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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재단 비리 폭로로 3인의 교사가 파면조치 당한 서울 시흥동 동일여고 재단 동일학원 문제가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다. 30여년 전 이 학교에 몸 담았다가 잘렸던 서울 한성여자중학교 고춘식 교사가 기고문을 보내왔다. 고 교사는 교장으로 정년을 마치고 평교사로 돌아간 선생님이다. <편집자주>
▲ 지난 5일 오후 6시, 서울 시흥동의 동일여고 앞. 지난달 28일 학교에서 파면조치를 받은 조연희(42), 박승진(48), 음영소(48)씨의 복귀를 원하는 200여 명의 전교조 교사들과 지역주민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 나영준
먼저 '동일학교' 관련 카페에 있는 글의 일부를 인용해 본다.

파렴치한 범죄로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도 인권이 있는 세상인데, 동일이라는 울타리는 어느 법이 적용되는 세상이길래 20년을 근무한 교사에게, 오직 학생들에게 행복한 교실, 신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했고, 사회에서 이를 인정하여 상까지 받은 분께 보복성 파면까지 시켜놓고 파면당한 지 불과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아직 짐도 꾸리지 않았는데, 교무실에서 본인의 자리에 앉은 지 불과 5분도 안 되어 수위 아저씨들에 의해 개처럼 끌려나가셔야 한다는 말입니까?


나도 그 학교에서 잘렸던 사람이다.

1973년 1월 중순쯤, 동일중학교 제1회 졸업생의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던 나는 겨울방학 중에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쓰느라고 며칠 간 정신이 없었는데, 원서를 마감하는 날 교무부장으로부터 이상한 통보를 받았다. '도서계 업무를 인계하라'는 것이었다.

원서를 쓰느라고 고생했으니 저녁 식사나 하자는 말이 아니라, 보따리를 싸라는 것이었다. 그런 통보를 왜 교감이나 교장이 아닌 교무부장이 했는지 아직도 이유를 모른다. 그런데 막상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지난해 이맘때도 이런 저런 이유로 보따리를 싼 동료들을 여러 명 보았기 때문이다.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건 아니다' 싶어 교감 선생님을 찾아갔다. 왜 제가 이 학교에서 나가야 합니까, 물었다. 절대복종에 익숙한 교감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 한 마디 못하고 코만 만지고 있었다.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느냐?'는 뜻이기도 했다. 교장실을 찾아갔다.

설립자이자 교장이었던 그분은 파이프 담배를 물고 나를 맞았다. 다시 물었다. 왜 저를 나가라고 하시는 겁니까? 그런데 반응이 아주 뜻밖이었다. 누가 그러느냐는 것이었다. 자기는 전혀 몰랐다는 투였다. 기절할 일 아닌가? 한 교사의 인사 문제, 목을 치는 문제를 교장도 모르게 결정하였다는 것이니 말이다.

순간 나는 이토록 자신의 인격을 포기할 수도 있는 한 인간 앞에서 숨이 '턱' 막혔다. 나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다시 물었다. 무슨 이유로 저를 내치는 것입니까? 그제서야 교장 선생님은 책상 서랍에서 서류를 꺼내더니, 학급의 성적이 다른 반에 비해 낮은 편이고, 수업료 납부 성적도 나빴다고 했다. 가정방문 때 받은 촌지를 조금 밖에 안 냈다는 말은 차마 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나는 단호하게 한 마디 했다. 저를 뽑아준 것은 교장 선생님 뜻대로였지만, 이 학교를 나가고 안 나가는 것은 제 뜻대로 할 겁니다. 그러자 교장 선생님은 끝까지 주도면밀함을 보여주었다. "나는 고 선생님에게 나가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런 며칠 후 환갑이 가까운 행정실장이 두 번이나 우리집까지 찾아와 사표를 내 달라고 애소를 했다.

고3 졸업비에 담임 양복값도 포함

바로 전 해인 1972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4월인가 5월에 가정 방문을 다 가라고 했다. 그리고 양심껏 받은 촌지의 반액을 교감 선생님에게 내라는 것이었다. 믿어지겠는가? 아무리 30여 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지만 이런 일이 도대체 믿어지겠는가 말이다. 학교가 나서서 촌지를 받으라는 것이고 게다가 반액을 양심껏 학교에 바치라는 것이다. 어떤 선생님은 자기 돈을 얹어서 내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60여 명 중에서 대여섯 집인가 방문을 하고 아주 적은 액수를 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당시의 동일중학교 학생들은 시흥동, 구로동, 독산동 등 아주 가난한 동네에서 다니는 학생들이 대부분인 데다, 10개 반 중 2개 반을 우수반으로 편성했기 때문에 내가 맡은 반은 촌지는커녕 오히려 라면 값이나 국수 값을 주고 와야 될 형편인 집안이 많았다.

