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평수
지난 2주일 동안 겪은 고소적응 과정 중에 일어난 사건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1) 3400m 남체바자르까지 1단계 적응과정 : 루크라 공항에서 남체바자르
2) 4900m 로부체 2단계 적응
3) 5300m 헬기로 베이스캠프 가며 겪은 고소증.
[1단계] 남체 바자르까지
산행 사흘째(4월3일) 해발 3400m 남체 바자르의 숙소에서 고소적응을 위해 하루를 쉬고 있다. 히말라야 원정출발 때부터 줄곧 머릿속을 짓누르는 공포 가운데 하나가 고소증이다. 어제 출발지점인 팍딩과 현재 머물고 있는 남체바자르 지점의 고도차는 800m. 대기압차이만도 80mb다. 원정대의 모든 주의사항과 대화는 ‘고소식(고소증에 걸리는 것)안 먹기’였다. 무던히도 고소증을 피하려고 했는데 고소증세가 있다. 어지럼증과 약간의 두통이 있다. 체온유지를 위해 24시간 털모자를 쓰고 물을 쉼 없이 마시고 여유롭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려고 했는데도.
나는 이곳 남체에 어제 일행들보다 1시간 정도 늦은 오후4시쯤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놓고 잠깐 눈을 붙였다 깨고 나니 몸이 전후좌우로 흔들리는 것 같다. 약한 현기증이 계속되었다. 저녁에 닭매운탕을 먹고 즐겁게 웃고 놀다가 8시 반쯤 잤다. 깨다 자다를 반복하다가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여전히 어지럼증이 남아 있다. 토스트로 가벼운 아침을 먹고 현기증을 누르면서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다. 점심때가 다 된 지금도 순간 배 위에 타고 있는 느낌이다. 아스피린을 한 알 더 먹어 보아야겠다.
고소증은 사전에 많이 들었다. 스스로 체험하기 이전에는 경험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바람에 오히려 불안감이 더 컸었다. 허풍과 사실이 적절히 뒤엉킨 고소증세 설명들. 내 몸으로 직접 생체실험을 해보아야 정확한 해답이 나올 것 같다. 미리 서울 전문등산장비점에서 고도와 기압이 나오는 시계를 구입했다. 시간마다 기록해 보기로 했다.
나에게 경미한 고소증은 첫째 날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1500m)에서 2840m고지에 있는 루크라공항에 도착하면서다. 경비행기가 4000~5000m 고봉을 넘을 때 약한 멀미감이 있었다. 40분 비행 끝에 큰 산허리에 제비집마냥 아슬아슬하게 만들어진 루크라 공항에 도착하자 미식거림이 더 심해지고 현기증도 느껴졌다. 약간 한기도 느껴졌다. 고소증에는 추위도 적이다. 재빨리 준비해간 털모자를 덮어쓰고 따뜻한 티를 쉼 없이 마셨다. 소변을 한 시간 간격으로 볼 만큼 줄기차게 마셨더니 미식거림이 사라졌다. 호흡으로 부족한 산소공급을 물속 산소로 대신하는 것 같다.
이후 루크라공항에서 팍딩까지의 트레킹은 고도가 200m 낮아지므로 별 걱정이 없었다. 점심때까지는 잣나무 숲과 깎아지른 듯한 빙하협곡에 희뿌연 빙하수가 만들어낸 풍광을 감상하면서 산을 올랐다.
2740m 고도의 아름다운 조르살레. 강변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3440m 남체바자르까지 급경사를 쳐 올라야 한다. 출발을 앞두고 김미곤 대원은 “5분 이후부터 고소증세 구간이 시작된다. 구토만 하지마라. 우리 중 절반은 고소를 먹을 것이다. 하산에 대비해서 경치 좋은 로지(숙소)를 잘 봐 두라”고 겁을 준다.
최대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수백m 협곡 중간허리에 걸려 있는 현수교를 건너 본격적으로 가파른 오르막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뗀다. 덥다. 땀이 나지 않게 걸어라 했는데.
