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건축공사로 훼손된 유골 잔해오마이뉴스 심규상
"유골훼손 사례를 방지토록 해당 지역주민들에게 홍보하고 개장시 기록보존 철저 등 조사활동에 협조하겠다."
대전 산내학살사건이 반세기만에 세상에 알려진 2000년 초.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학살암매장지(동구 낭월동 산13-1번지 일대) 현장보존 요청에 대한 대전광역시와 동구청의 회신 내용이다.
희생된 유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는 이곳이 학살현장임을 알리기 위해 주변 곳곳에 표지석과 안내판을 세웠다. 2000년 7월에는 수백명이 참석한 가운데 첫 위령제를 지내기도 했다.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영혼을 달래는 위령제가 이어졌다. 매년 전국 각지에서 유가족은 물론 동구청 관계자들까지 참석했다.
반세기를 지나는 동안 7000여구로 추정되는 유골 대부분이 이미 훼손됐지만 적어도 더 이상의 훼손은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같은 믿음은 대전시와 동구청의 '현장보존 협조' 답변이 나온지 꼭 1년6개월만에, 두번째 위령제를 지낸 직후 깨져버리고 말았다.
지난 2001년 10월, 동구청은 이곳 암매장지 한복판에 건축허가를 내줬다. 순식간에 교회건물이 들어섰다. 공사도중 수천여 점의 유골이 작업화에 밟히고 포크레인 삽날에 쪼개져 현장 곳곳에 널부러졌다.
부서진 유해를 쓸어담으며 울부짖는 유가족들에게 건축허가를 내준 동구청 관계자의 첫마디는 "이곳이 유골이 매장돼 있는 학살현장인줄 몰랐다"는 말이었다. 뒤이어 붙은 해명은 "설령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사유지인 이상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문제가 확산되자 동구청은 뒤늦게 '건축허가 중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동구청의 건축허가 중지 명령을 끌어낸 힘은 "반인륜적 행정"이라며 흥분한 유가족들의 항의가 아니었다. 국무총리(제주4.3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위원회 위원장)와 제주도지사의 요청이 보다 크게 작용했다.
당시 임영호 동구청장(현 17대 총선 출마예정자)은 "이렇게 중요한 곳임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며 "청장으로 있는 동안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법원 또한 공사중지명령을 문제삼은 건축주에게 "공익이 개인 재산권 행사 등의 사익보다 우선하는 경우 건축허가 이후에도 공사중지를 명하는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공사중지명령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유가족들은 다시한번 상처를 입었지만 동구청이 늦게나마 '중요한 곳임을 깨달은 자체'에 위안을 삼았다. 그런데 이같은 위안마저 부질없는 것임을 확인하는데는 그로부터 얼마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