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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는 두려워하지 말고 들으면 된다. 듣고 소통하고 개선하면 된다. 청소년들을 위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소통 자리를 마련하며 세상에 알리는 일이다."-최순영 의원 2005년 국정감사 정책 자료집 <학생 자치 실태 보고서>에서

▲ 두발 자유를 외치며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진행중인 네티즌 청원 화면
ⓒ 임정훈
학교에서 맞닥뜨리는 기이한 풍경 두 가지

학교에 있다 보면 해마다 어김없이 보게 되는 기이한 풍경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졸업식 풍경. 이날 졸업생들은 누구랄 것 없이 모두 어른스러운 옷차림과 최신 유행하는 머리모양을 하고 졸업식장에 나타나 잘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다른 풍경 하나는 학기 초 학교에서 지시한 대로 '규정'에 맞추어 짧게 깎고 다듬어 온 신입생과 재학생들의 머리 모양이다.

▲ 학교의 '규정'과 '단속'을 피해보려고 머리숱을 쳐내고 길이를 조절하여 샤기컷을 흉내 낸 학생의 머리 모양
ⓒ 임정훈
졸업생들이 알아보지 못할 만큼 머리를 기르고 가꾸어 졸업식장에 나타나는 이유는, '재학생' 신분으로 학교에서 강요당한 두발과 복장에 대한 불만을 최신 유행 옷차림과 머리모양으로 보란 듯이 비웃어주겠다는 욕망의 꿈틀거림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학교와 교사가 '규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두발과 복장의 억압에 대해 아이들은 졸업식을 결전의 날로 삼아 일종의 '플래시 몹(flash mob, 어떤 행위 참여자가 폭증하는 현상)'을 감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졸업식은 졸업생에게는 자유와 해방의 날이고 재학생에게는 마냥 부럽고 속상한 날인 셈이다.

반면 낯선 환경에 잔뜩 주눅 든 신입생들과 학기 초의 살벌한 분위기 잡기에 걸려들지 않으려는 재학생들의 '눈치'가 만들어낸 삭발에 가까운 짧은 머리는 3월의 학교가 특수한 사람들의 수용소 같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샤기컷', 그리고 편법을 강요하는 학교

그러다보니 억울하고 아까운 생각에 편법(?)을 쓰는 아이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요즘 유행하는 머리모양 가운데 '샤기 컷(혹은 샤기 스타일, 머리끝을 가볍게 커트하는 것)'이라는 게 있다.

▲ 학교(교사)의 두발 단속에 걸려 '반삭'을 하고 항의의 표시로 '스크래치'를 넣은 모습.
ⓒ 임정훈
머리에 층을 내며 머리숱을 잘라주는 것으로 '깃털처럼 가볍다'라는 뜻을 지닌 '섀기(shaggy)'의 일본식 발음 '샤기'에서 유래된 기술이다. 아이들은 샤기컷으로 머리카락 길이를 조절하고 머리숱을 많이 쳐 머리가 짧아보이게 한다.

눈치껏 자른 샤기컷은 아까운 머리카락을 그나마 남겨두는 효자 노릇을 제대로 한다. 물론 긴 머리를 잘 다듬어 손질하는 원래의 샤기컷과는 많이 달라진 모양이 나오지만 그래도 아이들한테는 '소중한 희망'이다.

그것도 결국 지도교사에게 걸리면 '반삭(삭발의 절반 정도 길이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을 뜻하는 은어)'의 운명을 맞아야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편법'을 통해서라도 스스로를 지키고 싶은 것이다.

학교(교사), 학생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학교(교사)는 지키고 보호해야할 당연하고도 소중한 아이들의 권리를 무시한 채 무조건 복종을 강요하고 아이들이 '편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강요의 채찍을 휘두르고 있다.

전국 시도 교육청 자유게시판은 두발자유를 향한 아이들의 울부짖음으로 쟁쟁한데 학교(교사)는 강제해야 한다고만 판단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3월 8일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학생의 두발·복장 검사 금지, 0교시 금지, 강제 야간자율학습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른바 학생인권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학생 두발 자유 기본권으로 인정 되어야
인권위, 교육부장관 각 시도 교육감에게 권고

"학생의 두발 자유는 개성의 자유로운 발현권이나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자유 등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적 권리로서 인정되어야 하며, 학생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두발 제한 규정을 근거로 학생들의 두발을 일률적이고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헌법 및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부합하지 않으며 특히 강제적으로 학생의 머리를 자르는 것은 인격권에 대한 침해이다."-학생의 두발 규제와 관련, 국가인권위원회가 2005년 7월 4일 교육부장관과 각 시도 교육감에게 권고한 내용 인용
학교에서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인권 교육을 강화해 부당하게 학생들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것을 막자는 것이 입법 발의의 취지라고 한다.

이미 있는 법률들만 제대로 지켜졌어도, 아니 학교(교사)가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는 최소한의 노력만 있었어도 이처럼 구체적 내용을 명시한 또 다른 법률이 만들어질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을 진정하며 이를 계기로 우리 학교가 아이들과 진정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는 곳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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