첫째 날 숙소가 있는 팍딩의 해발고도 2600m 대기압 741mb라 첫 도착 공항인 루크라보다 200m 낮다. 둘째 날 캐러밴 과정의 시간과 고도와 대기압변화를 보면 고소를 부르는 환경변화가 매우 심함을 알 수 있다.
12:55. 해발고도 2,935m, 대기압 710mb
13:15. 해발고도 3,000m, 대기압 704mb
14:00. 해발고도 3,100m, 대기압 696mb
14:30. 해발고도 3,200m, 대기압 687mb
14:50. 해발고도 3,300m, 대기압 679mb
15:22. 해발고도 3,340m, 대기압 675mb
이런 고도의 차이가 내 몸에 나타난 현상이 어지럼증이다. 그나마 머리가 아프지 않아 다행이다. 신비로운 자연의 체험은 계속된다.
고산등반에 익숙한 우리 대원들도 크고 작은 고소를 경험했다. 막내 이석희 대원(22)이 가장 심한 것 같다. 이석희는 7000m 등반경험이 있다. 하지만 하늘같은 선배들과 동행에 따른 부담이 컸을 것이다. 고소증을 악화시키는 일종의 스트레스인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기록촬영 담당인 김창호, 윤중현, 박남수 대원이 출발 첫날 카투만두와 루크라 간의 경비행기 운항중단으로 본대보다 하루가 늦어졌다. 그 바람에 이석희가 캠코더를 대신 들고 캐러밴 대열 앞뒤를 급히 오간 것이 호흡조절과 고소적응에 무리를 준 것 같다.
이석희는 남체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두터운 털모자와 우모복을 껴입고 멍한 표정으로 숙소와 식당을 오간다. 활달함이 현저히 줄었다. 하루 밤을 지낸 오늘 아침에는 눈이 반짝이면서 회복이 된 표정이다.
김홍빈 대원도 두터운 우모바지를 입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꿈쩍도 않고 쉬고 있다. 얼굴이 핼쓱하다. 이 베테랑도 팍딩에서 밤새 설사를 했다. 수 없이 많은 원정을 해온 베테랑 김홍빈도 초기 고소증을 겪는 것 같다.
다만 김주형, 김미곤 대원은 멀쩡한 얼굴로 준비에 분주하다. 기민하게 대원들에게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보온을 위해 방한복과 온수를 챙겨준다. 원정이 처음인 대원들은 이곳 남체 골목시장에서 털모자를 구해 눌러 썼다.
박상수 대장은 거북이걸음으로 적응하는 노련미를 보였다. 한 고개 돌면 쉬기를 반복, 맨 꼴찌로 남체에 들어왔다. 이날 밤 전 대원이 잠들 때까지 전체를 챙기며 건재를 과시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박 대장은 캐러밴 출발부터 과열 과속을 적절히 조절하며 능수능란하게 통제했다. 원정대장이라는 과중한 업무로 고소증으로 죽을 고생을 한 선배들이 많았다고 한다.
“등산은 시간을 다투는 것이 아니다. 누가 가장 마음의 여유를 갖고 겸손히 안전하게 완주하느냐가 관건이다.” 고수다운 생각이다.
고소적응의 가장 좋은 방법은 본인만의 페이스로 무리하지 않기다. 특히 화내거나 스트레스는 금물이다. 한국식 빨리 빨리로 가다가 낭패를 당한 이들은 셀 수도 없다. 당하고 나야 안다. 그래서 세르파 주민들은 얘기한다. “비스타리(Bistari), 비스타리(천천히, 천천히)”라고. 평탄한 길이 나도 기존 주법대로 걷고 급경사 길이 나오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천천히 올라간다.
세계 최고봉, 히말라야는 초입부터 인간의 기본기를 가르치는 것 같다. 주제를 알고 자기호흡, 자기 주법대로. (4월 3일 작성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