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빈방문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이 30일 저녁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재만
대통령의 임기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일까? 요즘 들어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국민이 부쩍 많아졌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100일밖에 안 된 시점의 의문 제기치고는 거칠고 가혹한 면이 있다. 100일이라면 5년 임기의 18분의 1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기 때문이다.
이 짧은 기간에 이명박 정부는 참 많은 것을 보여 줬다. 세상에 혁명정부가 아닌 담에야 이 정부처럼 초기에 많은 것을 보여준 정부가 또 있으랴 싶다. 그리고 이 정부처럼 하는 일마다 족족 국민의 반발만 사는 정부가 또 어디 있었겠는가 싶다.
아마 점령국의 군정이라고 해도 이명박 정부처럼 국민이 반대하는 일만 골라서 성급히 다 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을 터다.
'선진화' 외치는 대통령, 후진하는 대한민국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임기에 회의가 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그래도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뽑히고 취임한 대통령이다. 그는 경쟁자를 압도적 표차로 이기고 당선된 대통령이기도 하다.
이런 자신감을 배경으로 이명박 정부는 "변화와 실용을 바탕으로 선진화 원년을 장식하겠다"고 호언하며 출발했다. 이명박 정부는 "선진화를 통해 대한민국을 세계 일류 국가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하여 '화합적 자유주의'를 국정 이념으로 삼고 '창조적 실용주의'를 실천 이념으로 삼겠노라고 했다.
그러나 출범한 지 불과 석 달 남짓 된 지금 대한민국이 '선진화'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아니, 오히려 '후진화'하고 있다고 여기는 국민들이 단연 더 많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국정 이념이라던 '화합적 자유주의'는 온데 간데 없어졌으며, 실천 이념이라던 '창조적 실용주의'는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음이 드러나고 있다.
사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이미 국민들은 스스로 선택한 대통령에게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작년 겨울 선거에서 이기자마자 마치 점령군처럼 진주한 대통령직 인수위가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으로 많은 파행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지난 정권과의 관계 설정에서 명백히 비이성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들에게는 '지난 정권과 닮은 것은 모두 악(惡)이며 달라야 선(善)'이라는 이상한 강박관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을 즐겨 쓰던 그들은 무엇 하나라도 지난 정권과 같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어륀지' 인수위와 '전봇대' 대통령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것은 유감스럽게도 모두가 무모하거나 치졸한 정책들 일색이었다. 그들은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프레스 프렌들리'를 선창했다.
새로 뽑힌 대통령은 재벌 총수들을 만나 자기 휴대폰 번호를 알려줬으며, <조선일보> 회장의 팔순연에 가서 자기는 언론이 두렵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것 역시 지난 정권이 기업을 과도하게 규제했고 언론을 불필요하게 탄압했다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국민에게 선사한 것은 생뚱맞게도 '어륀지'와 '0교시'였다. 알고 보니 지금 최대의 현안인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방침도 이미 인수위 시절에 보고가 된 것이었다. 그 시간에 대통령은 대불공단의 전봇대 두 개를 뽑고 의기양양해 하고 있었으니, 참으로 이 정권처럼 희화적인 모습으로 출범한 정권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지?
아무튼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월 25일 '함께 가요-국민성공시대'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취임선서를 했다. 5만여 명의 하객이 참석한 취임식은 성대하고 신명나 보였다.
취임식에 참석한 한 시민이, 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이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경제를 기다리지요, 경제"라고 엄지를 세우며 응대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취임식에는 미국 축산협회장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