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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하루만 더 교복입고 야자해보고 싶지 않아?"
ⓒ 인터넷 캡처

졸업식을 하루 앞둔 저녁, 평소처럼 아이들의 미니홈페이지 구경(?)을 다니고 있었다. 그 가운데 승섭이의 미니홈피 방명록에는 지혜가 올린 글이 있었다.

"딱 하루만 더 교복입고 야자해보고 싶지 않아? 난 그런데. 졸업이라니 믿기지가 않아."

@BRI@정규수업 후 달과 별이 뜰 때까지 학교에 남아서 공부를 해야 하는(혹은 '하는 척' 해야 하는) 야간자기주도학습, 이름하여 '야자'. 고교 3년 동안 그토록 지겹고 힘들었으며 언제든 기회만 있다면 도망치고 싶었던 바로 그 '야자'.

그런데 막상 익숙했던 그것과 영영 이별하는 날이 내일이라 생각하니 악몽마저도 추억으로 부풀어올라 설렜던 것일까? 딱 하루만 더 교복을 입고 야자를 하고 싶다니……. 나는 강요와 억지로 유지되는 강제 야자가 딱 하루만이라도 없어졌으면 좋겠는데.

아무려면 정말 야자를 다시 하고 싶어서 그랬을까. 아닐 것이다. 그저 자신이 지나온 3년 동안의 가혹한 날들에 대한 '너그러운 용서'의 표현일 거라고 내 마음대로 해석을 하고 만다.

졸업식장에서 두발 자유를 외치다!

이튿날, 드디어 졸업식이다.

어느 학교든 졸업식의 풍경이란 특별할 게 없다. 교복 빛의 단조로운 풍경이던 학교가 잠시나마 축하의 꽃다발과 함께, 성장(盛裝)을 하고 나타난 졸업생과 가족들의 화사한 차림에 잠시나마 반짝인다는 것 말고는 똑 같다.

졸업식장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아이들(졸업생)들의 옷차림과 머리 모양이다. 여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남학생들도 검정 색 계통의 정장을 입고 색깔 있는 넥타이로 한껏 멋을 부리고 나타난다. 일부 남학생들은 컬러로션으로 가볍게 화장(?)까지 하고 뽀얀 얼굴로 나타나기도 한다.

물론 그 가운데 단연 압권은 머리 모양이다. 재학생 시절 그토록 목숨 걸고 사수하고자 했던 머리카락. 단 1mm라도 더 길러보고 싶었던 구레나룻이며 자연스럽게 구불구불해진 파마머리……. 아이들은 졸업식에서 그 피맺힌 한을 풀어헤치고야 만다.

아이들의 머리 모양이나 차림새로만 봐서는 졸업식 정도에 와서는 안 될 것 같다. 붉은 융단이 길게 드리워진 무슨 영화상에 주연상 후보쯤으로 나가거나, 최신 유행곡을 부르며 무대에서 활보를 해야 할 것만 같다.

온 몸으로 보여주는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 오등은 자에 아 두발의 자유와 두발의 자유인임을 선언하노라!

두발 규정의 시퍼런 칼날에 아직도 떨고 있는 재학생들이여, 억울하면 빨리 독립하라 아니 졸업하라?

ⓒ 임정훈

종환이의 2학년 때의 머리 모습(왼쪽)과 3학년 때 두발규정에 걸려 '반삭'을 하고 항의의 표시로 스크래치를 넣은 머리 모양(오른쪽). 기자의 연재기사 '숲페의 학교와 인권이야기 3'편에 참고 사진으로 제공하면서 얼굴을 가렸다.

ⓒ 임정훈

졸업식장에 나타난 종환이의 모습. 잘 길러 빗어 넘긴 머리와 크고 검은 안경과 빨간 넥타이가 시상식장의 영화배우와 다르지 않다.

ⓒ 임정훈

머리를 길러 약간의 웨이브가 들어간 파마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거기에 멋진 모자를 쓰는 것으로 한껏 멋내기를 했다. 이들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발검사를 받기 위해 학생부에 들락거려야 했고 짧은 스포츠형 머리였다.

ⓒ 임정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빨갛고 노란 색으로 염색을 하고 졸업식에 나타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지금은 이 정도면 대단한 파격이다. 물론 졸업생이 아닌 재학생으로서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스타일이다.

ⓒ 임정훈

신라시대나 조선시대에도 남성들이 귀고리를 착용했다는 기록과 연구가 있다(조희진, <선비와 피어싱>, 동아시아, 2003). 21세기에는 남학생들도 귀를 뚫고 귀고리를 한다. 물론 재학생일 때 그렇게 하다 걸리면 징계를 받는다.

하지만, 졸업생은 다르다는 것.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다. 본인의 의지만이 있을 뿐. 그래서인지 큼지막한 귀고리를 달고 졸업식에 왔다(왼쪽). 그러나 졸업식이 끝날 즈음 귀고리가 너무 크고 무거워 귀가 아프다며 귀고리를 빼 버렸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소리내어 웃었다. 억압과 자유(혹은 자율)사이의 즐거운 충돌, 유쾌하지 않은가!

머리 모양이나 길이를 두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나 규정은 이제 없다. 그런데도 아이들의 머리 모양은 대체로 비슷하다. 이른바 최신 유행 스타일을 좇기 때문이다(오른쪽). 결국 오랜 억압 이후 주어지는 자유(혹은 자율)에는 다양성은 사라지고 유행만 남았다. 씁쓸하다.

ⓒ 임정훈

재환이(왼쪽)와 희석이(오른쪽)의 파마도 졸업식의 파격적 장면 가운데 하나였다. 카메라 앞에서 재환이는 자신 있는 뒷모습을, 희석이는 특유의 독특한 표정을 지어줬다. 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이들의 머리 모양에 머물다 갔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에 사용된 사진은 어떤 이유로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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