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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스도 부엉이도 보이지 않지만 저기 저 어둠 속에 분명히 존재한다 ..  《호시노 미치오/이규원 옮김-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청어람미디어,2005) 164쪽

 

책을 읽으면서 ‘존재’라는 말을 안 볼 때가 없습니다. 다듬고 또 다듬지만, 다시 다듬고 자꾸 다듬어 보게 됩니다. 이 낱말을 쓰는 분들은 쓸 만하다고 느껴서 쓸 텐데, 그 쓸 만하다는 잣대는 누구 눈으로, 어떤 눈길로, 얼마만한 눈높이로 바라보고서 잡고 있는지 궁금하곤 합니다. 모르는 일이지만, 우리 둘레에 쓰이는 ‘존재’는 5억 가지쯤, 또는 5000억 가지쯤 되지 싶습니다.

 

 ┌ 저 어둠 속에 분명히 존재한다

 │

 └→ 저 어두운 곳에 틀림없이 있다

 

이렇게 널리 쓰이는 ‘존재’인데, 초등학교 아이들도 ‘존재’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내뱉는데, 어릴 적부터 예배당에 다니던 사람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말하고 있는데, 학문을 깊이 파고드는 분들은 책을 읽으며 ‘나(자아)라는 존재와 남(타자)이라는 존재’를 생각하고 있는데, 해지고 어두운 알래스카 깊은 숲속 어디쯤엔가 무스와 부엉이가 틀림없이 ‘존재’하고 있다고 느끼는데, 이런 우리 세상이요 우리 이웃들인데, 이들 입과 손에서 ‘존재’를 떨구라 할 수 있을까요.

 

이제는 이 나라에 사는 웬만한 분들은 아파트에서 지냅니다. 새집증후근이라는 말도 있고, 시멘트로 지은 아파트가 아기한테나 어른한테나 그다지 좋지 못한 줄 모르는 분은 없지만, 그 아파트 시설이 아늑하고 안전하고 조용하다고 하면서, 무엇보다도 집값벌이가 되기 때문에, 아파트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스무 해도 채 되지 않아 아파트 재개발을 한다고 할 때, 그 어마어마한 시멘트와 쇠붙이를 허물어 ‘어디에 어떻게 버린’ 다음, 다시 새로운 시멘트와 쇠붙이 들을 ‘어디에서 가져와서’ 올려세울지 걱정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보상금이 얼마요, 새 집값은 얼마나 오르느냐를 걱정합니다.

 

이런 분들, 아파트에 사는 분들 마음을 제가 어떻게 해 볼 수 없겠지요. 건드릴 수도 없지만, 마음을 고쳐 잡수시라고 말씀드릴 수도 없습니다. 귓등으로나 들릴까요? 아파트에 살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가용을 몰아야 하고, 수많은 전기시설을 쓰게 되며, 땅과 바람과 물 모두에 적잖이 영향을 끼칩니다.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은 ‘우리가 죽고 난 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는지 모르지만, 바로 우리들이 낳아서 기르는 아들딸은 어찌하지요? 그 아들딸이 낳아 기를 딸아들은 어찌하지요? 그 딸아들이 다시 낳을 아들딸은 또 어찌하나요?

 

말 한 마디를 헤아리는 마음, 말 한 마디를 살피는 매무새, 말 한 마디롤 붙안는 몸짓은, ‘말 지식’보다는 ‘우리 삶’에서 비롯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에 따라 말과 글이 나옵니다. 우리가 먹고마시는 먹을거리에 따라 우리 말과 글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돈벌이로 하는 일에 따라, 우리가 고단한 하루를 마감하며 즐기는 놀이에 따라, 우리 생각이 영향을 받고, 이런 영향은 우리가 쓰는 말과 글에 고스란히 담깁니다.

 

→ 저기 저 어두운 숲속에 틀림없이 살고 있다

 

아침에 콩국을 마시니 속이 든든합니다. 깨끗이 씻기는 느낌입니다. 콩을 우려낸 물이니 콩물이라고 해도 될까요. 소젖에 탄 콩물이라면 ‘豆乳’일까요? 그렇지만, ‘두유’는 ‘우유 같은 마실거리’이지 소젖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지요?

 

반쯤 말린 오징어와 말린 새우를 넣고 끓인 국에 두부를 넣은 아침을 먹습니다. 다른 반찬은 묵하고 양배추 썰어 놓은 것. 고추잎을 조금 얻어서 물에만 씻어서 먹는데, 고추는 잎만 먹어도 맵네요. 비름도 나물로 안 무치고 그냥 날것으로 먹는데 괜찮습니다. 배추를 김치로 담가 먹지 않고 배추잎 그대로 먹습니다. 김치로 담그면 더 오래 둘 수 있고 더 오래 먹을 수 있겠지만, 그때그때 날배추며 날양배추며 날잎이며 먹어도 속에서 잘 받습니다. 오히려 속에서 더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하긴, 콩이나 쌀도 날로 씹어먹는 맛이 퍽 좋더라구요. 있는 그대로 혀끝에 감기는 맛. 곡식 그대로 몸으로 스며드는 느낌.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한자말#우리말#우리 말#한자#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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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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