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파들의 고향 남체 바자르이평수
저기 구름 위에 서 있는 저 에베레스트가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올라갈 곳이다. 온몸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전율이 흐르고 숨이 멎는 것 같다.
히말라야, 흰 구름 양탄자를 깔고 일광욕을 즐기는 여신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에 감동과 흥분에 젖은 채 그렇게 입국했다. 8000m 이상의 히말라야는 눈보라가 빚어 만든 '8인의 산사나이들'을 맑은 웃음으로 맞았다. 박상수 원정대장(49), 김홍빈(44) 원정부대장 , 에베레스트 등반대장 김주형(41), 김창호(38), 윤중현(37), 김미곤 대원(36), 로체등반대장 강연룡(36), 박남수(42), 이석희(22) 대원이 '희망 2007 한국도로공사 에베레스트 로체 원정대'의 면면이다.
"히말라야에서는 정치도 국가도 없다. 오로지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 동행할 뿐이다." 1953년 5월 29일 힐러리와 함께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던 네팔인 텐징 노르가이 세르파의 고백처럼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거대한 자연을 만나야 한다.
우리가 6월 2일까지 67일간에 걸친 에베레스트 장도에 오른 3월 28일 오후. 공항으로 향하는 원정대를 태운 버스 창을 천둥 번개를 동반한 우박이 세차게 때렸다. 한 낮인데도 어두웠고 봄비임에도 여름철 장대비처럼 빗발이 세었다.
30년간 산을 탄 박상수 대장. 평소 여유만만하게 대원들을 리드하는 그이지만 이날은 말이 없었다. 대원들도 22살 막내 이석희까지 긴장감에 숨이 막힐 것 같다. 산과 바람과 눈보라 빙하 크레바스를 건너며 히말라야를 누빈 이들 산사나이들은 생명을 나눈 형제보다 더 끈적끈적한 유대가 있다. 그리고 항상 밝았다. 그러나 출발을 앞둔 산사나이들의 표정은 지난 준비기간 동안의 농담과 웃음이 만발하던 분위기와 확연히 다르다. 내가 이들을 만남 이래 가장 긴장된 얼굴들이다.
박상수 대장. '살모사' 별명을 가진 베테랑 산악인으로 후배들에게 매우 엄격해 그 앞에 서면 심장 약한 후배들은 말을 더듬을 정도다. 이른바 '한 칼 하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 벌써 히말라야만 세 번 원정대장을 맡았다. 이번이 네 번째다. 한 번도 어려운데 대단한 기록이다. 나이 상으로는 이번이 그에게 대장으로서 은퇴원정이 될 것 같다.
박대장은 "30년 전 한국인 첫 히말라야 등정 이후 우리나라는 올해만도 5팀이나 히말라야에 오른다. 그러나 산에 오르는 순간부터 인간은 대자연 앞에 작고 왜소한 인간으로 외롭게 맞서야 한다. 지금 심정은 첫 걸음마를 떼는 아이의 마음 같다"고 한다.
"등반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떠나는 무념무상의 순례다. 너희들을 위해 많은 기도해주마." 광주에서 산을 가르쳐 주었고 히말라야 원정대도 이끌었던 윤장현 YMCA이사장의 말이 대원들의 가슴을 맴돌고 있는지 모르겠다.
눈보라 빙하 크레바스 건너며 히말라야를 누빈 산사나이들
이번 원정 대원들의 등반경력은 거의 국가대표 급들이다. 대학산악팀에서부터 시작해서 끊임없이 쉬운 길보다 어렵고 새로운 코스를 찾아 도전해왔다. K2, 시상팡마 남벽 신루트 개척, 세계3대 난코스 가운데 하나인 낭가파르밧(8125m)의 루팔벽과 8000m급에서 암벽등반까지 해야 하는 로체남벽 등반이 그것이다. 이번 에베레스트 등정은 산악인으로서 상징적인 보너스를 주는 원정일 수 있겠다.
희망을 위한 2007 한국도로공사 에베레스트 로체 원정대. 이름이 길다. '희망을 위한 2007'은 '열 손가락이 없는' 김홍빈 대원이 이번 원정대 부대장으로 동반 등반해서 붙인 이름이다. 세계 최고봉 등반에서는 제 한 몸 추스르기도 벅차다. 생명을 걸어야 하는 상황도 맞닥뜨린다. 그럼에도 이들은 장애인 선배와 동행, 그를 정상에 세울 계획이다. 등산화 끈을 매기도 어려운 장애인과 함께 설산을 넘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다.
희망. "정상등정보다 아름다운 것은 희망이다. 장애인과 함께 하는 남다른 도전으로 희망과 용기를 주는 국민 속의 공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자"며 적극적으로 원정을 이끌어준 한국도로공사 손학래 사장에게 대원들은 고마울 따름이다. 박상수, 김주형, 강연룡, 김미곤 대원 등으로 국내 유일의 공기업 산악팀을 이끌고 있는 한국도로공사는 김홍빈, 김창호, 윤중현 대원 등 전문산악인을 이번 원정대에 초청하여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