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왕산 자락, 평화롭기 그지없다.강기희
가리왕산 자락에 빛이 스민다. 간밤엔 별도 많았다. 마당엔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밖으로 나가니 낑낑이가 마당을 겅중겅중 뛰며 아침 인사를 한다. 어제의 공포를 벌써 잊었나보다. 낑낑이는 나와 함께 사는 친구다.
주인도 분간 못하는 '덫의 공포'
먹이를 주고 올무에 걸렸던 자리를 확인해본다. 다행히 큰 상처는 없다. 상처가 있다한들 동물병원에 데려가지는 못할 것이다. 지난번에는 수의사의 손에 상처를 냈던 낑낑이다.
"수의사 생활 30년이 넘었는데 개한테 물리긴 처음이네."
수의사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지난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덫에 걸린 이후 낑낑이는 인간에 대한 적개심이 대단했다. 주사를 맞는 대신 알약을 받아 들고 집으로 왔다. 덫은 멧돼지를 잡기 위해 수수밭에 놓았는데 사람도 다칠 만큼 위력이 대단했다.
그날 낑낑이는 자신의 발목을 조이는 덫을 이빨로 물어뜯었다. 쇳덩어리는 강력한 이빨로도 어쩔 수 없었다. 낑낑이의 입에 피가 흥건했다. 덫을 푸는 일도 쉽지 않았다. 공포감에 휩싸인 낑낑이에게 그 순간은 주인인 나도 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