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반 노무현 정책을 가장 발 빠르게 시도한 분야는 언론정책이다. 출범하기도 전에 혈세 55억원이 든 기자실 대못을 빼기로 결정했다. '5공화국식 기자등록제'로 논란이 됐던 홍보처의 정부부처 출입기자 관리 및 출입증 발급 권한도 각 부처에 이양하기로 했다.
빠른 속도다. 탄력 받은 이명박 언론정책이 뒤틀리기 시작한 것은 그러나 그 다음부터다. 언론사들의 간부성향 조사와 신문고시 전면 재검토는 암울한 그림자를 동반했다. 지난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문화관광부에 공문을 보내 언론사 간부진은 물론 언론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광고주, 산하 단체장 등을 조사대상에 포함하도록 지시해 물의를 일으켰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신문고시 전면 재검토는 '언론통제'와 함께 '과점 보수언론에 유리한 환경조성'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다 누리려는 과욕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데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신문들이 그토록 주장해 오던 신문고시 무력화 방침을 서두른 것은 한 쪽을 통제한 상태에서 다른 쪽을 장악하려는 시나리오라는 점에서 우려가 더 컸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른바 친위세력을 일선 언론사에 배치함으로써 독립성을 훼손하고 언론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방송의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언론계의 우려에도 3월 2일 최측근인 최시중씨를 방송통신위원장에 내정했다.
최 위원장은 3월 27일과 5월 12일 두 차례 김금수 < KBS > 이사장을 만나 정연주 사장의 퇴진을 압박했다. 법적으로 < KBS > 사장 임면에 관여할 수 없는 그가 < KBS > 사장의 진퇴를 거론하는 위법 행위를 저지른 셈이었다.
'이명박 언론시계'가 망가진 것은 사실 이 때부터다. 신문기사 삭제 압력과 TV 프로그램 결방도 이미 고장난 언론시계가 제대로 인식시켜줄 리 만무했다. 하필 <국민일보>가 불똥의 진원지가 됐다. 2월 22일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의 논문표절 의혹 후속기사를 누락함으로서 불씨를 키웠다. 내부 지시라고 하지만 청와대 압력설이 파다했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이 국민일보 편집국장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다룬 기사를 빼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된 건 4월 28일. 두 달이 흐른 뒤였다.
24시간 뉴스전문채널 사장자리가 정권교체 논공행상 자리?
오작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파견된 감사원 직원은 5월 14일 EBS에 프로그램 내용을 문의하는 전화를 걸어 광우병 쇠고기의 위험을 경고하는 내용의 '지식채널 e-17년 그 후' 결방 원인을 제공했다. 5월 13일에는 농수산식품부가 검역주권 포기 및 광우병 쇠고기 위험 문제를 다룬 < MBC > 'PD수첩'에 대해 민·형사상의 소송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와중에 방송사와 언론 유관단체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 측근의 노골적인 낙하산 인사 시도는 끊임없이 도마에 올려졌다. 양휘부 이명박 대선후보 방송특보 단장은 5월 16일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 사장 후보 3인에 선정됐다.
또 구본홍 전 < MBC > 보도본부장은 < YTN > 신임 사장 공모에 응모했다. < YTN >은 5월 29일 오후 3시 서울 시내 모 호텔에서 2008년 제4차 이사회를 열고 구본홍씨를 신임 대표이사로 전격 선임했다. 이날 이사회는 원래 서울 남대문로 < YTN > 사옥 17층 대회의실에서 열리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장소가 갑자기 옮겨져 결정됐다.
구 전 본부장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의 방송 상임특보를 지냈으며 그 후 언론계선 < YTN > 사장 내정설이 끊임없이 나돈 인물이다. 야무지게 망가진 시계는 다시 고쳐지지 않는 법. 즉각 회사 노동조합과 민언련 등 언론단체들은 "YTN은 정치적 독립성을 지켜야 할 보도전문채널"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을 사장자리에 앉히면 위상과 공신력이 훼손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24시간 뉴스전문 채널인 YTN은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언론사로서 정도를 걸어야 할 역사적 책무를 안고 있다. 그래서 초기부터 올바른 여론 형성에 기여하고, 사회 부조리를 들춰내며,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는 등 공공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왔다.
