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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문없는 우리집 눈오는 풍경
ⓒ 송성영
오늘(26일) 낮 12시 10분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나오자 마당에 눈발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인상아 방에 들어가자."
"나는 그냥 좀 더 있을래."
"불조심 혀."


ⓒ 송성영
아궁이 앞에서 불장난을 하고 있는 인상이와 마당에 점점 점을 하얗게 찍어 놓고 있는 눈발을 뒤로하고 방안에 들어와 어제 간디학교 양희규 선생을 만나 선물 받은 <꿈꾸는 간디학교 아이들>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낮12시 30쯤 됐습니다.

▲ 눈이 오니까 눈이 오는가 보다, 하염없이 앉아 있는 곰순이
ⓒ 송성영
"정안 휴게소데요, 남공주로 나가야 되나요?"
"그쪽으로 가믄요, 거시기 사립고속도로라서 요금이 비싸니께, 기냥 정안에서 빠져나와서 공주 논산 방향으로 오다가…."


지리산에서 빈집을 구해 전통 수제차를 만드는 묵재 선생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볼일을 보고 지리산으로 들어가기 전에 가끔씩 중간지점인 공주, 우리 집에서 잠깐 쉬었다 가곤 했습니다. 그는 우리 집에서 하루 이틀을 묵어가면서 자신이 직접 만든 맛있는 수제차를 한 두통씩 놓고 가곤 했습니다. 만나 본지도 꽤 오래됐고 하여 무척 반가웠습니다.

ⓒ 송성영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안 되겠네예."
"별루 안 오 던디…."


책장을 열댓 쪽쯤 넘겼을 무렵에 다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때가 아마 오후 1시쯤 됐을 것입니다. 남공주 톨게이트로 마악 나오고 있는데 눈이 너무 많이 내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안으로 지리산에 들어가야 하는 데예 눈이 너무 많이 내리네예."
"그렇게나 많이 내리나? 잠깐만유…."


방문을 열어보았더니 어느새 마당 가득 눈이 쌓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까만 점들이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곰순이는 고자세로 꿈쩍도 않고 앉아있었습니다. 까만 털이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불과 삼사십 분만에 세상이 변해 있었습니다. 곰순이 털 색깔은 물론이고, 지붕이며 나무가지며 사방이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송 샌님, 안돼겠싶니더, 눈이 더 쌓이믄 하루 이틀은 묶일 거 같네예."
"묶이면 묶이는 대로 쉬었다 가믄 되지 뭘 그류."
"손님 기다리고 있어서예…."
"에이, 섭섭허네, 점심이라두 먹구 가시지…."


결국 묵재 선생은 결국 오늘 저녁 자신의 토굴로 손님이 찾아오기로 했다며 발길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은 주섬주섬 누구네 집 아이가 입다가 준 스키복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느새 개 사료 포대를 꺼내들더니 곧장 곰순이를 데리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 목줄에 벗어난 곰순이와 내리는 눈
ⓒ 송성영
오후 1시 10분쯤 나 역시 카메라를 챙겨들고 뒤따랐습니다. 눈이 발목까지 푹푹 빠져 들어왔습니다. 집 뒤 대나무 숲이 눈 내리기 시작한 지 불과 한 시간도 안 돼서 눈의 무게에 눌려 허리를 꺾고 땅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 눈의 무게에 눌린 대나무숲이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 송성영
여전히 눈은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방학 내내 기다렸던 눈이었습니다. 썰매까지 만들어 놓고 꽝꽝 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얼음 대신 눈이었습니다. 날씨는 춥지 않았습니다. 눈발은 찻숟가락으로 살짝 떠놓은 아이스크림으로 풀풀 날렸습니다.

▲ 대나무에 쌓여 있는 눈을 털어내는 장난꾸러기 송인효
ⓒ 송성영
눈은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말끔하게 덮어 높고 모든 것들을 시원의 세계로 되돌려 놓고 있었습니다. 오로지 자연만이 있습니다. 산이 있고 나무가 있고 아이들이 있고 개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태초의 생명들 같기만 합니다. 그냥 그대로 한 덩어리의 자연처럼 다가왔습니다.

▲ 곰순이와 뒤엉켜 비닐포대를 깔고 앉아 눈썰매를 타는 우리집 아이들
ⓒ 송성영
아이들은 비탈길에 울퉁불퉁한 돌멩이 걸려 엉덩이가 아프다면서도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개 사료 포대를 깔고 앉아 신나게 눈썰매를 탔습니다. 곰순이도 껑충껑충 거리며 신나 했습니다.

"에이, 아빠, 곰순이 발이 입에 들어갔어."

▲ 곰순이와 뒤엉켜 비닐 포대로 눈썰매를 타다가 인상이 하는 말, "아빠 곰순이 발이 입에 들어갔어!"
ⓒ 송성영
곰순이와 뒤엉켜 눈썰매를 타던 인상이가 침을 "퇘! 퇘!" 뱉었습니다. 그래도 좋은지 헤 웃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곰순이 사진을 신나게 찍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여전히 방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러다가 찻길도 다 막히건네, 집에 쌀은 있는겨?!"

요즘 책에 푹 빠져 지내고 있는 아내에게 물었더니 쌀은 충분하답니다.

설경과 곰순이와 어울려 노는 아이들 사진들을 컴퓨터에 풀어놓고 나서 <오마이뉴스>에 올릴 원고를 쓰고 있는데, 사랑방문 밖에서 곰순이가 방문을 툭툭 찹니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신나는 날에 방구석에 처박혀 뭔 놈의 원고를 쓰고 있느냐 그러는 것 같았습니다.

ⓒ 송성영
눈이 그치기 전에 밖으로 나가고 싶어 가슴이 쿵쿵 뛰었습니다. 저만큼 산 아래에서 크게 웃기를 좋아하는 인효 녀석의 웃음소리가 눈발처럼 하얗게 쏟아져 옵니다.

"히 헤헤헤!"

오후 2시 20분쯤 원고를 대충 마무리해놓고 밖으로 나왔더니 고새 눈이 그쳤습니다. 몇몇 눈송이들이 힘없는 나비처럼 흐느적거립니다. 나는 늘 아이들보다 노는 게 한 템포 느립니다.

"에이씨, 눈이 다 그쳤구먼."

투덜거리며 사랑방 컴퓨터 앞으로 다시 돌아와 <오마이뉴스>에 올릴 원고를 마무리합니다. 얼른 밖으로 나가봐야겠습니다. 밖에서 곰순이와 애들이 눈싸움을 해가며 여전히 신나게 놀고 있거든요.

태그:#눈오는 풍경, #눈, #눈오는 날의 풍경, #곰순이, #눈썰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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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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