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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웰 벨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13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국회안보포럼 초청 강연에 참석, '북한 군사력의 실체와 한미관계의 현주소'란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수영

지난 2004년 2월 3일 기이한 만남이 있었다. 토마스 허바드 당시 주한 미 대사의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의 면담이었다.

그때 한미 양국 정부는 주한미군을 한강 이남의 오산과 평택에 재배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은 "한강 이남으로의 미군 이동은 결국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로 이어질 수 있다"며 현 정부의 반미적 태도 때문에 이런 일이 빚어졌다고 맹비난했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재배치하기로 한 것은 주한미군을 동북아시아의 기동군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휴전선과 한강 사이에 존재하는 주한미군은 북한군 남침을 저지하는 역할로 고정돼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 유연하게 출동할 수 없다. 당시 주한미군 재배치는 전 세계적인 미군재배치(GPR·Global Posture Review)의 하나로 추진된 것이었다.

미국은 자국의 전략적 이해에 따라 추진하는 재배치를 강력한 동맹자인 보수진영에서 반대하니 곤혹스러웠다. 결국 허바드 대사가 최 대표를 만나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는 미국과 노무현 정부의 관계와는 상관이 없다"며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승리했더라도 재배치 계획은 추진됐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이후 보수진영에서는 주한미군 재배치에 반대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둘러싼 논쟁 역시 앞의 사례와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면이 있다. 보수진영은 전시작통권이 환수되면 한미동맹이 약화되고 주한미군의 철수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은 남북통일 뒤에도 미군의 주둔이 보장된다면 한국군에 전시작통권을 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한다.

일단 한국 정부는 2012년까지 전시작통권을 반환받겠다는 것이고 미국은 지난 7월 열린 제9차 한미안보정책구상(SPI) 회의에서 전시작통권을 2009년쯤 넘겨줄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늦게 받겠다는 것이고 미국은 빨리 주겠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이 전시작통권 반환을 서두르고 있는 셈이다.

전략적 유연성은 전시 작통권 환수의 예고편

전시작통권 환수는 일단 자주권과 관련된 것이다. 보수진영은 "혼자 국가 방위를 하는 나라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한국이야말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시작통권을 다른 나라에게 맡기고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엄연한 독립국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 미국의 요구에 의해 이뤄진 주한미군의 한강 이남 재배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 등은 결국 전시 작통권 반환의 선행 수순이라는 점이다.

현재 한미 양국은 한미연합사령부를 구성하고 있다.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을 겸직하면서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통권을 쥐고 있다. 그러나 그의 전시작통권 행사는 형식적으로는 한국과 미국 대통령의 동시 승인을 받아야 한다.

미국의 힘이 일방적으로 관철되던 때는 별 상관없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지나면서 한미 관계는 이전처럼 100% 일방적이지는 않다. 만약 중국-대만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주한미군이 출동하려할 때(전략적 유연성을 실제 발휘하려 할 때)는 오히려 한미연합사라는 틀이 미군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다른 해석도 한다. 미국은 장기적으로 동북아에서 한미일 3각 군사동맹 또는 나토와 같은 연합군사동맹을 추구하고 있다. 미군과 일본 자위대는 서로 병렬적인 관계다. 주일미군은 자위대에 대한 전시작통권이 없다. 그러나 현재 주한미군과 한국군은 수직적인 관계다. 한미일 3개 군대가 연합작전 또는 이에 준하는 행동을 할 경우 주일미군-자위대 밑에 한국군이 들어가게 되는 기형적 구조가 발생하는 것이다.

조성렬 국제문제조사연구소 기획실장은 "미국이 동북아에서의 군사동맹을 나토와 같이 전환하려고 할 때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통권을 갖는 것은 장기적인 발전 구도에 들어맞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13일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은 국회안보포럼 주최의 강연에서 "한국군과 미군이 독자사령부(independent command·일명 총괄지휘사령부)를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미연합사의 해체를 예고하는 발언이었다.

미운 정권 물어뜯기의 전형

▲ 1994년 12월 1일 <조선일보> 사설 '평시작통권의 중요성'.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전시 작전통제권까지 환수하는 것이 다음의 과제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 <조선일보> PDF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미국은 남북통일 뒤에도 주한미군의 주둔이 보장되고, 주한미군이 기동화·경량화·지역군화되어서 중국과 대결하는 데 방해받지 않는다면 한국이 생각하는 것보다 좀 더 빨리 전시 작통권을 줘도 큰 장애가 안된다고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시작통권을 한국에 돌려주겠다는 미국의 입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미국은 동아시아전략구상(EASI)과 넌·워너법안에 의해 7000명의 주한미군을 감축했다. 애초의 계획은 오는 2000년까지 주한 미군은 상징적 수준만 남고 전시 작통권도 한국군에게 반환하는 것이었다.

한국군이 평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한 것은 1994년 12월 1일이다. 44년만에 이뤄진 일이다. 당시 <조선일보> 사설의 내용이다.

"이로써 우리 군이 자주적인 국방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는 크다. 국가보위의 궁극적 책임은 당사국에 있는 것이 분명한 이상, 우리의 작통권은 우리가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전시작전통제권까지 환수하는 것이 다음의 과제다."

1994년이면 북핵위기로 그해 6월 전쟁 임박설이 나돈 지 불과 6개월 만이다. 1994년 12월에는 전시작통권을 빨리 환수해야한다고 했던 <조선일보>가 이제와서는 조기 작통권 환수 반대론의 선봉을 자임하고 있다. 논리의 일관성을 포기한, 미운 정권 물어뜯기의 사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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