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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자동차가 비자금 조성 의혹 등으로 창사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사진은 울산 현대차 공장에서 생산된 수출용 승용차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 권우성

지난 31일 낮 서울 중구의 한 현대자동차 대리점. 매장 안에는 직장인으로 보이는 1~2명 정도가 산타페 앞에 잠시 서성일 뿐 한산해 보였다. 15년 동안 자동차 판매 일을 해온 박아무개(45)씨. 박씨는 요즘 신문이나 방송보기가 겁이 난다고 했다.

그는 "무슨 좋은 이야기가 있어야지"라며 "요즘처럼 언론에 현대차에 대해 나쁜 뉴스만 나오기도 드물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여기(대리점)까지 영향이야 미치지 않겠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면서 "고객들에게 예정 날짜에 차만 대준다면야…"라고 말끝을 흐렸다.

인근 또 다른 대리점 정아무개(36)씨. 명함에 '차량 전문딜러'라며 얼굴까지 넣은 정씨는 아예 차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그는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직장인들에게 신차를 알리려고 차를 갖고 나왔다"면서 "어떤 손님은 우스갯소리로 '요즘 (비자금 등으로) 회사가 어려워서 밖으로 나왔냐'고 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검찰의 현대차 비자금 수사 일주일째. 글로비스라는 계열사 비밀금고에선 수십억원의 현금이 쏟아져 나왔다. 금융브로커 김재록씨에게는 수십억원의 돈이 전달된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비자금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현대차 그룹의 성장과정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비자금이 기업인수 합병이나 신규사업 진출, 경영권 승계 등 그룹 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 현대차의 향후 경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자산 31조→56조, 계열사 10개→40개, 재계순위 5위→2위

▲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 본사와 증축중인 현대자동차 연구센터 공사현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2000년 초 현대그룹은 당당하게 재계 1위의 '맏형'이었다. 55개 계열사에 자산 91조원의 규모였다. 물론 주력은 자동차였다. 하지만 그 해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인사 파동으로 시작된 정씨 형제들 사이의 '왕자의 난'이 그룹을 덮쳤다.

그 이후 1년여 동안 현대그룹은 5개의 소그룹으로 나뉘었다. 형제들간의 교통정리인 셈이었다.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 그룹을 비롯해 ▲현대그룹(고 정몽헌 회장) ▲현대중공업그룹(정몽준 의원) ▲현대백화점그룹(정몽근 회장) ▲현대해상화재(정몽윤 회장) 등이다.

2001년 9월 그룹에서 분리될 때만 해도 현대차그룹의 자산은 모두 31조723억원이었다. 삼성과 현대, LG, SK에 이어 자산규모로 재계 5위였다. 당시 그룹 계열사는 98년에 인수한 기아차와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인천제철(현대제철), 현대캐피탈, 현대우주항공, 오토에버닷컴, 이에이치디닷컴, 현대강관, 삼표제작소 등 10여개 정도였다.

하지만 현대차는 곧 몸집불리기에 들어갔다. 2001년 다이너스카드(현 현대카드)를 사들이면서 금융사업에 뛰어든다. 이후 한국철도차량(현 로템)을 비롯해 자동차 부품업체인 본텍, 위아, 위스코 등을 추가로 인수했다. 해태타이거즈도 현대차그룹으로 들어갔다.

그룹 분리 1년 뒤인 2002년 현대차그룹 계열사는 26개로 늘어나고, 자산규모도 46조원으로 늘었다. 재계순위도 4위로 올라섰다. 현대차는 이후에도 계열사 편입과 사업을 넓혀 나갔다.

특히 지난 7월엔 이번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던 현대오토넷을 인수하는 등 지난 2월말 현재 그룹 계열사는 40개에 달한다. 작년 4월말 기준으로 자산총액이 56조원으로 삼성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작년 말 기준으로 현대차 그룹 매출은 87조원. 한 마디로 초고속 성장이다.

