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파타르에서 본 에베레스트.김창호
드디어 하산이다. 그동안 두 달 여 머물던 자리라 아쉬움도 있다. 지긋지긋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고 싶을 줄 알았는데. 텐트를 쳤던 자리는 빙하바닥이 녹아서 움푹 패여 있다. 날씨는 완연히 따뜻하다. 아이스폴의 지형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베이스캠프를 떠나는데 그사이 알고 지냈던 이웃사촌들이 아는 체한다. 의무실 의사, 영국 방송팀, 말레이시아 원정대 등등. 하여튼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베이스캠프에는 우리가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른 이후 거의 매일 오전 중에는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이어졌다. 많은 원정대가 성공했다는 얘기다. 그 가운데 한국 실버원정대의 등정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같은 한국원정대여서가 아니라 우리 실버원정대의 등정은 곁에서 본 바로는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수없이 아이스폴과 베이스캠프와 딩보체 사이 고도격차 1000m를 오가며 적응 훈련을 하시던 어르신들이 하도 안쓰러워서 처음에는 '저 어른들 저러다가 큰일 나는 것 아닌가' 걱정했었다. 심지어 '본인들은 포기하기 어려울 터이니 나라도 나서서 말려야 하는 게 아닌가' 할 정도였다. 등정에 성공한 실버 원정대원들은 하산 길에 루크라에서 만났다. 큰 축하인사를 드렸다.
저 어르신들, 큰일 나는 거 아냐?... 그러나 성공
우리 원정대에서는 박 대장과 왕추가 하루 먼저 내려갔다. 동시에 머물던 텐트도 하나둘씩 걷히고. 우리는 몇이서 따로 고쿄 피크(5360m)로 돌아서 하산하기로 했다. 고쿄 피크는 넓은 코발트 빛 빙하호수와 정상에서 에베레스트 초오유봉 등을 조망할 수 있는 환상적인 풍경을 뽐내는 곳이다.
올라온 길을 바로 내려가는 것보다 약 이틀 정도가 더 걸리는 여정이다. 내려오는 길에 빈 야크들이 수없이 올라온다. 각국 원정대의 하행 캐러번 짐을 실러 오는 행렬이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의 하산 시즌이 왔음을 말해준다.
고쿄피크로 가기 위해서는 고락셉 로부체를 거쳐서 촐라파스(5330m)라는 큰 재를 넘어서야 한다. 그러나 그 길이 쉽지 않았다. 오르는 데 네 발로 기어 올라갔다.
700~800m를 내려갔다가 다시 베이스캠프만한 높이로 올라서 재를 넘고 급경사 암벽구간을 지나 또 베이스캠프 높이만큼 오르는 곳이 고쿄피크다. 로추체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서 하루 종일 걸었다. 말이 고개이지 고개가 눈 속에 쌓여서 30여분을 크레바스까지 비끼며 눈길을 올랐다. 그리고 다시 눈밭 급경사 내리막과 암석구간을 지나 몇 개 능선을 오르내리니 타낙 로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