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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양산 웅상읍 서창대동아파트 게시판에 붙어 있는 '공고문'.
ⓒ 오마이뉴스 윤성효
경부고속철도(대구~부산) 천성산 구간 원효터널 공사 업체가 지하수 고갈 논란을 빚은 아파트 단지에 8000만원의 피해 합의금을 준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사실상 고속철도시설공단 측이 터널공사로 인한 지하수 고갈을 인정한 셈이어서 관심을 끈다.

대법원의 '도롱뇽 소송' 기각 결정(6월 2일)이 있은 지 보름 정도 지나서 기자에게 제보전화가 왔다. 경남 양산시 웅상읍 서창대동아파트 게시판에 공고문이 붙었는데, 천성산과 관련이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었다.

지난 24일 아파트에 도착해 살펴보았지만, 공고문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동 입구에 들어서자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명의로 된 공고문이 눈에 들어왔다. 공고문 제목은 '천성산 공사관련 피해사항 합의완료 공지'였다.

이 공고문은 6월 15일 부착되었으며, 아파트관리사무소는 1주일까지(6월 22일) 부착기간을 정해놓았다. 부착기간이 지난 탓에 상당수가 없어졌지만, 일부는 남아 있었다.

공고문에는 "당 아파트 뒤 천성산 고속철도 터널공사를 한국철도공단에서 시행한 뒤 현대건설, SK건설이 공사를 벌이다 우리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친 부분에 대해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입금이 완료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농협 계좌로 입금된 합의금은 8000만원이며, 이를 ▲지하수 보수 공사금(2000만원)과 ▲시 상수도 사용요금(1500만원)에 쓰고 ▲차액은 장기수선 충당금으로 전환한다고 되어 있었다.

아파트 지하수 고갈, 터널공사와 무관?

▲ 경부고속철도는 천성산을 관통하는데, 고속철도시설공단은 터널 가운데 지점에 사갱터널(오른쪽 작은 원 안)을 뚫었으며, 사갱터널에서 불과 600여미터 거리에 있는 서창대동아파트(왼쪽 큰 원안)의 지하수가 고갈되었다.
ⓒ 윤성효
고속철도시설공단 측은 터널공사와 아파트 지하수 고갈은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펴왔다. 지난 2월 <오마이뉴스> 기자가 공사현장에 갔을 때 공단과 현대건설 관계자들은 "겨울철 갈수기가 원인"이라는 주장을 폈다.

공단과 환경단체로 구성된 환경영향 공동조사위원들은 지난해 9월~11월 사이 천성산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공동조사단에서 보고서(2월말 대법원 제출)를 내기 전에 아파트 지하수 고갈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지난 2월초 환경단체는 공동조사 항목에 아파트 지하수 고갈문제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공단 측은 '별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공동조사위원들은 보고서를 통해 "터널 인근 계곡수와 대동아파트 지하수 고갈 민원이 있으므로 민원해소 차원에서 추후 적절한 지하수 조사가 요망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공동조사 보고서대로 한다면 대동아파트 지하수 고갈문제에 대한 정밀조사를 꼭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단 측은 아직까지 대동아파트 지하수 고갈문제에 대한 정밀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정밀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합의금으로 민원을 해결한 것이다. 주민들도 합의금을 받은 이상 민원을 제기할 수 없게 됐다.

"8000만원 합의금 지급, 결국 터널공사 탓 인정한 셈"

환경단체는 이번 합의는 공단 측이 아파트 지하수 고갈의 원인이 터널공사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 환경단체는 합의가 대법원의 '도롱뇽 소송' 기각 결정 이후에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은 "지금까지 대동아파트 지하수 고갈에 대해 공단과 현대건설은 관련이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면서 "그런데도 8000만원이나 줘서 합의를 했다는 것 자체가 공단측에서 아파트 지하수 고갈의 원인이 터널공사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재철 녹색연합 국장은 "주민과 현대건설이 합의했다는 것은 명백한 증거"라면서 "그동안 공단 측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해왔는데 8000만원이나 들여서 보상을 해 줄 이유가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서 국장은 "지난 2월말 공동조사 보고서에서는 대동아파트 지하수 고갈문제에 대해서는 정밀조사가 필요하다고 결정했다"면서 "정밀조사를 하지 않고 합의금을 주었다는 것은 공동조사위원들의 결정사항을 어긴 꼴"이라고 덧붙였다.

또 서 국장은 "지금까지 천성산 문제가 여기까지 온 것도 공단을 비롯한 정부 측에서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지 않고 갖가지 편법을 동원했기 때문"이라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공단에서 직접 나서지 않고 현대건설이 주민들과 합의하도록 한 것도 그렇고, 정밀조사 없이 주민들과 합의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현대건설 측에서 "피해보상이 아니라 대민지원금"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서재철 국장은 "지금까지 현대건설이 터널공사를 하면서 대민지원금을 준 적이 없고, 대민지원금을 주려면 대동아파트만 줄 게 아니라 인근의 다른 지역도 많은데 거기는 왜 주지 않느냐"라고 반박했다.

천성산대책위 관계자는 "이번 합의가 대법원 기각결정 이후에 이루어졌는지 의문"이라면서 "도롱뇽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지하수 고갈이고, 터널공사로 인해 인근 아파트의 지하수 고갈을 공단 측에서 인정한 것이라면 소송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인데, 대법원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 합의가 늦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천성산 터널 사갱터널 입구 모습.
ⓒ 윤성효

"합의했다는 말 처음 들었다" 관련사실 부인

고속철도시설공단 홍보팀 관계자는 "(이번 합의는) 본사에서 한 일이 아니라서 입장을 낼 수 없고, 영남지역본부에 물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고속철도시설공단 영남지역본부 관계자는 "대동아파트 주민과 현대건설이 합의했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8000만원은 시험 관정(管井 지하수를 퍼올리기 위해 땅속을 굴삭해 설치한 관 모양의 우물)에 필요한 돈을 준 것이지 피해보상은 아니다"면서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조율하면서 6월 중순경에 마무리 된 것이고, 민관공동조사 때 정밀조사에 합의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합의금은 현대건설에서 마련했고, 피해보상 차원이 아니라 대민지원금으로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합의가 대법원 기각결정 이후로 미뤄진 것에 대해 그는 "추측은 자유지만 대법원 결정과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양산시청 관계자는 "지난 1월말 아파트 주민들이 터널공사로 인해 지하수가 고갈된다며 민원을 제기했다"면서 "웅상읍사무소에서 주민과 현대건설 간에 회의를 열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합의가 이뤄져 주민들이 제기한 민원을 취하한 상태"라고 말했다.

서창대동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합의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갱터널 입구와 불과 630m 거리에 위치
지하수 고갈 피해 입은 서창대동아파트는?

1997년 완공된 서창대동아파트는 996세대가 살고 있으며, 관정을 뚫어 지하수를 주요 식수원으로 사용해오고 있다. 6개의 관정을 통해 하루 700여톤의 물을 사용해왔다. 이 아파트에 지하수 수압이 떨어지기 시작한 때는 올해 1월말께였다.

설날을 앞두고 갑자기 수량이 떨어지자 한때 소방차량을 동원해 식수를 공급받기도 했다. 서창대동아파트는 천성산터널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직경으로 원효터널(본선)과 1560m 거리이며, 원효터널 중간에 파고 들어간 사갱터널 입구와는 630m 떨어져 있다.

주민들은 양산시청 등에 터널공사로 인해 지하수 수압이 떨어졌다며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최근 주민과 현대건설 간에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주민들이 제기했던 민원을 취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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