동일학교에서의 교직 2년차, 그 꿈 많던 내 가슴은 그때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어디 나뿐이랴. 그 사건은 모든 선생님들을 처참하게 했다. 가정방문이 촌지를 받으러 가는 것이니 얼마나 기가 질렸겠는가. 그때 우리들은 저항할 생각은 차마 못하고 안으로 치명적인 상처에 시달리고 자괴감에 빠져야만 했다. 아이들과의 관계, 학부모들과의 관계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을 실감해야만 했다.

시흥동 산비탈에 세운 학교 땅 안에 살던 빈민가 몇 집이 있었는데, 학교 측이 어느 날 한꺼번에 쫓아내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얼마 동안 말미를 달라고 애걸하는 사람들을 미친 개 끌어내듯 가혹하게 다루었다. 그것을 목격한 선생님들은 혀를 내두르면서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껴야 했던 것도 기억에 선명하다.

또 하나는 제1회 졸업생이라고 졸업비를 걷으라는데 그 액수가 터무니없이 많았다. 3천원인가 4천원이었는데, 그 당시 교사 월급이 4만원 정도 했으니 아주 큰 돈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중에 500원은 담임 교사 양복값이라는 것이다. 3학년 담임 교사들도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10명의 3학년 담임 중에서 6명이 학교 밖 중국집에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3학년 담임들이 모인다니까 교감은 초긴장이었다. 6명의 뜻을 모아 내가 교감을 찾아가 졸업비가 너무 많으니 낮춰 달라고 했다. 정 안 되면 최소한 담임 양복값이라도 빼자고 얘기를 했다. 교감은 교장 선생님에게 건의하겠다고 했지만 졸업비는 단 한 푼도 줄어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 6명의 3학년 담임 중 서너 명이 나와 똑같이 보따리를 싸라는 통보를 받아 대부분 2월달 한 달치 봉급을 못 받았고, 졸업생들보다 먼저 그 학교를 졸업하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더욱 웃지 못할 일은 몇몇 반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이 없는 졸업식장에서 '빛나는 졸업장'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교육당국, 동일학원을 구하라

▲ 학교 측으로 파면조치 당한 교사들. 왼쪽부터 박승진(48), 조연희(42), 음영소(48) 교사.
ⓒ 나영준
어느덧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며칠 전 바로 그 학교가 3명의 선생님을 파면시켰다. 동일학교는 직영 급식과 위탁 급식을 번갈아 하면서 10억원의 이익을 남겨 전용하였고, 있지도 않은 동창회의 회비를 30여년 간 불법 징수하기도 했다고 한다.

2003년 교육청 감사에서는 15억여원의 회계 비리가 드러나서 61건의 행정 조처와 74건의 신분상 조처, 재단 관계자에 대한 1천만원의 벌금형 등의 철퇴를 맞았다. 그런데도 동일학교는 학교 비리를 폭로한 선생님들을 1년 5개월 동안 직위 해제를 시키더니, 재판부가 교내 천막 설치와 미신고 집회를 가졌다고 벌금 100만원을 선고하자 선생님 3명을 파면시켜 버린 것이다.

아, 30여 년의 그 긴 세월도 '동일 왕국'에서는 아무런 각성의 시간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를 어찌 설립자의 탐욕 탓으로만 돌릴 것인가? 한국의 사립학교라는 특별한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요, 서울 교육청과 사학의 그 끈적끈적한 관계의 결과물이 아니겠는가? 교육청마저 어찌 할 수 없는 사학이 아직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토록 부끄러운 학교가 오히려 30여 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구가하면서 5개의 학교를 거느린 교육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해마다 수천 명의 학생들과 학부모와 지역 사회에 절망을 가르쳐 주었고, 끝내는 불의와 비리에 저항하는 선생님들을 파면시켰던 것이며, 교무실 자신의 자리에 앉은 선생님을 개 끌어가듯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이런 만행들이 버젓이 자행되는 21세기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 어떻게 믿어지는가. 대한민국 아니, '대-한민국'의 교육이 아직도 얼마나 야만의 세월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처참한 증언들에 어찌 귀를 막을 것이며, 언제까지 눈을 가리고 있을 것인가?

▲ 고춘식씨.
교육 당국은 마땅히 이런 반교육적인 공간에서 절망하고 있는 학생과 학부모와 선생님들을 구해주어야 한다. 30여 년 동안 부정과 비리의 왕국을 방치한 교육 당국의 태도는 공범 행위나 다름없다. 교육 당국은 정당한 행정력을 포기한 결과가 얼마나 큰 절망을 재생산해 왔는가를 준엄하게 자성하고, 더 이상 이런 야만과 폭력이 지속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을 시급히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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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대필) 한성여자중학교 교장입니다. 한겨레신문에 '시조'를 연재하기도 했답니다. 이 분은 최근 서승목 교장선생님의 사망 사건과 관련 교장단이 서울시청 앞에서 시위를 열려고 하자 이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교장으로서 입장을 밝히기 위해 기자회원으로 등록했습니다. 앞으로도 교육 관련 글을 계속 싣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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