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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m 고층 아파트 건설이 계획돼 있는 조치원읍 신안리 현장 전경
ⓒ 황규용

고려대 서창캠퍼스와 홍익대 신안캠퍼스 사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신안리). 이곳은 학생들이 거주하면서 최근 원룸 건물과 편의점, 음식점, 빨래방 등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마을주민 대다수가 농사를 짓고있는 주변은 뒷산과 골짜기, 논밭, 구릉, 과수원이 둘러진 여지없는 시골풍경이다.

조용하던 이 마을이 최근 술렁이고 있다. 마을 골짜기 앞 2만3000여평에 지하 2층 지상 15층 높이의 고층 아파트를 지을 계획이 알려진 것. 모두 1075세대로 이중 33평형 359세대를 뺀 나머지는 모두 38평, 46평, 54평형 등 고급형으로 계획돼 있다.

주민들은 이를 일부 건설·투기세력들의 행정도시 특수를 노린 분별없는 집짓기로 보고 있다. 비교적 건축이 자유로운 조치원읍내 일반 주거지역인 외진마을까지 찾아내 주변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수익이 큰 아파트를 지으려 한다는 것.

실제 시행사인 REDI는 지난해 4월부터 이 지역 땅을 매입하기 시작하다가 행정수도 위헌 판결 직후 공사계획을 취소했다. 그러다 년초 행정도시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지난 3월 다시 아파트신축 공사를 벌이기로 한 것.

계획 수립과 땅 매입 과정에서 마을 주민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지난 3월 마을주민 11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 조성 계획에 대해 95%가 '소문으로만 들었다'(47%)거나 '처음 듣는다'(47.8%)고 답변했다.

주민들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경우 마을 앞 산과 들의 경관이 가로막히고 골짜기 공기 흐름을 막아 건강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주민들은 '신안리 고층아파트 주민대책위'를 구성하고 주민들의 입장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것과 '전원마을 단지' 조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아파트 건립이 불가피할 경우에도 7층 이하의 저층으로 조망권 등 생활권 침해를 최소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공사측은 지난 달 말 주민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15층을 지을 수 있는 2종 일반주거지역이 별로 남아있지 않아 신안리를 택했다"며 "친환경적 아파트를 건설하려 한다"고 맞서고 있다.

5년 동안 승용차 5대 증가? 엉터리 교통영향평가서

"교수 아닌 주민 입장에서 고층아파트 저지 주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은 고려대 강수돌 교수
ⓒ 오마이뉴스 심규상
시공사측은 현재 교통영향평가심의를 얻은 후 충남도에 사업계획 승인을 신청한 상태다. 충남도는 "관련법상 고층 아파트 건립이 가능한 2종 일반주거지역"이라며 "지구단위계획과 개발행위 허가 심의를 거쳐 승인 여부를 최종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있는 연기군 관계자는 "고층아파트 건립이 가능한 2종 주거지역이어서 법적 하자가 없는 상태"라며 주민들 요구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충남도의 심의를 통과한 교통영향평가서는 한마디로 부실 투성이다. 해당 지역 교통영향평가서에는 우선 아파트 준공 후 5년 동안 모두 8대의 교통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예측했다.

아파트 주민들이 입주하는 2008년의 1일 승용차 출입량이 1547대(택시 포함 1848대)인 반면, 5년 후인 2012년에는 승용차 5대(1552대),택시 등을 포함 모두 8대(1856대)가 증가하는 것으로 예측한 것.

여기에 주민들의 교통영향권 밖에 있는 청주시 지표를 이용해 평균증가율을 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도시 건설에 대한 교통발생율은 아예 고려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 주 통행로인 핵심 25m, 20m 도로도 예산이 서있지 않는 등 아파트 준공 전 건설계획조차 불투명한 상태다.

(사)녹색연합부설 녹색사회연구소는 최근 교통영향평가서 분석보고서를 통해 "실제보다 교통량 수치가 훨씬 적게 산출되도록 인위적으로 조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발생교통량 소통 및 진출입을 위한 핵심도로 개설 계획이 없는 등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처럼 심각한 오류가 있는 평가서가 승인된 것은 충남도의 무책임한 행정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주민들은 이같은 이유로 충남도에 교통·환경 평가를 다시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충남도 도로교통과 관계자는 "교통·환경평가서는 시행사측이 의뢰한 교통전문가에 의해 적법하게 작성돼 적법하게 심의를 통과한 것"이라며 "현재 사업승인권자인 도 주택도시과나 사업시행자가 아닌 지역주민 등 제3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책위에 참여하는 대학 교수들 "고층 아파트 대신 모범적 생태 마을을"

이 마을 '고층아파트 주민대책위'에서는 강수돌, 송덕선, 정행진씨 등이 활동하고 있다. 이중 강씨는 수년 전 이사해 이 마을에 정착한 인근 고려대 서창캠퍼스 교수다.

강씨는 요즘 시간이 나는대로 도청과 군청을 오가며 항의 시위는 물론 설문 조사 등을 벌이며 고층아파트 대신 '모범적인 생태마을' 조성을 주장하고 있다.

강씨는 "고층 아파트식 난개발보다는 친환경적 전원마을 조성이라는 미래지향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며 "교수이기 전에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제2의 고향이 자본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결코 좌시하고 않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청주시 원흥이 방죽의 맹꽁이 서식지 지키기에 참여했던 김정기 서원대 교수도 마을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마을 주민인 송덕선 대표도 "최근 400명에 이른 현 거주민의 서명을 받아 군과 도에 제출했다"며 "행정기관이 대학촌 조성계획을 추진하다 돌연 민간개발업자에게 고층 아파트 건설허가를 내주려 하는 것은 일관성 없는 행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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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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