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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해도 전국 초등학교에는 혼자 졸업하게 된 100여명의 학생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산간 지방의 분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입니다. 이제 곧 중학생이 될 이 아이들은 세상에 첫 발을 내딛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전국의 '나홀로 졸업생'들을 모아서 한바탕 흥겹게 놀 수 있는 자리를 만듭니다. 이 자리를 통해 이 아이들이 세상을 넓게 볼 수 있게 하는 한편 우리 사회가 지역 문화와 농어촌에 좀더 관심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말]
삼근 초등학교 왕피 분교 전경. 작고 오래된 학교만의 포근한 느낌이다.
 삼근 초등학교 왕피 분교 전경. 작고 오래된 학교만의 포근한 느낌이다.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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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새가 와서 수수를 다 쪼아 먹어 버렸네. 내년엔 새 덫이라도 치던가 해야지."
"다 같이 먹고 사는 거야. 엄마, 내년엔 더 많이 심어."

다섯 말은 거뜬할 줄 알았는데 애써 추수하고 나니 수수가 서너 바가지 밖에 안 되었다. 빈 쭉정이를 걷어내며 엄마는 잔뜩 골이 났다. 옆에서 초등학교 6학년짜리 아들내미는 그래도 "괜찮다"며 도리어 엄마를 위로해 주었다. 내년에는 더 많이 심자고. 쟤네들도 우리도 같이 먹자고 하는 일 아니냐며.

경상북도 울진 왕피리에 사는 임성훈(13) 학생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알아주는 수다쟁이다. 담임 선생님 말로는 '일당 30'의 수다 파워를 가졌다는데, 엄마 박애순씨는 그게 영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엄마에게 든든한 아들이자 친구

수업을 받고 있는 성훈이.
 수업을 받고 있는 성훈이.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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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훈이는 엄마와 둘이서 산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조용한 집에 온기를 불어넣는 건 성훈이의 수다다. 엄마 옆에 붙어 서서 오늘 학교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반찬을 먹었는지 시시콜콜 이야기를 해준다. 엄마 말에 끄덕끄덕 맞장구를 쳐주는 일도 아들의 몫이다.  

"아들, 나 오늘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
"알았어. 엄마. 그럼 내가 할게."

몸이 불편하신 엄마는 항상 성훈이에게 미안하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든든하다. "아들" 하고 부르면 조금 귀찮은 눈치다가도 금세 일어나 엄마를 도와주기 때문이다.

여자 혼자 짓는 농사가 어디 쉬우랴. 왕피리는 전 지역에서 무공해 농사를 짓는다. 깨끗한 음식을 먹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농사를 짓는 처지에선 그만큼 할 일이 더 많아진다는 말이다. 하루는 멧돼지가, 하루는 새가 날아와 애써 지은 농작물을 쓸어 가기도 한다. 하지만 풀도 농작물도 동물들도 함께 살아가는 것이 맞다는 이 곳 사람들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성훈이는 공부보다도 자연에서 뛰어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 친구도 별로 없는 산골이지만 심심할 새가 없다고 했다. 어제는 굵직굵직한 고구마를 캐느라 하루 종일 두 모자가 씨름했다는데, 힘들게만 보이는 농사일이 성훈이에겐 놀이인가 보다.

성훈이네 가족이 왕피리에 이사 온 지는 올해로 3년. 지리산 산골짜기에서 6년간 살다가 이리로 왔단다. 농사는 이곳에서 처음 짓는데, 아직도 영 서툴다고 했다. 옆에서 수수를 심으면 "나도 나도" 하고, 한 움큼 씨앗을 얻어서 심어내고, 고구마를 심을 적에도 그랬다.

이들은 왜 이곳 오지로 온걸까?

왕피리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 생태계 보전 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관광객들을 통제하고 있다. 청정 1급수가 흐르는 이곳에서는 수달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왕피리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 생태계 보전 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관광객들을 통제하고 있다. 청정 1급수가 흐르는 이곳에서는 수달의 모습도 볼 수 있다.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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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박애순씨의 시골 생활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었다.

어릴 적 유달리 몸이 약했던 성훈이는 조금만 아팠다 하면 열이 40도로 올랐기 때문에 위험한 고비가 많았다고 한다. 거기에다 아토피와 알레르기까지 달고 살았다.

그래서 공기 좋은 시골에 들어왔다. 하지만 생각과 삶은 달랐다. 매일 옷을 빨고, 락스에 삶고, 그것도 모자라 물에 한 번 더 삶아야 직성이 풀리게 살던 도시 생활과는 달리, 시골에서는 그런 깔끔이 힘들었다.

게다가 성훈이는 처음에 왔을 땐 밖에서 한 발짝 걸을 때마다 울음을 터트렸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유는 "신발에 흙이 묻는다"는 거였다.

그렇게 시골 생활을 한 지도 어언 10년 차! 이젠 엄마보다도 시골 생활에 더 박식한 성훈이와 웬만한 농작물은 길러내는 엄마로 변했다. 게다가 "엄마 나 감기 걸릴 것 같아" "그럼 물 많이 먹어" 라는 대화만 나눌 뿐, 언제 감기가 지나간지 모르게 튼튼해졌단다. 엄마에겐 그게 제일 감사한 일이다.

