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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만성적인 가난과 질병에 신음하며 벼랑 끝으로 내몰린 50대 넝마주이가 극한 상황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 김씨가 목을 매 숨진 ㄷ고물상. 김씨는 신발을 벗어놓고 의자 위에 올라가 목을 맨 것으로 알려졌다
ⓒ 석희열
4일 새벽 4시께 강남의 '외딴섬' 포이동 266번지 ㄷ고물상에서 이 마을에 사는 김아무개(59)씨가 처마 밑 난간에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부인 임아무개(54)씨와 주민 서미자(47)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부인 임씨는 "오늘(4일) 새벽 3시25분께 남편이 보이지 않아 불길한 생각이 들어 이웃에 사는 서미자씨를 깨워 함께 바깥으로 나가 보니 남편이 ㄷ고물상 처마 밑에서 목을 매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해부터 진폐증을 앓아오던 김씨가 생활고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 원인을 조사 중이다.

▲ 한 평 남짓한 방 안에 김씨에게는 생명줄과 같았던 산소통과 라디오 등이 놓여져 있다
ⓒ 석희열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숨진 김씨는 지난해 11월 ㅅ의료원에서 그동안 고물 수집 등으로 발병한 진폐증 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즉각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입원비가 없어 월 23만원을 주고 빌린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집에서 투병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김씨의 두 아들은 지난해 여름 자원 입대하여 현재 군 복무 중이다. 이 때문에 부인 임씨가 건물 청소 등의 막노동을 하여 남편의 병치레를 보살펴 왔다. 임씨가 한달에 버는 돈은 50여만원. 남편의 약값을 대기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돈이다.

이를 보다 못한 주민들이 개포4동 사무소에 직접 찾아가 김씨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로 지정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부인이 남편의 생활을 돌볼 능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씨 가족은 지난 80년대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포이동 266번지로 강제 이주당한 뒤 지금까지 서너 평 됨직한 판자집에서 네 식구가 함께 살아 왔다. 김씨는 고물 수집 일을 하며 근근이 가족의 생계를 꾸려왔지만 90년부터 강남구가 해마다 부과해온 토지 변상금을 내지 못해 빚더미에 시달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부인 임씨는 "자식들에게만은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며 남편이 그토록 몸부림을 쳤지만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면서 "병원에서는 입원을 하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고 했지만 남편은 집안 살림에 부담을 주기 싫어 입원 권유를 끝내 뿌리쳤다"고 애닯아했다.

그는 이어 "강제로 이주당한 것도 억울하고 서러운데 20년 넘게 한곳에 살면서 국가로부터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 병만 얻은 채 남편을 쓸쓸히 떠나보내야만 하는 이 꼬이고 뒤틀린 현실이 너무도 원망스럽다"며 울먹였다.

마을 주민들은 "그동안 동사무소를 방문해 김씨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몇 번이고 사정을 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면서 "막다른 골목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방치한 책임이 국가에 있는 만큼 김씨의 죽음은 개인적 자살이 아닌 국가적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 부엌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비좁은 공간이다. 세 평 남짓한 이 집에 대해 강남구는 지난 90년부터 해마다 수십만원에서 백 수십만원의 변상금을 물려왔다.
ⓒ 석희열
박동식(44)씨는 "포이동 266번지의 열악한 환경이 <오마이뉴스>에서 첫 보도가 나간 뒤 <한겨레>를 비롯해 문화방송의 <피디수첩>, 한국방송의 <브이제이 특공대> 등을 통해 여러번 세상에 알려졌지만 강남구와 동사무소에서는 주민들의 절박한 도움 요청에 대해 실태조사 한번 하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형(숨진 김씨)이 죽음의 문턱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자신의 처지를 서러워했겠느냐"며 "형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지난 23년 동안 국가와 사회로부터 철저히 버림받고 외면당해 온 포이동 266번지라는 죽음의 땅이 빚어낸 사회적 타살"이라고 말했다.

조철순 부녀회장은 "김씨는 평소 '애들 엄마가 일 갔다오는 모습을 보면 너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다'며 부인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괴로워했다"면서 갑작스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조 회장은 이어 "하늘나라에 가서도 그는 20여년 세월 애환을 함께한 포이동 주민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추억했다.

▲ 마을 주민들이 4일 밤 마을회관에 모여 김씨의 장례절차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석희열
한편 포이동 주민들은 4일 밤 마을회관에서 주민회의를 열어 김씨의 장례식을 마을장으로 치르기로 하고 8일 오전 강남구청 앞에서 거리제를 지낼 예정이었으나 5일 오전 유족들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로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최종 방침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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