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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오늘 아침 마누라가 넌지시 귀띔하길
도가지에 빚은 술이 이제 갓 익었다네!
무슨 흥 혼자 마시리. 자네 오길 기다리네.

- 박은 -


술이 잘 익었다는 마누라의 언질에 혼자 먹기가 그래서 친구를 초대하는 시다. 이 글을 받은 친구는 한달음에 달려오지 않을 리가 없다. 술도 술이려니와 친구의 마음이 고마워서이기도 하다. 역시 술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과 마셔야 제 맛이 날 것이다.

그러나 술이란 게 흥이 되기도 하고 탈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술을 경계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연암도 유득공의 편지에 답한 글에서 술잔과 관련된 글을 보내기도 했다. 한 예로, '술잔 배(盃)' 자는 '가득 채우지 말라'는 의미이고, '술잔 치(巵)' 자는 '위태할 위(危)' 자와 비슷하다며 술에 대한 경계심을 갖게 했다.

실제로 연암도 아주 술을 좋아했다고 한다. 키도 훤칠하고 풍채도 좋아 술을 아주 좋아하고 잘 마신 애주가였다고 한다. 그의 글 중엔 술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그가 50세에 평생지기인 유언호의 천거로 벼슬길에 올라 썼던 시에도 술에 대한 단상이 담겨 있다.

한두 잔 막걸리로 혼자서 맘 달래노라
백발이 성글성글 탕건 하나 못 이기네
천년 묵은 나무 아래 황량한 집에
한 글자 직함 중에도 쓸데없이 많은 능관일레
맡은 일 쥐 간처럼 하찮아 신경 쓸 일 적다만
그래도 계륵처럼 내버리긴 아깝구려
만나는 사람마다 지난겨울 고생했다 하는데
마침 재실에서 지내니 되레 추운 줄 몰랐다오.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간 벼슬길, 그에게 벼슬은 계륵 같은 존재지만 버릴 수 없는 심정을 막걸리 한 잔에 맘을 달랜다. 옛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마음이 적적할 때 술로 마음을 달래는 건 한가지인가 보다. 암튼 그의 여러 글편들을 보면 연암과 그의 벗들은 술을 참 즐겨했던 같다.

이 모든 안주는 공짜다. 배고픈 서민들에게 막걸리 한 주전자면 배부르게 거나하게 취할 수 있다.
이 모든 안주는 공짜다. 배고픈 서민들에게 막걸리 한 주전자면 배부르게 거나하게 취할 수 있다. ⓒ 김현
그러나 어찌 연암 같은 옛 사람만 술을 좋아하겠는가. 현대인도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지금도 저녁이면 술집마다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 술을 마시는 게 곤욕일 때도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의 어떤 이는 모든 기준을 자신에게 맞추어 술을 마시게 하는 못된 버릇을 가졌다. 자신도 한 잔 마시면 상대도 한 잔 마셔야 직성이 풀린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삐딱한 마음을 품고 뒷소리를 한다. 그것은 직장 생활이나 상하 관계서 자주 나타나기도 한다.

예전에 이 몸도 그놈의 술 때문에 엄청나게 고생을 한 적이 있다. 말술을 마시는 그들은 대결하듯이 술을 주고받도록 한다. 술을 마시는 데 있어서 상대를 고려함이 없다. 이로 인해 참 많이 다투기도 했다. 결국 술로 인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상하게 한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술은 사람이 숨 쉬고 사는 곳엔 어엿한 주인이 되어 술객들을 유혹한다.

막걸리가 서민들만의 술이라고?

우리나라 전통주라 하면 청주·소주·탁주 정도를 들 수 있다. 물론 근래에 민속주라 해서 지역마다 많은 전통주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서민들의 술이라면 소주나 막걸리를 들 수 있다. 허나 예전엔 증류주인 소주보다는 막걸리를 주로 마셨다. 막걸리는 술이면서도 음식이었다. 들에서 한참 일하다 보면 배가 출출해진다. 그때 한 잔 들이켜는 막걸린 기분을 좋게 하면서도 배를 든든하게 해주었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술도가에서 막걸리를 받아오라 하면 노란 주전자를 들고 냅다 달려가곤 했다. 술을 받아 오는 길에 한 모금 두 모금 찔끔찔끔 주전자 꼭지로 빼먹는 맛, 요즘 아이들은 모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어른들은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그 어른들도 어렸을 때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민이 애용을 했던 막걸리를 대부분 일반 서민들만 마셨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양반들도 막걸리를 애용했고, 임금도 막걸리를 마셨다.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세조도 막걸리를 마셨다는 기록이 세조실록에 적혀 있다.

