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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절대절명/절체절명 1

.. 2004년 말 부실이 극에 달해 청산 여부가 국민적 관심사가 됐던 LG카드는 절대절명의 위기가 도래하는 순간에도 3억 50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파리의 연인〉의 히어로 박신양을 6개월 간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 ..  《최용식-한국영어를 고발한다》(넥서스,2005) 12쪽

“2004년 말(末)”은 “2004년 끝무렵”이나 “2004년이 저물 무렵”이나 “2004년이 끝나갈 때”로 다듬은 다음, “부실(不實)이 극(極)에 달(達)해”는 “부실이 하늘을 찔러”나 “부실이 너무 커서”쯤으로 다듬거나 “살림을 아주 엉망으로 꾸려서”로 다듬습니다. “청산(淸算) 여부(與否)가”는 “회사를 정리할지가”나 “회사문을 닫게 할지가”로 손보고, “거금(巨金)을 주고”는 “큰돈을 주고”로 손보며, “히어로(hero) 박신양”은 “주인공 박신양”으로 손봅니다. “6개월(六個月) 간(間)”은 “여섯 달 동안”으로 고치고, “모델로 기용(起用)했다”는 “모델로 썼다”로 고쳐 줍니다. “위기(危機)가 도래(到來)하는 순간(瞬間)에도”는 “어려움이 찾아오는 그때에도”로 손질합니다.

 ┌ 절대절명(絶對絶命) : ‘절체절명’의 잘못
 ├ 절체절명(絶體絶命) : 몸도 목숨도 다 되었다는 뜻으로, 어찌할 수 없는
 │   궁박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절체절명의 위기
 │
 ├ 절대절명의 위기가 도래하는 순간에도
 │→ 간당간당하는 형편이 되었는데도
 │→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때에도
 │→ 언제 무너질지 모르게 된 때에도
 │→ 이제 회사가 문닫게 될 판이었는데도
 │→ 크나큰 어려움이 닥친 그때에도
 └ …

‘절대절명’은 잘못 쓰는 말이라는군요. ‘절체절명’으로 적어야 맞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절대절명이든 절체절명이든 아예 안 쓰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 말이든 저 말이든 덜어낸 다음, 잘못 쓸 걱정이 없을 뿐더러, 누가 읽거나 듣더라도 손쉽게 알아들을 만한 말을 넣으면 어떨까 싶어요. 헷갈리는 말을 쓰느니, 깨끗하기도 깨끗하고 살갑기도 살가우며 손쉽기도 손쉬운 말을 고를 때가 한결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국어사전 뜻풀이를 살피면,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뜻이라는 ‘절체절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때에도”로 적어 볼 수 있습니다. 회사 형편으로 보아 “언제 무너질지 모르게 된 때에도”나 “곧 무너질 듯하게 되었는데도”라 해도 어울립니다. “회사가 문닫게 될 판이었는데도”로 적어도 되고 “회사가 무너질 판인데도”로 적을 수 있어요. ‘간당간당하다’나 ‘아슬아슬하다’ 같은 말도 넣어 봅니다.

네 글자 한자말을 쓰느라 어설피 머리를 굴리지 말고, 또 괜히 문자 쓰려고 어깨에 힘을 넣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꾸밈없이, 털털하게, 숨김없이, 겪고 있는 일을 그대로 나타내 주면 좋겠어요.

ㄴ. 절대절명/절체절명 2

.. 양파니 호박이니 깻잎이니를 듬뿍 넣고 호방하게 버무린 매운 낙지볶음을 절체절명의 타이밍을 맞춰 삶아낸 소면과 함께 먹는 것이다 .. (전여옥) / 《여성시대》(문화방송) 2003년 10월호 88쪽

‘때’라고 하면 될 텐데요. 굳이 ‘타이밍(timing)’이라고 미국말을 찾아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타이밍’이라고 써야 좀더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나요.

 ┌ 절체절명의 타이밍을 맞춰
 │
 │→ 아슬아슬한 때를 맞춰
 │→ 아슬아슬하게
 │→ 기막힌 때를 맞춰
 │→ 알맞게
 │→ 알맞춤하게
 │→ 딱 맞도록
 └ …

아슬아슬한 때를 잘 맞추는 일은 ‘기막히게’ 때를 잘 맞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 ‘알맞게’나 ‘알맞춤하게’라고 해 주면 됩니다. ‘때를 잘 맞춰’ 삶으면 되지요. 말차례를 조금 손질해서 “때를 잘 맞춰 삶아낸 소면과 매운 낚지볶음을 함께 먹는다”처럼 적어 보아도 헷갈리지 않고 잘 알아들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ㄷ. 절대절명/절체절명 3

.. 울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 슬픔은 절대절명의 슬픔일 수밖에는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밝은’ 어린이가 울 까닭이 없는 것이다 ..  《한정식-사진, 시간의 아름다운 풍경》(열화당,1999) 82쪽

“까닭이 없는 것이다”는 “까닭이 없다”로 다듬습니다. ‘밝은 어린이’라는 말이 보이는데, 앞에서는 ‘천진난만(天眞爛漫)’이라는 말을 쓰더군요. 이 자리처럼 ‘밝은’으로 적어 주면 한결 알맞고 낫습니다.

 ┌ 절대절명의 슬픔
 │
 │→ 모든 것을 다 잃은 슬픔
 │→ 하늘이 무너진 슬픔
 │→ 무엇과도 비길 수 없이 큰 슬픔
 │→ 더할 나위 없는 슬픔
 └ …

‘절대절명’이나 ‘절체절명’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슨 뜻인지 알쏭달쏭합니다. 이런 말을 볼 때면 으레 국어사전을 뒤지게 됩니다. 아무래도 제가 이런 말지식이 없는 탓이니, 말공부를 시켜 주는 셈이라 할까요.

말공부를 하면 ‘이런 말이 있는 줄 몰랐구나. 이 말뜻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네’ 하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한편, 손쉽게 쓰면 넉넉한 말을 괜히 어렵게 비틀어 썼기 때문에 국어사전을 뒤적여야 한다면, 퍽 번거롭습니다. 때때로 짜증이 납니다. ‘이 어려운 말을 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어서 괴로워하는 줄 알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말 알까요? 모르니까 어려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겠지요.

말하는 사람은 듣는 쪽 형편을 모르고, 듣는 사람은 말하는 쪽처럼 말지식이 많지 않고. 이렇게 되면 제아무리 좋은 생각과 뜻이라 해도 알뜰히 나눌 수 없습니다. 하느님 말씀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가장 못 배우고 지식이 적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이라면 ‘복된 소리’가 될 수 없습니다. 부처님 말씀이 아무리 사랑으로 가득하다고 해도, 가장 적게 배우고 지식이 얕은 사람은 헤아릴 수 없는 말씀이라면 ‘밝은 소리’가 될 수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고사성어#우리말#우리 말#사자성어#상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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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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