭력적이었다. 학교는 '친구가 있는 공간' 그 이상의 무엇도 아니었다. A는 고등학교 1학년 한 학기를 가까스로 넘기고 학교를 떠났다. SNS는 A를 세상과 이어주는 통로였다. 힘겨운 일상을 기록해 나가던 SNS는 그런 A가 허위미투를 했다는 증거로 쓰였다.
A는 친구들에게 "'혹시 네가 캡처한 거냐' 물어보지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친구들을 의심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A는 고민 끝에 "수신인이 보호자로 돼 있는 발신인 불명의 편지를 받은 사람이 있느냐"고 SNS에 글을 올렸다.
친구 K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가 같은 편지를 받은 것 같다"고. A의 중학교 친구인 K와 또 다른 친구인 B의 부모 앞으로 각각 비슷한 내용의 편지가 간 것을 확인했다. 나머지 편지에는 A와 스쿨미투 운동을 함께 했던 B에 대한 비방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