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구성작가협의회는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방송통신위위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PD수첩 해고 작가들의 복직을 요구했다.
강민수
[기사 수정 : 22일 오후 7시 12분]PD수첩을 제작하다보면, 방송 당일까지 취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러다 오늘 방송을 못 내보내는 것은 아닐까, 소름끼쳤던 적도 있었다. 그럴 땐, 팀원들 머리털이 모두 쭈뼛 서 있다. PD는 혀를 깨물고 편집을 하고, 작가는 심장을 멈추고 원고를 쓴다. 이미 애가 다 타버린 PD수첩 팀장은 편집실로 스튜디오로 종합편집실로 막 날아다닌다. 그래도 방송은 늘 제 시간에 나갔다. 그렇다고 끝이 아니다.
무사히 방송을 내보내도, 팀장의 분노는 계속된다. 제작진은 팀장에게 밤새 욕먹고, 다음 날 또 욕을 먹는다. 방송이 제 시간에 나갔지만, 방송이 제 시간에 못 나갈 뻔했다는 이유에서다. 만약 PD수첩이 내부의 사정으로 시청자와의 약속을 깨고 결방 되는 참변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담당 PD와 팀장은 물론 해당 국장까지 자리를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어제(21일) PD수첩이 결방됐다. MBC 노조가 파업을 잠정 중단한 뒤, PD수첩은 8월 21일 방송을 재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때 제 시간에 방송을 못 내보냈다. PD수첩 22년 역사에 이렇게 또 한 번, 오점을 남기게 됐다.
'나의' PD수첩 8년 역사를 함께한 여러 팀장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마치 제 자식 지키듯 PD수첩을 지켰다. 이상했다. 말랑말랑 온순할 것 같은 PD도 PD수첩 팀장 자리에만 오면 가슴 속에 머리띠를 둘러맸다. 온갖 종류의 외압을 막아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내부의 복잡한 사정들도 어떻게든 해결해냈다.
그렇게, PD수첩은 제때 제 시간에 제 목소리로 방송됐다. 그들이 지금 PD수첩의 팀장이라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적어도 PD수첩이 결방된 어젯밤, 쉽게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결방이 예상된 한 달 전부터 쉽게 잠들 수 없었을 것이다.
PD수첩이 결방된 어제, PD들이 PD수첩 배연규 팀장에게 "결방 사태를 어찌할 거냐"고 물었단다. 팀장은 "이 문제는 작가들이 풀어야지, 내가 어떻게 하냐"는 취지의 대답을 했다고 한다. 김현종 시사제작국장은 후배 PD들이 작가들의 편에 서서 자신을 공격하는 성명서를 낸 것에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단다. 그 팀장과 국장은 PD수첩이 결방된 어젯밤, 어쩌면 그 섭섭함에 잠을 설쳤을지도 모르겠다.
야만에 대한 분노PD수첩 작가 여섯 명을 한꺼번에 내쫓은 지 한 달째다. 결국 작가들을 집단해고 하고 새 작가를 구하지 못한 PD수첩은 결방되고 말았다. 이런 식이라면 다음 주, 그 다음 주 방송 재개도 불투명하다. 이미 900여 명의 시사교양 작가들이 PD수첩 대체 작가로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한민국 시사교양 프로그램 구성작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숫자다. 그러니, 어디서 작가를 구해 방송을 재개하겠는가.
예전, 한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해고를 통보했던 일을 방송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해고보다, 해고를 문자 메시지로 통보해버리고마는 그 야만이 믿기지 않았다.
PD수첩 작가들에겐 그마저 없었다. 짧게는 4년 길게는 12년을 일한 작가의 밥줄을 끊어놓고 알리지도 않았다. 뒤꽁무니로 새 작가를 물색하다 들켰다. 시사교양 작가들이 PD수첩 대체 작가를 거부하는 것엔 그런 야만에 대한 깊은 분노가 깔려 있다. 누구든 밉보이면 그렇게 내쳐질 수 있다는 데 대한 아찔함도 배어 있다.
PD수첩이 결방된 어제, MBC 김현종 시사제작국장의 정책 발표회가 있었다. 노조 파업 와중에 승진, 임명된 김현종 국장이 PD와 기자들에게 국 운영에 관한 생각을 내놓는 자리였다. 궁금했다. 김현종 국장은 PD수첩에 대해 어떤 대책을 내놓을까.
김 국장은 한 달 전, PD수첩 작가 사태에 대해 PD들에게 "작가 교체는 전적으로 내가 결정한 일이며,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했다. 부디 김현종 국장에게 뱀 같은 지혜가 샘솟아 사태를 해결하고, PD수첩이 정상화되길 바랐다. 정말 진심이었다.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판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