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무에 동물이 걸렸는지 확인하러 온 올무꾼.강기희
좀더 지켜보기로 했다. 개짖는 소리가 신경 쓰였는지 사내는 몸을 더욱 낮추었다. 그는 한 곳에만 머물지 않고 조금씩 산자락을 타고 이동했다. 손놀림은 빠르고 정확했다. 주변을 끊임없이 살피는 것이 보통의 산꾼들과는 달라 보였다.
순간 '올무를 놓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순간 오리발을 내밀 수 있으니 일단 사진을 찍어야 했다.
사내는 산등성이를 타고 넘는 동안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올무를 놓았다. 산을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사법권이 없으니 사내를 다그쳐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가 "너가 뭔데?"라고 반발하면 상황은 우스워진다. 좋은 말로 사내를 설득해야 했다.
사내는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내가 산을 내려오는 사이 큰 기침을 하며 다가갔다. 그는 순간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신발과 옷에 묻은 눈을 털어냈다. 그런 사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의식했던지 고개를 외로 꼬며 걸어왔다.
"처음 보는 분인데 어디서 왔어요?"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부드럽게 물었다.
"읍에서 왔어요."
여기서 읍이란 정선읍을 말한다. 읍내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지켜보니 올무를 놓는 것 같던데, 그런 거 놓으면 안 되지요. 안 그런가요?"
내 말에 사내가 움찔하더니 말을 더듬는다.
"아, 예, 뭐…. 몇 개 안 놓았어요."
"몇 개가 아니라 하나라도 놓으면 안되는 거 아닌가요?"
"겨울철 일은 없고…. 하도 심심해서 와본 거래요. 이 마을 사는 친구가 여기에 놓으면 된다 그래서…."
사내가 마을에 사는 친구를 들먹였다. 첫날엔 친구와 함께 왔단다.
"지난 번 눈오기 전에도 놓았죠?"
"예, 한 나흘 됐어요."
"그래, 걸린 게 있던가요?"
"그렇게 빨리 걸리진 않애요."
"그럼 올무를 봄까지 그냥 두는 거네요?"
"아니래요, 지켜봐서 걸리지 않으면 다 걷어요."
"그걸 어떻게 믿죠?"
올무가 죄라는 걸 모르는 사내
사내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더니 대뜸 "○○ 아냐"고 물었다. "안다"고 했더니 '처남'이란다. 또 "△△ 아냐"고 물었다. 물어보는 이가 '친구'라고 하니 '사돈'이란다. 이래저래 따지고 보니 학교 후배다. 시골이란 게 이래서 큰 일 하기가 쉽지않다.
"이제보니 알 만한 친구로구먼."
그 말에 사내의 얼굴이 펴진다.
"내가 요즘 올무에 관해 얼마나 신경쓰는지 모르는가 본데, 좋은 말 할 때 올무 다 걷어라. 응?"
"아예, 걷어야죠. 걷을게요."
"근데 올무 놓다 걸리면 어떤 죄를 받는지는 아냐?"
"벌금 좀 내면 된다는 얘긴 들었어요"
"얘기만 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