그런데 정권교체에 따른 논공행상 자리가 방송사 최고 책임자라는 점에서 당연히 논란이 예상돼 왔다. 그런데 끝내 밀어붙였다. 방송사 노동조합과 언론단체는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를 분쇄하기 위한 투쟁에 나설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히고 나서 향후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탄핵국면과 맞물린 인터넷 포털 사이트 세무조사
고장난 이명박 정권의 언론시계는 막무가내다. 취임 3개월도 안 돼 그를 탄핵국면으로 몰아가는데 주도했다는 이유 때문일까. 인터넷포털 손봐주기도 시작됐다. 서울지방국세청은 5월 22일 포털사이트 <다음>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다음>은 '촛불집회'의 발원지 구실을 한 아고라 사이트와 미국산 쇠고기 반대서명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포털이라는 점에서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정부와 언론은 각각 독립적인 영역이 있으며 기본적인 영역은 상호 간에 아무리 비판해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언론의 관계가 '자연스러운 대립관계'라든가 '건설적인 비판자의 관계' 또는 '견제와 균형의 관계'가 유지될 때 비로소 나라와 국민이 편해진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정부와 언론의 상호 간 근본적 차이를 무시하고 같은 입장과 시각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와 언론이 지나치게 밀월관계가 지속된다면 이 또한 피곤한 건 국민, 바로 나라의 주인이다. 전례 없는 지지율로 당선된 대통령 취임 100일을 앞두고 온 나라가 촛불시위로 술렁거리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힘 있는(?) 보수신문 편에 서서 또 다른 언론통제를 범하고 있으니 이 정부의 '소통' 방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한다. 지난 17일 <경향신문>이 보도한 정부의 '비판언론 대책회의'가 사실로 확인됐다는 기사는 이런 맥락과 일치한다.
이 신문은 "청와대 관계자와 정부 부처 대변인 등이 '언론대책회의'를 열어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파문에 대한 언론의 논조를 분류하고, 이에 대한 조직적 대응책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경향신문 등 쇠고기 파문에 비판적 논조를 견지해온 일부 언론들에 대해서는 사실상 정부 광고 배정 등에서 차별적 대응을 검토토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그런데도 <경향신문>의 보도 후 정부는 '경향신문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며 "국무총리 실장이 참석한 바가 없으며 신 차관도 특정 언론 논조를 비판하거나 언급한 바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한겨레 21>이 충분한 소스를 제공했다.
지난 27일 발행된 <한겨레21> 보도에 의하면 '비판 언론 대책회의'의 정식 명칭은 '부처 대변인회의'였고, '부처 대변인회의 참고자료'에는 당시 회의에서 신 차관 등이 한 발언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른바 '정부 광고 운영 방안'은 '주요 논의사항'에 포함돼 있는데, '언론·정부 공동(협찬)행사 활성화', '특정 언론 대상 정부 광고 및 기고 금지 조치 해제 이후 운영상 문제점' 등이 '부처 협조사항 논의'라는 항목으로 들어가 있다.
"부시의 푸들보다 대한민국 국민의 푸들이 돼달라"
<한겨레21>은 '공공갈등과 정책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이라는 자료도 입수해 공개했다. "정부를 비판하는 특정 언론사들을 대상으로 정부 광고를 집행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거론됐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더 가관인 것은 정부 홍보담당자 교육에 나선 한 대학교수의 황당한 강연내용이다.
문화부 홍보지원국 소속 공무원 12명의 '정책 커뮤니케이션 교육' 자료로 활용된 이 문건에는 "(인터넷) 게시판은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의 한풀이 공간", "멍청한 대중은 비판적 사유가 부족. 잘 꾸며서 재미있게 꼬드기면 바로 세뇌 가능", "무식한 놈이 편하게 방송하는 법이 대충 한 방향으로 몰아서 우기는 것" 등의 강연내용이 담겨 있다.
또 방송을 '감성적 선동 매체'로, 인터넷을 '저급 선동의 공간'으로 규정하면서 "멍청한 대중은 비판적 사유가 부족하므로 몇 가지 기술을 걸면 의외로 쉽게 꼬드길 수 있다"는 충격적인 '커뮤니케이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자료로 공무원들을 교육시키고 있으니 이명박 정부의 소통이 잘 될 리가 없다.
그런데도 이 정부의 과점 보수신문 편들어주기 노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신문협회가 산하 신문공정경쟁위 이름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문고시를 완화해 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신문협회는 지난 3월 30일 신고포상금제 폐지, 신문 무가지 규정 완화, 불법·불공정 행위에 대한 신문업계의 자율규제 등 건의를 담은 의견서를 공정거래위에 제출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 정부의 보수언론 챙기기는 그야말로 눈물겨울 정도다.
신문협회는 신문경영의 발전과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당연히 회원사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서로 입장이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한 협의를 거쳐 의견을 모아야 한다. 문제는 이런 일이 대부분 회원사들이 까맣게 모르는 사이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많은 신문 관계자들은 신문협회가 공정거래위에 의견서를 보낸 것은 금시초문이라며 신문고시와 관련해 의견을 물어온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언론을 잘 관리하고 통제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보겠다는 얄팍한 꼼수가 '광우병 정국'을 초래했다. "임기 다해가는 부시의 푸들이 되기보다는 대한민국 국민의 푸들이 돼 달라"는 주문이 비등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장난 이명박 정부의 언론시계는 과거로 빠르게 회귀하고 있다. 차라리 멈춰 세우는 편이 낫다. 그러지 않고서는 엄청난 저항과 분노를 가라앉히기 어렵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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