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개의 문> 한 장면.
영화 <두개의 문>
그 밤, 그 여자. 장형운 작가 잠시 찬바람이라도 쐬자 싶어 편집실을 나섰다. 그 야심한 밤, 어둑한 편집실 복도에서 나는 어깨가 잔뜩 구부러진 그림자와 마주쳤다. 다음날 나갈 PD수첩 방송을 준비 중인 장형운 작가였다. 우직해 요령이라곤 모르는 후배. 연이은 밤샘 작업으로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투명해져 유령처럼 창백해 보였다. '편집실 좀비'라고 불리는, 딱 그 몰골이었다. 내일 방송이 민감한 내용이어서 '방송정지 가처분 신청'이 들어올지도 모른다, 대본 한 글자 한 글자가 조심스럽다, 진도는 안 나가고 방송 시간은 다가오니 심장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 그녀는 빨갛게 짓무른 관자놀이를 더욱 꾹꾹 누르며 두통약이 있느냐고 물었다.
작가들 사이에서 이럴 때면 흔히 하는 농담이 있다. 시사 작가 10년이면 '돈· 명예· 권력' 빼고 모든 걸 얻는다고. 두통, 불면증, 근육통, 위염, 장염, 할부가 끝나지 않은 노트북... 그 밤 새삼스레, 그런데도 우리들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가... 해묵은 고민이 안 그래도 지친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 밤, 그 남자. 정재홍 작가
형운 작가에게 두통약이나 찾아주자고 들어선 한밤중의 사무실. PD수첩 자리에서 막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PD들과 정재홍 선배가 회의 중인 게 보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보니, 취재가 순탄치 않은 모양이었다. 잠시 후, 무거운 침묵을 깨고 재홍 선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괜찮다. 다시 찾으면 된다. 뭐 이런 일 한두 번 겪나." 재홍 선배는 동료 피디를 위로하며 짐짓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그러니까 지금 선배네 팀은 '아이템을 접는' 순간이었다. 며칠 공들인 취재를 포기하고 새로운 주제를 찾아야 하는, '위기'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도 재홍 선배는 어깨가 축 처진 리서처들을 다독여 집으로 돌려보낸 후 홀로 책상을 정리했다. 방금 접은 아이템 관련 자료인양 산더미처럼 쌓인 신문 자료, 논문 자료, 프리뷰 노트들을 일일이 뒤져보고는 혹시나 다음에 쓸 것들은 남기고, 필요 없는 것들은 이면지 함에 추려냈다.
PD수첩만 (당시) 10년째 집필하고 있던 정재홍 작가를 두고 피디 작가들 사이에선 사람이 아니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일본어로 '가미상(神님)' 혹은 '부처'라고 불리기도 했다. 매일 매주가 전쟁 같은 PD수첩을 그리 긴 세월 했으니 그가 죽어 화장하면 부처님보다 사리가 많이 나올 거다,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도 했었다.
'가미상' 재홍 선배가 이번엔 노트북을 켰다. 혼자서 이 밤에 새 아이템을 찾는 건가, 싶어 봤더니 가부좌를 튼 채 바둑을 두고 있다. 나는 선배한테 힘들어 죽겠다며 엄살이나 떨어보려던 마음을 접고 조용히 돌아섰다. 방송은 체력전이라며 담배를 끊고, 쉬는 날엔 등산을 가고, 행여 PD수첩에 누가 될까 은행대출조차 한 번 받지 않은 남자. 그의 유일한 '오락'이 바둑이었다. 선배의 머릿속이 얼마나 복잡할지, 이 야심한 시간 차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바둑돌을 놓는 속은 또 얼마나 쓰릴지, 그저 짐작만 할 뿐이었다. 나는 끝내 두통약을 찾지 못한 빈손으로 사무실을 나왔다.
'PD수첩 작가'이게 하는 것들 새벽을 향해 가는 시각. 돌아와 다시 편집기 앞에 앉았다. 오늘은 집에 들어가 푹 자고 싶었는데, 나는 왜 아직 여기 있는 걸까. 저들은 왜 이 힘든 프로그램을 떠나지 못하나. 서로 술잔을 기울여도 그런 쑥스러운 이야기는 오간 적이 없기에, 우리는 서로가 이곳에 머무는 이유를 다 알 수 없었다.
낮게 한숨을 쉬며 다시 편집기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형운 작가가 자판기 커피를 손에 든 채 편집실 문을 열고 나타났다.
"방송 직전도 아니면서 언니는 힘이 남아돌아요? 왜 벌써부터 밤샘이에요. 적당히 하고 집에 좀 가요." 짐짓 너스레다.
그때 화면 속에선 용산 철거민들이 주저앉아 통곡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이 취재를 나오고, 여야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현장을 방문하고, 이례적으로 담당 검찰이 현장 조사하고, 정부는 신속한 사건 규명과 처리를 선언했지만, 사고 발생 하루가 저물도록 망루에 올라갔던 철거민 가족들은 아빠와 아들, 형제의 생사조차 확인 못 하고 있었다. 혹시나 살아 있을까,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이 병원 저 병원 헤매는 모습이 고스란히 화면에 담겨있었다.
말없이 함께 보던 형운 작가가 내 등을 툭툭 두드렸다.
"그래 언니. 오늘도 저랑 같이 밤새셔야겠네요." 한마디를 남기고 그녀는 사라졌다. 그랬을 것이다. PD수첩 작가라면 그 화면 앞에서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들려오는 아프고, 약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하소연. 그것을 못 들은 체할 수 없고, 그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 그것이 '고행수첩'인 PD수첩을 3년씩, 5년씩, 12년씩 할 수 있게 만든 각자의 이유였을 것이다.
그날 새벽이 끝나기 전 나는 결국 물대포를 쏘는 용역 영상을 찾아냈고, PD들은 지독하고도 끈질긴 추적 끝에 그가 모 용역업체의 과장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용역과 전혀 관련 없다 발뺌하던 경찰의 거짓말이 드러나고, 급하게 수사를 마무리 지으려던 검찰은 1차 수사발표를 뒤로 미루고 보충 조사를 약속했다.
'PD수첩 방송의 파장' 'PD수첩이 밝혀낸 진실'... 신문지상을 장식한 큼지막한 활자들을 보며, 나는 뿌듯하기보단 착잡했다. 몇 날 며칠 몇 번이고 반복해 보았던 영상 속 망루 위의 철거민들. 건물 아래 기다리던 가족들을 향해, 취재진을 향해 하트를 그려 보이던 참사 전날 그들의 모습이, 그 후로도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