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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송 전형필 탄생 100주년 특별대전 전시장 입구
ⓒ 이정근
우리나라 보물창고가 연일 인파의 공습을 받고 있다. 간송 전형필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특별전시회를 열고 있는 간송미술관이 바로 그 공습장소다. 지난 21일부터 오는 6월 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 이건 전시가 아니라 시장바닥을 방불케 하는 북새통이다. 이건 국보급 유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더욱이 평생을 민족문화 미술품 지키기에 바쳤던 간송의 뜻이 아니다.

지방선거 투표일이라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31일 오후. 화창한 날씨에 최대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보물창고에 파상 공습이 벌어진 것이다. 이건 전시회가 아니라 예상했던 사건이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바로 옆 성북초등학교 운동장까지 늘어선 장사진은 2시간여 만에 전시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뙤약볕에 짜증난 관람객들과 신경이 날카로워진 안내원들 간에 시비가 붙고 고함이 오고간다.

▲ 부채를 부치면서도 땀을 흘리며 관람하는 관람객
ⓒ 이정근
안내에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인파의 북새통과 더위로 인해 찜통이다. 국립박물관은 물론 구청에서 운영하는 문화관의 쾌적한 관람문화를 접했던 관람객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나이 어린 초등학생들이 땀을 뻘뻘 흘린다. 노트를 꺼내어 열심히 메모하던 학생들이 다 적지 못하고 밀려간다. 에어컨과 습도조절은 언감생심이다. 2~3명의 안내원은 밀려드는 인파에 속수무책이다.

관람객이 카메라를 꺼내어 사진을 찍자 구석에 있던 안내원이 쫓아가 “전원을 꺼라, 메모리를 지워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전시품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관람객도 문제지만 이건 아니다. 전시품마다 간략하게 안내문이 붙어있다. 더 자세한 것을 물으면 미술관에서 발행한 <간송화보>라는 사진첩을 사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건 관람객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전시회를 주최한 주최 측의 소화불량이다.

▲ 전시대 위에서 메모하는 학생들
ⓒ 이정근
국보로 지정된 훈민정음이 진열된 전시대는 얇은 유리로 되어 있다. 그 위에 수많은 학생들이 필기도구를 꺼내어 메모를 하고 있다. 밀려드는 관람객이 뒤에서 밀치고 있다. 음료수를 마시던 관람객은 그 위에 올려놓기도 한다. 이럴 때 유리가 깨지기라도 한다면 유물은 훼손된다. 하나뿐인 문화재가 파손된다면? 아찔한 생각이 든다.

훈민정음은 국보 70호로 지정된 우리의 문화재다. 훈민정음은 간송미술관의 보물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보물이다. 훈민정음은 국보 1호를 남대문에서 다른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을 때 후보 1순위에 오른 보물 중에 보물이다. 이러한 문화재가 위기에 처해 있다. 사설 미술관 간송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지경에 이르렀다.

▲ 훈민정음
ⓒ 이정근
이렇게 국보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인파의 공습에 간송미술관이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국보급 문화재가 위험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도자기, 그림, 글씨, 불상, 석탑 등 국보 12점과 보물 10점 등 수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은 우리나라 보물창고라 일컬어진다.

간송미술관 소장 유물을 연구하는 그룹을 간송학파라 지칭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겸제 정선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진경시대라는 담론을 만들어 냈다. 1962년 간송 전형필 타계 후 한국민족미술연구소와 간송미술관을 이끌어온 최완수 연구실장은 대쪽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컬렉터 전형필 역시 전설적인 인물로 통한다.

▲ 미술관 정원에 세워진 간송 전형필 흉상
ⓒ 이정근
구름 위를 날고 있는 학 69마리가 음각된 고려청자 명품 중에 최고 명품으로 통하는 '청자상감문매병'을 일본인 골동품상으로 부터 사들일 때 당시 시가로 집 20채 값에 해당하는 거금 2만원을 쾌척했고, 훈민정음을 구입하러 1천원을 가지고 경북 안동으로 내려가는 중간상인에게 1만1천원을 쥐어주며 “1천원은 차비요”했다는 일화는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전설이다.

전형필은 1906년 10만석지기 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수려한 인물에 감성과 지성을 겸비한 만득자였다. 휘문고보와 일본 와세다를 나온 인텔리였다. 그 많은 재산을 다른 곳에 탕진하지 않고 민족의 얼이 깃든 유물을 사들이고 보존하는데 아낌없이 투자했다. 고미술품을 보는 심미안을 틔워준 위창 오세창의 영향력도 컸지만 민족문화 지키기에 일생을 바친 개인 전형필의 의지와 그 공로는 위대하다.

▲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2층 전시장
ⓒ 이정근
하지만 간송미술관은 예전의 미술관이 아니다.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보화각 역시 1938년에 지은 건물로서 유물이 되었다. 2층 전시실의 조명은 12개의 수은등과 간접조명이 전부다. 유물을 수집한 간송이 혼자서 감상할 때나 간송학파 관계자들이 열람할 때는 알맞은 조명일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세계적인 박물관과 미술관을 보아온 국민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국보급 유물들이 초라해 보인다. 고미술품을 바라보는 국민의 의식수준도 높아졌다. 간송미술관이 사설 컬렉션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수많은 보물은 간송미술관 것만의 것이 아니다. 때문에 간송미술관은 국민의 보물창고다.

▲ 전시장에 입장하기 위하여 늘어선 인파
ⓒ 이정근
일 년에 두 차례, 봄 가을 보름씩 전시회를 갖는 간송미술관은 공개와 열람에 인색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것도 이번처럼 소장품의 진수를 뽑아 올린 것이 아니라 겸제, 추사 등 주제별로 전시했다. 이제는 열린 미술관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번 특별전시회에 밀어닥친 관람객이 그것을 증명한다. 국민은 간송미술관이 간직하고 있는 보물에 갈증을 느낀다.

덧붙이는 글 | 간송미술관 가는길 : 지하철 4호선 한성대역 6번 출구로 나와 성북동행 버스를 타고 성북초등학교앞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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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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