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동명교회
이주빈
인사와 이야기를 정겹게 나누던 이웃들이 언젠가부터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살았던 소박했던 주택들, 그리고 마당에서 봄을 알리던 동백나무의 꽃, 금목서의 가을 향기도 그 이웃의 집과 함께 하나둘씩 사라져 버렸고, 이웃집 정원과 나무가 같이 모여 있을 땐 매일같이 날아와 먹이를 찾던 작은 새들의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이웃들의 집, 나무가 사라져버린 자리에는 다른 동네에서 차를 몰고 온 사람들을 위한 주차장이 생겨났고, 소음과 매연을 내뿜는 차들이 우리의 새로운 이웃이 되었다. 계속해서 면적을 넓혀가는 주차장으로 인해, 오늘 집 대문을 열고나선 주민들을 맞이하는 건 수백 대의 차량들과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시멘트 바닥 그리고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날아오는 자동차의 퀴퀴한 매연뿐이었다.
시끄러운 소리, 많은 차량으로 인해 걷기 위험한 좁은 골목길 등 나빠지는 주거환경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함께한 집 정원에 있는 나무에 물을 주며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다른 이웃들처럼 아파트로 이사 가지 않고 아직 이곳에 남아있는 주민들의 유일한 이유일 것이다.
동명동 주민들이 빼앗겨버린 주거환경의 중요요소들하지만 광주 동명교회가 지금보다 2.5배나 더 큰 규모로 교회를 신축하면 이제는 그런 즐거움조차 누릴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남아있는 주민들도 먼저 동네를 떠난 이들을 따라 수십 년 살아온 이 곳을 떠나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살기 좋은 곳'은 어디일까? 한국주거학회는 초등학생들에게 '주거환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가 사는 집을 중심으로 집 앞에 있는 화단, 골목길, 공원,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놀이터, 공부하러 가는 학교,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 등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주거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기 좋은 주거환경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우선 태풍, 지진, 홍수 등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해야 하고, 피난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안전성). 우리가 사는 집으로 햇빛이 적절하게 들어와야 하고, 바람이 통하게 하여 통풍이 잘 되게 해야 합니다.또한 주변의 소음으로 인해 불편하지 않아야 하고 악취가 집으로 들어와서는 안됩니다(보건성).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집 내부의 공간구성, 가구배치, 수납 등이 생활에 적절하게 이루어져 있어 편리해야 합니다(편리성).
집들 간의 거리가 너무 좁아서 답답한 느낌이 들면 안 되며 주변 환경과 보기에 어울려야 하고, 주변에 학교, 병원, 시장 등 각종 생활에 편리한 시설과 쾌적한 공터나 공원이 존재해야 합니다. 또한 도서관이나 헬스센터 등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있어야 합니다(쾌적성). 더불어 우리말고도 여러분의 자녀가 될 다음 세대를 위한 생활환경도 유지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합니다(지속가능성)."과거에는 이웃들의 집이었지만, 현재는 수백 대의 차량을 위한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곳에 커다란 건물이 들어서게 되면 주변 집에는 햇볕조차 들지 않게 된다. 이로써 우리 주민들은 위에 열거된 주거환경의 5가지 중요요소 중 한 가지인 "보건성"을 "완벽하게" 상실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 커다란 건물이 내 집 담장 바로 옆에 지어지게 된다면 주변 환경에 의존적인 나머지 요소인 "쾌적성"과 "지속가능성" 까지도 망가지게 되어 내 집은 그 누구도 살고 싶지 않은 곳이 되어버린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웃 주민에게 상당한 피해를 주는 건물의 건축은 할 수 없도록 법으로 금지된 곳도 많고, 작은 집이라도 이웃 주민의 동의를 얻어야 건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의 건축법은 왜 이럴까 하여 이런저런 조건들을 찾아보니, 저렇게 큰 건물을 지을 때는 건축심의를 거쳐야 허가 할 수 있게끔 하는 법과 제도가 이곳에도 있었다.
이웃 주민의 동의까지는 아니지만, 구청 혹은 시청에서 선별한 건축 분야의 전문가들과 공무원, 구의원 등의 심의위원들이 해당 건물이 들어서게 될 경우에 주변에 미치는 영향뿐만 아니라 해당 건물이 주변과 어울리는지에 대한 조형미까지도 심의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이 건물이 들어서게 되면 "주거환경의 중요요소들"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되니 심의할 때 몇 가지 사항을 참작해 달라고 구청에 여러 번 민원을 넣었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이웃이 있는 마을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글로서만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떨칠 수 없는 요즘이다.
동명동 주민들이 동명교회 신축을 반대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