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당신을 믿어요"다운 펌...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차정평
짧게 잘린 내 머리가 처음엔 어색했지만, 언제까지 어색한 머리를 붙들고 살 수는 없었다. 멋진 헤어스타일을 꿈꾸는 것은 모든 전역자의 공통된 마음이렷다. '야한 생각을 하면 머리가 빨리 자란다'는 허무맹랑한 근거를 굳게 믿기 시작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느덧 헤어 스타일링이 가능한 수준으로 머리카락이 자랐을 때, 나는 과감히 미용실로 향했다. 평생 쳐다보지도 않던 패션잡지를 펼쳐 들고, 디자이너와 짧지 않은 토론 끝에 당시 유행하고 있던 '다운 펌'을 시도했다. 인고의 시간이 지나 다소 의아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나의 뒤로 디자이너는 내게 "손님, 너무 잘 어울려요"라는 찬사를 던졌다. 미용실을 나설 때까지 나는 디자이너에게 연신 물었다.
"정말 잘 어울리는 거죠? 어쭙잖은 위로는 아닌 거죠? 믿습니다. 디자이너님!"
헤어 스타일링은 근심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넘겼다. 어차피 헤어 스타일은 변했다. 돌이킬 수 없었다.
다음은 옷. 병장 시절, 복학을 꿈꾸며 한 푼 한 푼 힘겹게 모은 월급은 고스란히 의류비 지출로 이어졌지만, 이는 당연히 감수해야 할 것 중의 하나. 비싼 돈 들여가며 준비한 헤어 스타일과 패션으로 '오빠'에 한 걸음 나아갔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뿌듯함도 잠시, 개강날이 밝았다. 등굣길에 나는 여자 후배들과 정겹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현실의 반응은 냉담했다. 내 스타일의 변화를 알아봐 주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고, 공들여 준비한 의상은 색상 선택의 착오 때문에 온갖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지금 그 옷은 내 소중한 잠옷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는 내 가슴을 후벼 파는 질문을 던졌다.
"선배, 이거 군대가기 전에 산 거 아녜요? 오랜만에 복학했으니 옷 좀 사 입으세요."
더군다나 개강 총회에서 여자 후배들과 처음 대면한 내 모습은 쭈뼛쭈뼛, 우물쭈물 그 자체였다. 여자 후배들의 반응은 "오빠!"가 아닌 "오빠?"였다. 후배들의 이런 반응은 내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내게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
빵빵 터지는 오빠가 되고 싶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