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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전국 초등학교에는 혼자 졸업하게 된 100여명의 학생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산간 지방의 분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입니다. 이제 곧 중학생이 될 이 아이들은 세상에 첫 발을 내딛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전국의 '나홀로 졸업생'들을 모아서 한바탕 흥겹게 놀 수 있는 자리를 만듭니다. 이 자리를 통해 이 아이들이 세상을 넓게 볼 수 있게 하는 한편 우리 사회가 지역 문화와 농어촌에 좀더 관심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말]
지난 화요일(7일)에 강원도 영월에 취재를 갔어요. 영월에서 한 시간에 한 대씩 있는 버스를 타고 문곡 삼거리에서 내리면 마차 초등학교 문곡분교가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올해 혼자 졸업하게 된 6학년 김새별 학생을 만나러 간 길이었죠.

생각보다 학교도 크고요. 아기자기한 것이 참 예쁜 학교입니다. 문곡분교에는 초등학생 6명과 유치원생 8명이 옹기종기 모여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의 즐거운 취재를 마치고, 건네받은 '호박 맛 젤리'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영월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이상하게 뭔가 허전하더라고요.

뭘까... 하고 생각에 빠져있는데, 금방 인사를 마치고 헤어진 아이들이 그새 내 옆에 서 있는 겁니다. 아! 뭔가 아쉬워서 그렇구나. 순간적으로 '더 놀다갈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침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아이들도 있는데 뭐가 어렵겠어요? 저는 아이들에게 슬며시 미끼를 던졌습니다. 

"나랑 영월 읍내에 놀러 갈래?"
"네? 정말요?"

오케이! 혹시나 하고 해본 소린데, 6학년 새별이는 내 물음에 선뜻 승낙을 했습니다. 주위 아이들도 동요하는 눈치였죠. 그러던 사이 버스가 오고 얼떨결에 아이 몇 명이 저를 따라 버스에 올랐습니다. 

얼떨결에 영월로 놀러가는 아이들 "720원이 필요해요"

버스 안에서 가영이와 창열이.
 버스 안에서 가영이와 창열이.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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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자마자 아이들의 의견이 분분해졌습니다. 6학년인 나래와 동생 태근이는 이미 나와 함께 하기로 마음을 정한 상태고, 5학년 가영이는 영월에 있는 컴퓨터 학원에 가야 해서 함께 하지 못한다고 했지요. 그런데 문제는 4학년 쌍둥이 중 한 명인 창열이었습니다. '반쪽'은 오늘 아파서 일찍 조퇴를 하고, 혼자 남았는데요. 갈까 말까 고민이 큽니다.

"저 돈이 없어요. 720원이 있어야 놀러갈 수 있는데."

이유인 즉, 딱 차비만 들고 학교에 온 창열이에게 돈이 부족한 거였습니다. 영월의 버스는 거리에 따라 요금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집보다 조금 더 먼 시내까지는 720원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었습니다.

"내가 천 원 줄게. 같이 가자~"

뭐 어려울 것 있나요? 천 원으로 한 명을 더 꼬셨네요. 이렇게 나와 새별이, 태근이, 창열이가 읍내 행을 확정했지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버스 기사님이 '추가 요금'은 안 받으시네요. 이렇게 한 20분가량을 달리는 동안에 버스 안은 금방 왁자지껄해졌습니다. 아이들은 가까운 영월에 놀러가는 거지만 살짝 들떠 있는 상태였는데요. 저도 덩달아 마음이 둥둥 떠올랐어요.

"언니, 디카 주세요."
"사진 찍고 싶어요~"

취재하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틈틈이 제 디카로 사진을 찍었어요. 카메라를 별로 만져 본 적이 없는 터라 사진을 찍고, 포즈를 잡는 행동이 재미있었나 봅니다.

영화 <라디오 스타> 촬영지인 영월에서 뭘하지?

ⓒ 이유하

이번에도 아이들은 다양한 포즈를 취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걱정이 되더라고요. "이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에 가야 하는 거지?" 영월은 처음이기도 한데다 도대체 초등학생들은 뭘 하고 노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렇다고 아이들을 데리고 '커피숍'에 갈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요?

일단 맨 처음에는 '만만한' 떡볶이 집에 갔습니다. 시장 골목을 들어서니 딱 학생들을 위한떡볶이집이 있더라고요. 제 경험상(?) 그런 곳이 가격도 싸고, 맛도 있는 거죠. 먼저 떡볶이와 튀김을 섞어서 시키고는 맛있게 먹었습니다. 후식으론 매운 어묵 꼬치와 돈가스 튀김도 먹었습니다. 역시 먹는 게 최고예요.