세조가 태종의 딸인 숙근옹주의 남편인 화천군 권공(權恭)의 집에서 막걸리를 마셨다고 한다. 또 성종도 신하들에게 자주 막걸리를 하사했다고 하는 걸 보면 막걸리는 단순히 서민들만이 마신 술이 아니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즐겨했던 우리의 술임을 알 수 있다.

ⓒ 김현

애환도 많았던 우리 술, 다시 사랑받는 술로

막걸리는 찹쌀·멥쌀·보리·밀가루 등을 쪄서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켜 만든 우리나라 고유의 술이다. 막걸리 이름도 탁주(濁酒), 농주(農酒), 재주(滓酒), 회주(灰酒), 박주(薄酒) 등 다양하다. 고려 땐 배꽃이 필 때쯤 누룩을 만든다 해서 이화주(梨花酒)라고도 했다.

옛날엔 집에서 술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래서 여러 문제도 있었나 보다. 해서 나라에서는 종종 금주령을 내렸지만 막걸리만은 일을 할 때 먹는 노동주라 해서 금주령에서 제외시키는 관대함을 보였다.

그 막걸리가 한때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적이 있었다. 일을 할 때나 출출할 때 마시던 술 막걸리가 소주와 맥주에 밀려 각 시골 마을에선 막걸리집이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그 자리에 소주나 맥주가 자리를 잡았다. 술집도 대폿집은 사라지고 소주방이나 생맥주집 같은 술집들이 거리의 간판을 수놓았다.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갔던 막걸리가 최근에 다시 사랑을 받는 술이 되고 있다.

전주만 해도 막걸리집이 문전성시다. 전주 삼천도서관 맞은편엔 수십 개의 막걸리집이 한 집 걸러 한 집으로 성행하고 있다. 그러던 것이 요즘 다른 근방에도 막걸리집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이 막걸리 대폿집들은 한 주전자에 막걸리 세 병을 담아 기본으로 내놓는다. 한 주전자에 만 원이나 만 오천 원을 받는다. 만 오천 원을 받는 집은 두 주전자부턴 오천 원씩 추가가 된다. 상 가득 차려진 안주는 공짜다. 기본으로 찌개냄비를 비롯해 병치회, 다슬기, 미역국, 번데기 등 수십까지 안주가 차려진다. 요즘엔 백숙까지 주는 데도 있다. 물론 다 공짜다.

그러다 보니 대폿집엔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서민들의 헐거운 호주머니 사정으로도 풍성하게 입을 즐겁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격이 싸다고 많이 마시면 탈이 난다. 막걸리에 취하면 다른 술에 비해 오래간다. 머리도 아프다. 그래서 한 잔은 흥이 되고 두 잔은 약이 된다고 했다. 그 흥이 되고 약이 된다는 이 술도 석 잔 이상이 되면 사람을 이상하게 하고 병이 들게도 한다고 한다. 모두 적당히 마시라는 소리다.

또 하나, 술을 많이 마시면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여자들이다. 늘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면 여자들의 잔소리가 귀를 때리기도 한다. 여기에 자식들까지 거들기 시작한다. 제발 술 좀 끊으라고. 아니면 조금만 마시든가. 그러나 술꾼에게 그런 소린 소귀에 경 읽기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왜? 그건 술을 마시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된다. 다만 여기에선 그에 대한 답 대신 그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시 한 편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요 며칠 마신 술맛 오늘따라 더하구나.
술 끊으란 당신 말이 옳기는 하다마는
어쩌랴! 저 국화를 두고 차마 어이할꺼나!

- 권필 -


술 좀 그만 마시라는 아내의 성화에도 국화주를 옆에 두고 차마 떨쳐버리지 못하는 남자의 마음, 그 마음을 읽는 사람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도는 것 어떤 연유일까. 특히 오늘같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면 더더욱 생각나는 술. 그런 술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그 맛은 다를 것이다. 또 어떤 사람과 마시느냐에 따라 그 향도 다르리라.
#막걸리#대폿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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