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포이동 266번지 판자촌. 양재천 건너 멀리 바라보이는 곳이 3000여 세대가 산다고 하는 우리나라 최고층 아파트 타워팰리스다
포이동 266번지 판자촌. 양재천 건너 멀리 바라보이는 곳이 3000여 세대가 산다고 하는 우리나라 최고층 아파트 타워팰리스다 ⓒ 포이동철대위
도심 속의 '외딴섬' 포이동 266번지. 지난 달 이곳 주민 김 아무개(59)씨가 가난과 질병에 신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 이어 지난 4일에는 김씨의 부인 임 아무개(54)씨마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해 부부가 한달 간격으로 동반 자살(?)한 것이다.

임씨는 남편이 사망한 후 이웃 주민들에게 "아들이 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수서경찰서 관계자는 "너무 안타까워 할말을 잊었다"며 "집에서 발견된 임씨의 메모장에는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적혀 있었다"고 전했다.

주민 최인섭씨는 "자기 부모도 지키지 못하면서 나라를 지키라고 아들을 둘씩이나 군대에 잡아두는 현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개탄했다. 그는 "아버지가 죽었을 때는 엄마가 직장 다닌다는 이유로, 엄마마저 죽고 없는 지금은 또 부양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아들의 의가사 제대가 안 된다고 하더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숨진 김씨 부부는 토지 변상금 4668만원과 자동차세 1200만원 등 7천만원의 빚을 군에 가 있는 두 아들에게 남겼다. 서울시 체비지인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에게 강남구는 1990년 이후 한해도 거르지 않고 변상금(토지 불법 점유에 대한 벌금)을 물려 왔다.

관련
기사
"강제이주 25년 포이동은 죽어간다"

김씨에게 부과된 전체 변상금 4668만원 가운데 체납액에 대한 연체 이자(2449만원)가 차지하는 비율이 원금(2219만원)보다 더 높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이다.

서울시는 변상금 체납액에 대해 연 17~25%에 이르는 고리 이자를 매겨 오다 98년 5월부터 15%의 연체 이자를 물리고 있다. 이에 따라 제때 변상금을 물지 못한 주민들은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주거용의 경우 가구당 평균 5천만~7천만원의 변상금을 서울시에 빚지고 있다.

포이동철거대책위원회 김종만 총무부장은 "토지 변상금은 불법 점유자에게 부과하는 것인데, 지난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강제로 이곳으로 이주해 온 우리가 왜 불법 점유자냐"면서 "합법적인 범위에서 토지 사용료를 내라고 하면 내겠지만 불법 점유자로 몰아 변상금을 물리면 절대로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 포이동 주민들의 가난의 질곡은 자식에게까지 대물림되고 있다. 더욱 낭패스러운 것은 고리 변상금 때문에 이들의 자활의욕마저 물거품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탈출하고 싶어도 평생을 족쇄처럼 따라다니는 가난의 사슬에 발이 묶여 벗어날 수가 없다.

김종만 총무부장은 "주민들이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직장생활을 하거나 생활 터전을 바깥으로 옮기게 되면 체납 변상금 때문에 금방 가압류가 들어오게 된다"며 "심지어 가압류 딱지가 날아올 것이 두려워 개인 명의의 통장 개설도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활의욕이 생기겠느냐"고 되물었다.

집단 이주촌이 형성된 80년대 당시의 포이동 266번지 모습
집단 이주촌이 형성된 80년대 당시의 포이동 266번지 모습 ⓒ 포이동철대위
체비지 주민들에 대한 변상금이 너무 가혹하다는 민원이 제기되자 강남구는 지난 5월 체납 변상금을 탕감해 줄 것과 변상금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대폭 낮춰줄 것을 서울시에 건의했다.

강남구 윤영민 도시관리팀장은 "체비지에 대한 변상금 부과는 서울시도시개발체비지관리조례 제17조에 따른 것으로 자치구청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업무"라고 전제하고 "체비지 주민들의 어려운 가정 형편을 고려하여 조례 등 법령 개정을 해서라도 대책을 세워주도록 서울시장에게 건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같은 강남구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정지역 주민들에 대한 특혜 시비 논란이 우려된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강남구의 건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6.0 이상의 강진에서도 견딘다는 우리나라 최고의 초고층 아파트 타워팰리스의 화려함 뒤로 포이동 266번지 판자촌 주민들은 오늘도 고물더미를 뒤지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학원이 달나라 만큼 가고 싶다는 아이들이 사는 이곳에 언제쯤 따스한 햇살이 비칠까?

포이동 266번지는…

▲ 집단 이주촌이 형성된 80년대 당시의 포이동 266번지 모습
ⓒ포이동철대위
지난 1979년 7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서울시는 거리의 부랑자와 넝마주이, 전쟁 고아, 도시 빈민들을 모아 한 곳에 정착시키기 위해 자활근로대를 발족시켰다. 서울시는 이들 자활근로대 1000여 명을 환경 미화라는 이름으로 81년 3월 현 서초동 정보사 뒷산으로 강제 이주시켜 정착하게 했다.

이후 정부는 공공 부지 재활용과 도시 재정비 정책에 따라 1981년 12월 이들을 다시 10개 지역으로 분산 이주시켰다. 이들 가운데 150여 명은 서울시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일대 3800여 평에 이르는 서울시 소유 하천 공유부지에 터전을 잡았다. 23년이 지나는 동안 주민은 104가구 35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거적 하나를 깔고 새우잠을 자면서도 살아야겠다는 희망 하나를 부여잡고 움푹 패인 웅덩이를 메꿔가며 척박한 땅을 손수 일구어 집단촌을 형성했다. 당시 서울시에서 지급하던 쌀과 부식, 연탄 등을 이들은 모두 돌려보냈다.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겠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시의 체비지(79년 이후 도서관 용지)인 포이동 266번지 일대에 대해 강남구가 89년 도시계획시설 변경 요청을 서울시에 한 사실이 지난해 알려지면서 이들의 삶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강남구는 이곳을 학교 용지 대체부지로 선정하겠다는 계획.

주민들의 불만은 학교시설이 들어서면 그동안 피땀 흘려 일군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잃고 또다시 정처 없는 떠돌이 생활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 때는 도시 환경을 해치고 국제 망신을 시킨다는 이유로 거주지역 바깥으로 나오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은 강남구가 추진하고 있는 학교 용지 선정 계획 철회와 체비지에 대한 점유권을 인정할 것을 서울시에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는 당시 상황에선 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강제 이주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할만한 관련 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해마다 변상금을 물리고 있다. / 석희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