초고속 성장 뒤에 편법적 기업 인수합병?

하지만 이같은 현대차 그룹의 초고속 성장 뒤엔 편법적인 기업 인수합병(M&A) 의혹도 여전하다.

우선 불거진 곳은 '위아(WIA)'라는 이름의 자동차항공부품전문 업체다. 지난 99년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하면서 계열사가 됐다. 원래 회사이름은 기아중공업이었다. 하지만 그해 10월 현대차는 위아를 한국프랜지공업에 판다.

그리곤 2년이 지난 뒤 현대차는 위아를 3억여원에 다시 사들인다. 당시 한국프랜지공업의 대주주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고모부인 김영주 명예회장이었다. 업계에선 명의신탁 의혹이 나왔다. 위아는 현재 변속기 뿐 아니라 정밀종합기계 및 항공부품 등을 만들면서 크게 성장했다. 작년 매출액만 2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위아와 함께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은 본텍. 기아전자에서 출발한 자동차부품 업체다. 기아차에 주로 오디오를 납품해왔다. 특히 본텍은 지난해까지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주요 주주였던 곳이다.

작년 9월 현대차는 독일 전자회사인 지멘스와 함께 현대오토넷을 사들였다. 이 때 정 사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본텍 지분(30%)을 지멘스에 팔았다. 나머지 본텍 지분 70%는 글로비스(30%)와 기아차(40%)가 가지고 있었다.

당시 비상장이던 글로비스의 최대주주는 정 사장이었다. 현대오토넷은 이후 본텍을 합병했고, 이 과정에서 정 사장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평가이익을 올렸다.

이밖에 자동차 브레이크 등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카스코는 예전의 '기아정기'라는 회사였다. 현대모비스가 작년에 한국프랜지공업으로부터 인수했다.

위아, 본텍, 카스코 등 이들 세 회사 모두는 예전의 기아자동차 계열사였다. 기아그룹이 분해되면서, 화의기업으로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국민의 돈이 들어간 기업들이 편법적인 방법을 통해 현대기아차 그룹으로 다시 들어간 의혹이 일고 있는 것이다.

▲ 현대차그룹에 대한 검찰의 비자금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정몽구 회장이 지난 1일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다. 사진은 작년 5월 정 회장이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힌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 참석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자동차 회사가 철강·건설에 레저사업까지?

편법적 기업 인수합병 논란과 함께 현대차는 자동차 이외의 사업에도 손을 뻗쳤다. 대표적인 것이 철강과 건설사업이다.

지난 2004년엔 현대INI스틸(현대제철) 컨소시엄을 통해 옛 한보철강의 당진공장을 사들이면서 본격적으로 철강사업에 뛰어들었다. 최근에는 오는 2011년까지 당진에 고로를 건설해 일관제철소 사업에도 뛰어들기로 했다.

비상장 건설 계열사인 엠코도 마찬가지다. 당진의 제철소 사업뿐 아니라 검찰의 인허가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양재동 그룹 본사 사옥 건설도 이 곳이 맡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건설 물량을 독차지하고 있으며, 최근엔 아파트 건설에도 참여하고 있다. 엠코는 정의선 사장이 25.06%로 최대주주다.

이밖에 현대차그룹은 작년 5월 자체 종합광고대행사인 이노션을 만들었고, 6월엔 해비치레저를 설립하면서 관광레저사업에도 진출했다.

김진방 인하대 교수(경제학부)는 "세계 어느 자동차 회사도 자동차 철골을 제공받기 위해 제철사업에 뛰어든 곳은 없다"면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출발한 현대차가 철강과 레저사업 등까지 간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이번 현대차 사태의 핵심은 총수 1인 중심의 패쇄된 의사결정구조와 계열사간 투명하지 못한 순환출자식 지배구조"라며 "어떻게 보면 언젠가는 터질 만한 '예고된 인재'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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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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