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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을 최고 정점으로 한 학급조직표, 군대의 지휘체계를 연상케한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차별과 소외를 당연하게 여기도록 만든다.
담임을 최고 정점으로 한 학급조직표, 군대의 지휘체계를 연상케한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차별과 소외를 당연하게 여기도록 만든다. ⓒ 임정훈
맨 위에 담임을 기준으로 아래에 반장을 두고 그 아래에 부반장과 각 부장들을 '서열에 따라' 정리해놓은 게시물은 마치 군대 조직의 지휘 체계표를 연상케 한다. "명령과 복종만이 살길이다"라고 외치며 상부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하는 군대의 권력 구조를 그대로 흉내 내고 있는 것이다.

담임은 최고의 절대 권력자이며, 그의 명령은 아래로 지시·전달된다. 반장·부반장을 비롯한 각 부서의 부장들 역시 나름의 서열구조 속에서 그 명령을 실천하거나 학급에 전파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더구나 그 게시물에는 학급에서 '한자리' 씩 맡은 아이들의 이름만 들어있을 뿐 정작으로 학급을 구성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없다. 그들은 학급의 임원이 아니므로 '학급임원표'나 '학급조직표'에서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사람이 아니니 당연히 사람으로서 정당하게 누릴 수 있는 인권도 없다. 정작 학급을 구성하고 지탱하는 것은 이름을 삭제당한 다수의 아이, 바로 그들인데 말이다. 이름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느끼게 될 소외감이며 위화감은 또 얼마나 클 것인가!

'한자리'를 하지 않고서는 결코 사람다운 권리를 누릴 수 없고 그러한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결코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을 학교는 '환경미화'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만다. 차별과 소외 그리고 맹목적인 복종이 당연하다고 아주 친절한(?)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학교, 미물에도 존재 이유와 가치를 둔 조상의 삶의 철학이 필요한 곳

심지어 인근의 다른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이름은 아예 없고, 교장·교감과 담임교사의 이름만이 '찬란하게' 걸려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출석부의 해당 학생 이름 옆에 '반장' 혹은 '○○부장' 등으로 표시를 해 놓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앞의 경우는 교장·교감의 이름을 아이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존경심을 일깨우는 차원에서 생각해 낸 것이라 하고 뒤의 경우는 그 학교의 오랜 관행이라고 하는데, 앞뒤 문맥이 통하지 않는 설명에 씁쓸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ㅅ학생(고교생)은 "그딴 거에 별로 신경 안 쓰는 편인데, 가끔 그런 게시물을 보면 기분이 안 좋아요. (차별받는데) 기분 좋아지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

우리 조상은 하찮은 미물에도 다 나름대로 존재하는 이유와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절대 함부로 해코지를 하지 않고 존중하며 그들과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와 철학이 있었다.

조상의 그런 삶의 자세를 본받아야 할 곳이 바로 지금의 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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