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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282호 주인공의 고분이 확인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주인공은 조선 제3대 태종의 후궁이자 정혜옹주의 생모인 '의빈 권씨'다. 현재까지도 의빈 권씨의 생몰연대가 '미상'이고 중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무덤이 존재할 것이라는 추정도 하지 않아 왔다.

태종실록 등 조서시대 문헌을 보면 의빈 권씨는 궁인으로 처음 궁궐에 들어왔고 태종의 총애를 받아 궁주에 봉해지고 정혜옹주를 출산해 의비에 봉해진 인물이다.

태종 사망(1422년, 세종 4년) 이후 비관하여 세종에게 고하지 않고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궁중에서 아침, 저녁으로 예불을 드리며 선왕의 명복을 빌었고 세종의 여섯째 아들인 금성대군 '유'를 맡아 길렀다. 1453년(단종 1년) 늙고 병들자 금성대군이 사저에서 노후를 보낼 것을 권했지만 왕이 허락하지 않아 혜빈궁 양씨의 처소로 옮겨 지냈다. 1457년(세조3년) 선왕을 위하는 세종의 특별배려로 궁호를 '영수궁'으로 고치고 노후를 보냈다는 기록이 전부다.

태종은 조선시대 왕들 중 후궁이 가장 많았던 왕으로 유명한데 후궁들 중 내명부의 직첩을 받은 이는 총 8명인데 이 중 의빈 권씨도 포함되어 있다.

의빈 권씨는 국보 제282호 '흑석사 목조 아미타불좌상' 등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990년, 경북 영풍군 이사면 석포리에 있는 흑석사의 목조아미타불상 몸체에서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고 이 중 아미타삼존복장기와 불상조성권선문에서 이 아미타불상이 조선 세조 4년(1458)에 목조아미타불삼존상이 조성되었고 성철, 성수 스님의 화주(化主)가 태종의 후궁 '의빈권씨'라는 기록이 나온다. 의빈 권씨가 효령대군, 명빈 김씨 등 왕실과 종친의 시주를 받아 불상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화주란 '중생을 교화 인도하는 아미타불이나 석가여래 같은 높은 성인을 가리키는 말'로 불사를 할 때 덕망 높은 인사가 연분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시주를 받는 주된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국사편사편찬위원회 편사부 사료조사실 문숙자씨는 19일 "조선시대 후궁에 대해 유명한 사건이 없다면 상세한 기록을 남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다. 문헌 기록상 장희빈, 장록수, 폐비 윤씨 등이 기록에 남은 정도라는 설명이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한 관계자는 19일 "태종이 죽고 나서 중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의빈 권씨의) 묘는 없는 것 같다"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실시한 조사보고서를 뒤져보아도 관련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은 의빈 권씨의 무덤이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에서 발견되었다. 육군사관학교 화랑대연구소 국방유적연구실이 2005년 4월 18일~5월 24일 경기도 파주 미군전용 '스토리사격장' 문화재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였다.

입수한 당시 문화재조사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봉분은 도굴된 흔적 그대로 방치된 상태이다. 잡목이 우거져 있는 정남향의 좌향 봉분 상단 중앙에 3m×1.5m 깊이의 도굴 구멍이 남아 있다. 봉분 전면에 '의빈권씨지묘'라고 기록되어 있고 후면에 성화4년(1468)이라고 음각된 화강암재 짧은 묘표석(세로 78cm×가로 40cm×폭 10cm)이 자리하고 있다. 그 앞에 넘어져 있는 문단석과 170cm 크기의 또다른 문단석이 마주하고 있다.

의빈 권씨 묘역 바로 위와 밑에 민묘 1기가 각각 위치해 있다. 묘역 하단지역은 평탄지대로 조성되었고 주위에 많은 기와편이 산재해 있는 곳은 재실 건물지로 추정된다. 이 건물지 아래로는 재실에 오르는 돌계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빈권씨 묘는 스토리사격장 외곽선에서 약간 벗어난 지역에 위치해 있고 경기도 향토유적 제4호인 운성부원군 묘가 바라다 보이는 위치에 있다. 은성부원군 박종우는 태종의 사위로 정혜옹주와 합장되어 있다. 의빈권씨 묘역과 운성부원군 묘역이 하나의 권역이었다는 것을 가늠해주는 대목이다.

이 조사로 인해 기록상에도 남아 있지 않던 의빈권씨의 사망연대가 세조 14년인 1468년이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되었고 태종 사망 이후 중이 되었지만 불교의 관례대로 화장하지 않고 묘를 조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운성부원군 묘가 향토유적(1986년 4월 10일 지정)으로 보호받고 있는 것과 달리 이곳에서 1백여m도 떨어져 있지 않은 의빈 권씨 묘가 도굴될 정도로 방치되어 있다가 미군사격장 공사과정에서 실시된 문화재조사를 통해 드러나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역사학과 강성문 교수는 19일 "(의빈 권씨의 묘역을) 향토유적인 운성부원군 묘와 연결시켜서 다시 복원시켜야 최소한 향토유적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며 "도굴된 상태이기 때문에 운성부원군쪽으로 이장해 보존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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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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