그리곤, 영월 시내를 돌아봤습니다. 조용하고 작은 동네지만 없는 건 없더라고요. 지나가다 보니 건물 외벽에 박중훈과 안성기의 얼굴이 크게 프린트 되어 있는 거 아니겠어요? 아! 알고 보니 영월은 영화 <라디오 스타>의 촬영지였던 거죠. 그걸 미처 몰랐다니요. 올해 9월에는 <라디오 스타> 촬영지인 청록다방을 비롯해서 70년대 먹을거리 촌으로 유명했던 '요리 골목'을 다시 재정비 했다고 합니다. 곳곳에 아기자기한 디자인들도 재미있었어요.

문방구 앞 백 원짜리 '뽑기' "뭐야, 전부 꽝이야!"

"너 영월 가면 어디서 놀아?"
"음... 투웨이요?"
"투웨이? 그게 뭐야?"

배도 불렀겠다.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놀아야 하는데요. 역시 제일 든든한 새별이에게 문의를 했습니다. 새별이는 어감이 쇼핑몰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은 애매모한 정체불명의 투웨이라는 곳을 이야기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거긴 영월의 작은 팬시점이었습니다.

읍내에서 맛있게 떡볶이를 먹고 있는 창열이와 태근이.
 읍내에서 맛있게 떡볶이를 먹고 있는 창열이와 태근이.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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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를 먹고 있는 새별이.
 떡볶이를 먹고 있는 새별이.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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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문방구 앞 백 원짜리 '뽑기'와 오락실이 놀기엔 최고입니다. 우리는 몇 백 원씩을 나눠가지고 뽑기를 했는데요. 결과는 에이~ 달랑 100원짜리 불량식품 하나 걸렸습니다.

"오백 원 어치하고는 100원짜리 하나 걸리니까 손해잖아. 하지 마~"
"아니에요. 이거 하나 걸렸는데 사기는 아니에요."

내가 보기엔 딱 '사기'인데 뭘. 아이들은 제가 그러건 말건 100원 짜리 불량식품을 맛있게 나눠먹습니다. 그 뒤로 우리는 오락실에서 게임도 한 판씩 하고, '투웨이'에서 쇼핑도 했다지요. 오락실에선 100원짜리로 1단계도 넘어 본 적이 없는 우리들이었지만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투웨이에서는 저는 연필 몇 자루를 사고 새별이는 사고 싶었던 무릎 담요를 샀습니다.

배고프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삼각 김밥을 하나씩 사줬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뛰기 시작합니다. 영월에서 집으로 갈 수 있는 차는 6시 20분이 막차라고 합니다. 도착하자마자 저 멀리서 버스가 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버스 안에는 컴퓨터 학원을 갔다 온다고 버스에서 헤어진 가영이도 있었습니다.

왠지 허둥지둥 바쁘게 헤어지는데, 아이들이 버스 창문 너머로 외칩니다.

"언제 또 와요? 이제 매일 매일 오세요~"

그리곤 꼭 일촌 신청을 하라면서 손을 흔드네요. 왠지 가슴에 찌르르 전기가 흘렀습니다.

그날 하루, 나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마차 초등학교 문곡분교의 아이들. 원래는 6명인데 맨 왼쪽의 창열이와 쌍둥이인 경열이는 아파서 먼저 조퇴를 했다.
 마차 초등학교 문곡분교의 아이들. 원래는 6명인데 맨 왼쪽의 창열이와 쌍둥이인 경열이는 아파서 먼저 조퇴를 했다.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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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떡볶이 한 접시와 오락실에서의 동전 서너 개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에게 더 큰 행복을 주었습니다.  

태근이는 배고프다고 해서 사준 삼각 김밥의 껍질을 벗기지 못해 그대로 알맹이를 바닥에 떨어뜨렸는데요. 금방 "괜찮아요"라고 웃으며 손에 남은 김 조각을 우걱우걱 씹어 먹습니다. 창열이는 "차비가 없어요. 천 원만 빌려주세요"라며 해맑게 웃습니다. 이보다 더 큰 '긍정'이 있을까요?

'아이들 보다 내가 더' 신나게 놀고는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뭐가 힘들다고 그렇게 투덜대었던 걸까?' 신나게 하루를 보내면 그만인데 삶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는 않았을까요?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10년은 함께 한 듯한 따뜻함을 가진 아이들, 그 아이들과 함께 보낸 하루 동안에 제 삶도, 고민도 한 움큼은 가벼워 진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하는 '더불어 졸업여행'은 11월 4,5,6일에 서울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전국에 있는 '나홀로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참가 가능하다.



태그:#나홀로 졸업생, #영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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