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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창사이후 최대위기에 빠졌다. 지난해 ‘넥스트 도요타(Next Toyota)’라며 세계 언론에 관심을 모았던 현대자동차. 하지만 올 들어 환율하락에 따른 수익성이 크게 나빠졌다. 이어 검찰의 현대차 비자금 수사가 터져 나왔다. 일부에선 ‘예고된 인재’라는 말도 나왔다. 지난 6년간 편법적인 문어발식 기업 확장과 1인 총수중심의 황제경영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위기의 현대차 원인과 대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 현대차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이 경영권 승계 문제까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몽구 회장의 경영스타일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1년 정주영 명예회장의 별세 당시 병실로 들어가고 있는 정몽구 현대차회장.
ⓒ 연합뉴스 하사헌
"파리 목숨하고 똑같지 뭐…. 좀, 허탈하기도 하지만, 그게 싫으면 봉급쟁이를 말아야지…. 다, 그래요."

1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적당히 술기운도 올랐다. 그리곤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25년 넘게 일했던 곳을 떠날 때 마음이 어땠느냐'라는 질문을 받은 뒤였다. 지난 1일 주말 저녁 서울 종로의 한 선술집서 만난 정현명(가명)씨. 한때 현대자동차에서 차기 CEO 군에 올랐을 정도로 사내외에서 인정받았던 그였다.

정씨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언론과 접촉하는 것 자체가 워낙 몸에 익숙치 않다면서 극구 사양했다. 또 요즘 같은 때 기자가 뭘 물어볼지 뻔한데, 할 얘기도 없다는 것이었다. 수차례에 걸친 설득 끝에 편하게 소주 한잔 정도만 하자며 자리를 잡았다.

정씨는 "요즘 신문들이나 TV나 시끄럽데요. 근데 언론들이…"라며 말끝을 잠시 흐렸다. 이어 "언론들이 정부나 이런 쪽을 깔(비판할) 때는 세게 쓰는데, 기업들, 특히 큰곳(재벌)은 잘 못써요"라고 말했다. 언론의 기업에 대한 감시 소홀을 질타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화나도 그런 정보를..."

그의 말이 이어진다.

"물론 참여연대인가에서는 삼성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던데, 현대차에 대해선 못 들어본 것 같다. (언론도) 사기업에 대해 접근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만 쓰고…."

자연스럽게 현대차 비자금 문제로 이어졌다. 화제는 검찰 수사였다. 압수수색할 때 글로비스의 비밀 금고 위치와 번호까지 훤히 알고 들어갔다는 이야기 등. 그는 "글로비스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내부에서 대놓고 말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라며 "근데 아무리 열 받아도 그렇지, 그런 정보를 검찰에 그대로 넘기다니…"라고 씁쓸해했다.

그는 "그것이 우리의 한계"라고 말했다. 무슨 의미냐고 되물었다. "삼성 같았으면 이런 일이 있었겠어요?"라고 정씨는 반문했다. '우리'라고 했지만, 사실상 정몽구 회장의 인사스타일을 꼬집는 말이었다.

"2인자가 좋은지, 나쁜지... MK 입장에선 크게 데어서"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생산된 수출용 승용차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 권우성
기자가 언론에선 이를 두고 '럭비공 인사'라고 자주 쓴다고 말했다. 그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이어 "그럴 만도 하지.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라며 "하기야 (정몽구 회장이) 한때 럭비선수도 했지. 아마"라고 넘겼다. 좀더 자세히 듣고 싶었지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현대차가 예전보다 좋아진 것은 정몽구 회장 덕이라고 하던데'라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씨는 "요즘 나오는 차들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은 맞다"면서 "MK가 품질 이야기를 많이 했고 직원들이 많이 고생했다. 연구 쪽과 공장은 정말 주말 반납하고 일만했다"고 말했다.

자리가 끝날 즈음에, '정 회장은 다른 그룹처럼 2인자나 가신그룹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고 기자가 말했다. 그는 "글쎄 2인자가 있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 잘 모르겠다"면서 "하지만 MK 입장에선 예전에 크게 (가신들한테) 덴 적이 있어서, 더 그럴지도…"라고 전했다.

지난 98년 외환위기 이후 현대그룹에서 분리되는 과정과 2000년 '왕자의 난'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당시 정몽구 회장은 그룹 회장 자리를 두고 동생인 고 정몽헌 회장과 대립각을 세웠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사람쓰는 스타일이 사람마다 다르긴 한데, MK 스타일이 회사를 이 정도 키워 놓은 것은 맞지. 하지만 그 와중에 직원이든, 임원이든, MK 눈에 들려고 좀 오버하면서 하는 경우도 있고…. MK 주변 사람들도 항상 불안해했다고…. 누가, 언제 치고 올라올지 모르니까…."

정씨는 마지막으로 "현대차가 막 크고 있는 과정에 이런 일이 터져 안타깝다"면서 "이번 기회를 통해 기업이든, 사회든 좀더 좋아졌으면…"이라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기로에 선 MK식 인사스타일과 리더십... 검찰 수사 이후가 더 문제

▲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 본사와 증축중인 현대자동차 연구센터 공사현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은 정몽구 회장의 미국 출국 이후 검찰의 공세가 거세지자 당혹스러운 모습이 역력하다. 특히, 검찰이 정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 사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취하고, 경영권 승계 문제까지 수사에 들어가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검찰 수사와 관련해 어떤 말도 하기 어렵다"면서 "(검찰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짧게 말했다. 그는 이어 "정 사장은 당초 예정대로 업무를 보고 있다"면서 "정 회장이 출국한 이후에도 회사의 경영에는 전혀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대차 내부에선 검찰 수사 이후가 더 문제라는 인식이 많다. 이번 검찰 수사가 회사 내부의 결정적인 제보에 이뤄진 점과 함께 정몽구 회장의 인사스타일에 대한 불만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차 한 임원은 "검찰 수사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수사 이후가 더 큰 문제"라며 "내부 구성원의 동요가 전보다 훨씬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이번 사건은 총수 1인 중심의 황제식 경영에 대한 사회적 논란과 비판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조진한 진보정치연구소 연구위원은 "총수 개인의 잘못된 말 한마디나 의사결정에 수십조원의 세계적 기업이 휘청거리고, 수많은 노동자들의 생존이 왔다갔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기업에서의 민주적인 내부통제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독일에서는 경영감시위원회 등에 노동자가 직접 참여하도록 법으로 보장돼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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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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