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구성작가협의회는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방송통신위위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PD수첩 해고 작가들의 복직을 요구했다.
강민수
아주 잠시, 김재철 사장님께 쓰는 게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 말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분을 모르거든요. 워낙 유명하신 분이고 작가들의 피켓에도 등장하실 만큼 '친근한' 얼굴이지만, 한 번도 직접 뵌 적은 없습니다. '모르는 분'이다 보니, 그 분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올 때마다 '원래 그런 분'이겠거니, 생각하곤 했습니다. PD, 기자들이 그토록 뵙고 싶어도 뵐 수 없다는 사장님이, 하물며 일면식도 없는 일개 무명작가의 글을 읽어봐주실 리가 없지요.
무엇보다, 한 방송사의 사장님이나 되시는 분이, 체신 떨어지게 '이런 졸렬한 짓'까지 하셨을 거라고는 믿고 싶지 않습니다. 더욱이 기자 출신이시니, 작가들이 하는 역할도, 그 중요성도 모르실 테고요. 그래선지 다들 말하더군요. 이번 PD수첩 작가 전원 해고는 당신이 'PD수첩 죽이기'를 위해 기획하신 또 하나의 '작품'이라고.
그래서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님, 제가 '아는 분'인 당신께 이 편지를 씁니다. 그간 네 번의 긴 성명서, 수십 개의 피켓과 구호로 이미 많은 말씀을 드렸지요. 수십 명 유명 드라마·예능 작가님들의 성토 메시지도 보셨을 겁니다. 그게 다 당신에겐 '소 귀에 경 읽기'였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오늘은 목에 힘을 빼고, 조곤조곤 제 개인적인 단상을 좀 전해드릴까 합니다.
전체 방송작가들의 '적'이 된 사나이그러고 보니 본부장님을 가까이에서 뵌 지도 오래되었군요. 언젠가 한번 10여 미터 전방에서 지나가시는 것을 본 적은 있으나, 미처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반가운 척 다가가 인사를 드릴까, 아님 모른 척 지나갈까, 고민하다가 그만 타이밍을 놓쳐버렸지요. 아마도 그전처럼 방긋 웃으며 인사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때도 이미 한창 당신이 휘두른 '칼'에 PD수첩이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던 때였으니까요.
게다가 '이런 사태'까지 벌어졌으니, 요즘 작가들은 모였다 하면 어쩔 수 없이 당신에 대한 성토를 쏟아내고는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한 선배가, 아주 오래전 당신에 대한 '기억' 한 자락을 꺼내놓더군요.
무슨 일인가로 PD들이 파업을 할 때 당시 국장이 보조 작가들에게 돈을 줄 수 없다는 방침을 내리자 당신이 노발대발 국장실을 찾아가 따지셨다지요. "PD들이 월급 못 받는 건 그렇다 쳐도 보조 작가들에게 일을 시켰으면 돈을 줘야지 안 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 창피한 줄 알라"고. 그 결과 보조 작가들이 돈을 받게 되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전설' 같은 얘기였지요.
곧이어 여기저기서 당신에 대한 '우호적인' 기억들이 보태어졌고, 이어 이야기는 "'원래 안 그랬던 분'이 왜 저렇게 변했을까"에 초점이 모아졌습니다. 이런 저런 추정들이 나왔지만, 그 깊은 뜻을 우리가 다 알 순 없지요. 대신, 저도 당신에 대해 오래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기억 한 자락을 꺼내보렵니다.
내 기억 속의 그 남자 - '멋진 PD' 백종문오래전, 제가 PD수첩의 보조 작가로 방송계에 입문한 지 갓 1년이 안 되던 무렵입니다. PD수첩이 하고 싶어 MBC에 들어왔는데, 막상 해보니 너무나 고되어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노동환경이 어떻게 PD수첩 같은 프로그램에 있을 수 있나, 배신감과 분노로 치를 떨 때였지요. 이 일을 계속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깊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당신이 PD로 발령받아 왔고, 얼마 안 되어 한 팀으로 '장기 이식' 아이템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제목이 "인철이의 선물"이었는데, 혹 기억하실런지요. 열두 살짜리 남자 아이가 교통사고로 실려 왔고, 결국 뇌사 판정을 받았지요.
내내 애끓는 오열을 멈추지 않던 부모는 기진맥진한 몸으로 어려운 결단을 내렸습니다. 인철이의 자그마한 몸에서 적출된 장기들이 어른 다섯 생명을 살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제작진도 함께 목이 메었습니다. 알고 보니 인철이는 저 남쪽 지방 낙도의 찢어지게 가난한 집 아이였지요.
먹먹한 가슴을 뒤로 하고, 프로그램 절반에 담길 장기이식법 개정 내용과 관련해 회의하던 자리. 순간, 당신의 명쾌한 한 마디가 일개 보조 작가로 멍하게 듣고 있던 저의 가슴을 때렸습니다.
"장기는 그 속성상 가난한 사람의 몸에서 돈 많은 사람들의 몸으로 흘러가게 돼 있어. 그걸 막는 것이 장기이식법의 관건이지." 정말이지, 그때의 충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 PD수첩의 관점이란 이런 거구나.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방송을 만드는구나.'그 순간 저는 진심으로 PD수첩이란 프로그램에 매료됐고, PD수첩을 만드는 사람들이 멋져보였습니다. '이 고된 시간들을 견뎌내고 무럭무럭 자라서, 꼭 PD수첩 작가가 돼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기도 했지요. 명쾌한 관점으로 거침없이 취재를 계속해가던 그때 당신의 모습은 참으로 '샤프'해 보였고, 내 기억 속에 당신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멋진 PD'로 각인되었습니다.
저를 '작가'로 키웠던 8할은 바로 당신 같은 멋진 PD들과 멋진 작가들의 수많은 '어록'이었습니다. 그 어록들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감수성과 PD수첩의 관점을 배웠습니다. 부자인 사람보다 가난한 사람 쪽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쪽보다 당하는 사람의 편에서, 속이려는 사람보다 속는 사람 입장에서, 윗사람들의 공허한 명분보다 단 한 사람의 억울한 피해자가 없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무엇보다 인간적이고 상식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프로그램에 담아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와 같은 '어록'들이 면면히 계승되어 'PD수첩의 사람들'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 가르침 속에 성장한 멋진 PD들과 작가들이 PD수첩의 22년 역사를 차곡차곡 쌓아왔을 것입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당신도 분명, 그 '역사' 중 한 명이었습니다.
당신의 칼에 쓰러지는 'PD수첩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