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소녀시대
SM엔터테인먼트
왁스라는 가수의 <오빠>라는 노래가 기억나는 세대가 있을 것이다.
"오빠, 나만 바라봐. 바빠, 그렇게 바빠."이런 가사가 반복되는 리드미컬한 댄스음악이다. '오빠'라는 단어가 꽤 흥겹고 괜찮은 리듬과 뒤섞여 대중가요로서의 역할을 다했던 왁스의 <오빠>. 시간이 지나, 인기 있는 걸그룹 소녀시대의 <오(oh)>라는 노래에서도 '오빠'가 등장했다. 오빠 팬들 난리 나는 건 당연한데 어찌 삼촌 팬, 아저씨 팬들까지 열광했던 건지…. 어쨌든 그들의 착각을 이용하여 소녀시대는 인기를 구가했다.
그런데 주변의 남자들을 바라보는 여자들의 시선은 소녀시대처럼 곱기만 할 수가 없다. 평생 '오빠'인줄 착각하고 사는 남자들. '오빠'라고 불리길 원하는 남자들. 걸들의 '오빠' 소리에서 해방되고 싶지 않은 남자들에게 이제 그만 해방되라고 외치고 싶다. 그렇지만 현실을 보면 쉽게 해방될 것 같지는 않다.
말끝마다 "오빠가"... '오빠'의 집착은 왜?말머리에 꼭 '오빠'라는 단어를 붙여 얘기하던 어떤 오빠가 있었다.
"오빠가 이거 해줄게.""오빠는 이런 거 잘해.""오빠가 (어쩌고 저쩌고)….""오빤 (이러쿵 저러쿵)…."늘 자신을 오빠로 지칭하며 대화하던 그 남자. 누가 오빠 아니랬나. '오빠'라는 단어를 강조하듯이 느껴지던 그 사람의 대화법은 능글거리고, 지겹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주변 동생들의 호기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저 오빠는 왜 저렇게 오빠 소리에 집착할까?""그러게…. 낸들 알겠냐."그리고 또 한 사람의 분노를 사기에도 충분했다. 바로 그 남자의 여자친구였다. 몇 번 마주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오빠'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남자가 다른 동생들에게 2음절의 '오빠'라는 단어로 대화를 시도할 때마다 조금씩 일그러졌던 그 여자친구의 얼굴. 나는 그 표정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나중에 알았던 사실인데, 그 '오빠'라는 사람보다 여자친구가 4살 연상이었다고 한다. 사실을 알고 나서야 나와 다른 친구들은 그 여자친구의 일그러졌던 표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여자친구가 오빠라고 안 불러줘서 그 말에 그렇게 집착했나?'동갑인데도 오빠라 부르라니... '수컷심리' 때문인가동갑이면서, 오빠라고 불리길 바라는 남자아이도 있었다. 남자보다 여자가 정신연령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 여자에게 감히(!), 동갑이기까지 한 주제에 오빠라고 불러달라 하는 것이 내게 용납되지 않았다.
오빠는 무슨… 말 그대로 그냥 '남자아이'인데…. 조금이라도 오빠 같아야 뒤통수 한대 딱 때리고 싶은 심정도 얼마쯤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건 뭔가 여자보다 늘 먼저이고 싶고, 우위에 있고 싶어 하는 '수컷심리'라고도 느껴져서 아주 큰 반발심을 가져다주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우연히 친해졌던 일행 중, 한 남자아이가 유독 그랬다. 동갑이면서 꼭 나와 같은 여자 친구들에게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다. 몇 번은 그냥 웃어 넘겼지만, 지치지도 않았던 그 아이.
말도 안 되게 '오빠' 소리를 지겹도록 원하는 그 아이의 품새가 영 못마땅해졌던 어느 날이었다. 기회가 찾아왔다. 한 방 터뜨릴 기회. 그 아이가 여럿이서 같이 밥 먹자는 전화를 내게도 걸어왔던 것이다. 뒤통수는 못 때려도 되받아칠 기회는 잡아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통화하면서도 그 아이는 오빠라고 부르면 자기가 밥을 쏘겠다는 둥의 허풍 섞인 발언을 했고, 나는 놓치지 않고 쏘아 붙였다.
차곡차곡 적립해두었던 모든 노여움을 한 번에 발산시켰다. 그 뒤로 그 아인 내게 전과 같이 행동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날 까다로운 여자, 무서운 여자로 여기게 된 것 같았다. 이글을 쓰면서 잊혀져있던 기억과 더불어 그 아이가 생각났다. 지방에 내려오게 되면서 연락이 끊겼는데, 지금도 여전히 '오빠'라고 불러달라며 여자애들 틈에서 깔깔거리고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