'대한민국이 아닌' 곳 오지 중의 오지, 왕피리

경북 울진에 위치한 왕피리는 누군가의 말로는 "대한민국이 아닌" 곳이다. 내가 느끼기에도 오지도 이런 오지가 없었다. 사실 여기로 오는 길이 어느 때보다 험난했는데, 울진에서 삼근까지는 버스가 있는데(하루에 몇 번 없지만) 삼근에서 왕피리로 가는 버스는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야 하는 곳은 왕피리에서도 작은 마을 '거리고'. 산길을 돌아 걸어가면 꼬박 4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다행히 수소문 끝에 아침에 출근하는 선생님의 차를 얻어 타고 갈 수 있었다. 구비구비 돌아 들어가는 길은 한쪽 끝은 낭떠러지, 다른 한쪽은 드높은 산이었다. 자꾸만 어지러워지는 그 길을 달려가면서 걸어갈 생각을 접은 내 자신이 대견스러워졌다.

왕피 초등학교가 있는 거리고는 마을 이름이다. 이름치고는 독특했는데 고려시대에 공민왕이 중국 원나라의 공격을 피해 피난을 왔던 곳이다. 그 때 울면서 넘은 곳이 '울고 넘는 박달재'고, 식량창고로 쓰이던 곳이 '거리고'라 한다.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이 곳에는 청정 1급수 물이 흐른다. 총 12개 마을에 사는 600여 명의 사람들은 그 속에서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을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 고기는 일절 먹지 않는 채식 위주의 생활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점심으로 먹은 유기농 식단은 정말 맛있었다. 두부부터 묵·만두까지 손수 만들어낸 음식들과 밀에서 성분을 뽑아내서 만든 '밀고기'와 '콩햄'도 있었다. 완전 유기농 식단을 한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나는 첫 술에 맛있다 싶은 푸짐한 음식들을 마음껏 위 속으로 들이켰다.

100% 유기농 식단. 가운데 있는 음식이 고기맛과 비슷한 '밀고기'고 두부, 묵, 과일, 잡채, 떡도 보인다.
 100% 유기농 식단. 가운데 있는 음식이 고기맛과 비슷한 '밀고기'고 두부, 묵, 과일, 잡채, 떡도 보인다.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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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왕피 분교'

그렇다면 이런 산골짜기에도 학교가 있긴 한 걸까? 마을에서 좌로 난 소담한 나뭇길 사이로 들어서니 자그마한 삼근 초등학교 왕피 분교가 보였다.

왕피 분교에서 공부하는 전교생은 7명이다. 그 중 올해 혼자 졸업하는 임성훈 학생을 비롯해서 1학년이 3명, 4학년이 1명, 5학년이 2명이다.

다행인 것이 올해부터 매년 3~4명의 아이들이 입학할 예정이다. 그 중 올해 입학한 3명의 아이가 왕피 분교의 '첫 신입생'이다. 이 때까지는 이 곳에서 살던 원주민들의 자녀들이 여기에 들어왔는데, 3년 만에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은 이주한 아이들이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삼근에서 제일 큰 학교가 되지 않겠냐는 게 선생님들의 설명이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 어디든 우당탕탕 뛰어다니는 천방지축 아이들이지만,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안다며 담임 선생님의 칭찬이 대단했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 어디든 우당탕탕 뛰어다니는 천방지축 아이들이지만,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안다며 담임 선생님의 칭찬이 대단했다.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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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도 선생님도 적어서 복식으로 수업을 할 수밖에 없는 작은 학교. 성훈이의 담임인 남순천 교사는 아이들이 더 많이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적은 것이 제일 아쉽다고 말했다. 거기에 왕피리에는 중학교가 없다. 왕피리에 사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중학교 대신 대안학교에 보낸다.

"이제 중학생도 되는데, 아들, 우리 다른 데로 갈까?"
"아니 난 여기가 좋아."
"뭐가 좋은데?"
"공기가 좋잖아."

어떤 사람이 보면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는 오지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오지에서 답답해서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타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선택은 자신의 몫인 것 같다.

나는 시골의 전원을 꿈꾸면서도 번잡한 서울의 속도감을 택했고, 이들은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누가 더 가진 것도 덜 가진 것도 없었다. 그저 자연은 그 자리에 있고, 그 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집에 오는 길, 눈을 감으니 왕피리의 골짜기가 눈에 그려졌다. 이 날 나와 함께 했던 10월 중반의 울진은 강렬함이 아니었다. 뜨거웠던 지난 여름을 기억으로 간직한 채, 수수하게 색을 떨어뜨린 가을 초입의 나무들에겐 쓸쓸한 멋이 있었다. 거기에 공기는 막 말려낸 빨래처럼 보송보송했다. 참 아름다운 날이었다.

울진 삼근에 위치한 불영사다. 산 위에 있는 부처 모양의 바위가 호수 그림자에 비쳐서 불영사가 되었다는데, 은은하게 향 냄새를 머금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울진 삼근에 위치한 불영사다. 산 위에 있는 부처 모양의 바위가 호수 그림자에 비쳐서 불영사가 되었다는데, 은은하게 향 냄새를 머금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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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하는 '더불어 졸업여행'은 11월 4, 5, 6일에 서울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전국에 있는 '나홀로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참가 가능하다.



태그:#더불어 졸업여행, #울진 왕피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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