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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아이들이 없는
운동장에 눈이 내린다.

풍금소리에 맞춰
노래 부르던 아이들이
하늘에서 내린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깔깔대며

눈싸움을 벌이다
하얗게 운동장을 덮는다.

추운 겨울을 위로라도 하듯
빈 교정에 눈이 내리는데

눈송이를 던지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는지

눈에 묻혀
풍금소리도 아이들도
보이지 않고

긴 겨울방학
느티나무 한 그루
빈 교정을 지키고 있다. - <겨울 운동장> 김동수


발자국 하나 없이 소복하게 눈이 쌓인 운동장을 바라봅니다. 운동장은 고요하게 앉아 있습니다. 간혹 지나가는 바람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눈송이를 뿌려놓곤 갑니다.

한때 뜨거웠던 아이들의 숨결과 고함소리,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울려 퍼졌을 운동장. 지금은 백설의 설원을 이루고 누군가의 발자국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작은 추억들이 썰물 뒤의 소라게처럼 기어옵니다. 펄을 기는 작은 소리들이 소곤소곤 속삭입니다. 눈 쌓인 운동장과 눈 쌓인 논배미가 중첩되어 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고함소리, 깔깔거리며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잠시 귀를 기울려봅니다. 시인의 말처럼 어디선가 풍금소리가 들려오는 듯도 싶습니다. 그 소리에 맞춰 노래 부르는 어린 내가 서있습니다. 지금은 기억도 희미한 친구들의 앳된 얼굴도 어슴푸레 떠오릅니다.

ⓒ 김현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 얼굴이 웃으며 다가옵니다. 웃으면 하얀 이가 그리 예쁠 수 없는 여선생님입니다. 시골 깡촌의 촌놈인 나에게 그 선생님의 하얀 얼굴과 고운 손, 맑고 고운 노랫소린 그저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어느덧 어린 내 가슴에 선생님은 설렘으로 다가왔습니다.

음악 시간 선생님의 풍금소리에 맞춰 노래를 따라하면 가슴이 뛰었습니다.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해 겨울 선생님은 갑자기 학교를 떠났습니다. 무엇 때문에 떠났는지 모르지만 교실에 들어서면 풍금을 치던 선생님의 얼굴이 그리움 되어 내 작은 가슴을 적시곤 했습니다.

선생님이 떠난 그 해 겨울, 눈이 참 많이 왔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눈이 온 날은 많은 아이들이 운동장에 달려 나와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며 뒹굴고 놀았습니다. 그렇게 뛰놀다 교실에 들어와 꽁꽁 언 손을 석탄 난로를 쬐며 녹이곤 했습니다. 난로 위에는 양은 도시락들이 10층 탑을 이루며 주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늘 함께 있으며 상냥하게 웃어주던 그 선생님은 없었습니다. 즐겁게 뛰어놀다가도 그것이 허전하여 선생님이 앉았던 풍금 치던 자리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인도 어린 시절 그 풍금 치는 소리가 그리웠나 봅니다. 함께 눈뭉치를 만들어 던지다 깔깔거리며 놀던 친구들이 그리웠나 봅니다. 그리고 예쁜 여선생님이 쳐주던 풍금소리도 그리웠나 봅니다.

눈 덮인 운동장에 어린 아이와 엄마가 들어와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엄마는 눈뭉치를 굴리며 아이에게 사랑의 풍금소릴 들려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눈사람을 만들며 젊은 엄마와 어린 아들간의 주고받는 사랑의 손길이 빈 교정을 지켜주는 느티나무인지 모릅니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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