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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시대를 거스르는 궤변은 그만 두시오> 기사를 통해 권오성 기자가 펼치고 있는 반론의 핵심은 도대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낡아빠진 '유교'타령이냐는 것이고 나라가 발전하려면 교육 경쟁력이 향상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실용적 교육'의 뒷받침이 있어야 하고 교원에 대한 적절한 평가 역시 이 '실용적 교육'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반론은 한마디로 말하면 도올의 글을 심하게 왜곡하고 있다. 김 교수의 외침에 대해 헛발질만 한 게 아니라 그 취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첫째, 권 기자는 "흐르지 않는 물은 썩게 되어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교육방법도, 교육제도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순리이고, 교육철학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순리이다. 도올은 어찌 이것을 거부하려고 하는가"라고 말하고 있다. 절대적 진리는 없다는 말에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교원평가가 교육환경 전반에 대한 개선안이 될 수 있다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고 자기 독단의 단순화 추론으로 도올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왜곡하며 비판하고 있다. 도올이 변화를 거부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새로운 것은 좋은 것'이라는 논리밖에 없다.

교원평가제는 동료 교사와 학생, 학부모 등 다양한 교육주체들이 참여해 교사의 수업활동을 평가하는 제도라고 한다. 무능하거나 부적격한 교사를 가려내야 한다는 것이 평가제 도입의 가장 큰 이유이고 공교육의 내실화와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게 교육부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도올은 충격적이라 할 수 있는 '서울대 폐지'까지 주장할 정도로 한국 교육 현실의 근본을 개혁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교육의 상부 구조 문제는 도외시하고 하부 단위의 '단순 교육자'인 교원의 자질을 평가함으로서 한국이 안고 있는 교육문제가 개혁되겠는가 하고 진단한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의 처방은 교원자질 평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입시제도와 교육제도에 있으며 따라서 이를 먼저 바로 잡지 않고 무슨 본질적 개혁이 이루어지겠는가 하고 되묻고 있다.

도올은 또 "교사가 실행하는 교육의 내용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인지, 교사의 품성을 어떻게 점수화하여 평가한다는 것인지 모호하다"고 비판했다. 도올은 교원평가제를 명백한 근거가 없는 신기루만 조장하는 관료들의 장난일 뿐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말은 그럴 듯하지만 평가의 방법과 내용을 보면 전혀 비현실적이고, 평가주체들의 역량 부족과 이를 실행할 만한 교육현실의 체계 미비로 인하여 교사의 자질이 아닌 외부적 요인에 의해 교사의 품질이 결정될 것이라는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권 기자는 "유교윤리는… 교육의 위계화를 만들고, 차별화를 만들고, 고시제도를 만들고, 작금의 교육대란을 형성해온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오히려 민국(민주공화국)이 된 지 60년 세월에 유교윤리는 오히려 한국사회의 저발전을 유인한 비효율적인 교육윤리였음은 이미 인지되어 있는 바이다"라고 유교 자체에 대한 부정적 논리를 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교육철학이 지향하는 바는 민주사회이다. 민주교육철학과 유교교육윤리가 같다고 보는 것인가? ... 이 나라의 교육철학이 토대도 분명치 못하고 약하다고 해서 유교윤리로 그것을 대신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비판했다. 도올이 유교 교육윤리를 설파하고 있다는 논지다.

권 기자에게 묻고 싶다. '민주교육철학'이라는 학문이 도대체 무엇인가? 내가 과문하여 그런지 그런 학문은 들어본 적이 없다. 혹시 정치적 주장을 담은 신조어는 아닌지 모르겠다. 존 듀이의 '민주주의와 교육'의 사상을 빌어 이렇게 표현했다면 그것은 정말 교원평가와는 전혀 관련 없는 철학이다.

도올은 그의 글 어디에서도 교육철학을 유교교육윤리로 대체하자고 주장한 적이 없다. 권 기자는 무슨 근거로 이렇게 추론하고 도올을 논박하는지 의아할 뿐이다. 마치 '안티 도올' 수준의 비약이 아닌가 싶다. 도올은 "우리나라 기업의 장점의 근저에는 유교적 합리성의 성과가 자리잡고 있다"고 하면서 그 가치들이 현대 한국사회의 전진을 도모하는 도덕 질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바, 어감이 좀 강하긴 하나 "유교적 가치의 핵심은 교권의 존엄이요 지엄이다"라고 하면서 '한국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한 분야를 뒤엎는 단순한 교사평가제도를 중단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유교적 근거에 의거하면 무조건 썩은 것이고, 낡은 것이란 말인가. 이는 유교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며 내용을 무시한 단순화 오류다. 유교적 정신의 근간이 한국의 윤리 근간이지 미국의 존 듀이가 외친 실용주의 철학이 우리의 정신세계이고 이를 바탕으로한 실용주의 철학이 한국 교육의 근간은 아니다.

한국에 한국철학이 있듯이 미국엔 미국 철학이 있다. 각자 자기의 문화 역사에 맞게 진화하는 것이다. 유교 역시 절대적인 규범속에서 불변의 진리처럼 굳어진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 맞게 변화 발전하고 있다.

권 기자는 미국식 실용주의적 메카니즘을 도입하면 한국 교육이 현대화되고 향상된다고 주장하나 그에 대한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교원평가를 하면 교육현장의 썩은 물이 없어지고 신선하게 흐른다고 누가 감히 보장할 수 있겠는가. 이런 주장도 하나의 '입장'에 불과한 것이며 도올은 이에 대해 강한 톤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이지 궤변을 말한 것은 아니다.

몇몇 문제 교사를 퇴출시키려고 평가제도를 만든다든가 또는 평가제에 의하여 교육현실이 우수하게 개선될 것이라는 허울 좋은 제도를 만드는데 힘을 쏟을 게 아니라 진정 이 땅의 대학교육과 그 입시 제도 그리고 우수 교원양성 제도를 연구하는 것이 우선 순위여야 할 것이다.

교육현장을 독단과 부패의 고리로 부터 끊는 '사학법'을 개정하거나 온통 입시로만 쏠린 한국 고등교육 현장을 개선하고 성심껏 교육에 매진할 수 있도록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국 교육 수준이 진보하고 부족한 교사들이 퇴출되거나 재교육되는 것이다. 앞뒤가 바뀐 평가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현재의 교육환경이 개선된다고 본다면 농담이 너무 심한 것 같다.

왜 갑자기 모든 교육문제가 초중고 교사의 수준문제로 귀결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땅의 참스승은 다 어디에 갔는가. 아예 다 계급장 내려놓고 평가하자고 하고 싶다. 장관도 교육관료도 사학재단 이사장도 교장도 총장도…. 부자 동네에선 교사의 평점이 학원 선생의 평점보다 낮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웃지 못할 현실을 외면하고 튀어나온 교원평가야말로 궤변이 아닐까.

교원평가제 논란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이 있다. 서울대 개혁에 대해서는 입 한 번 뻥끗하지 못하면서 힘없는 교사들만 대상으로 교육 개혁을 외치는 철학의 빈곤과 교육행정의 단순함을 다시 한 번 사무치게 느낀다. 나는 개개인의 입장을 떠나 근본을 보자는 도올의 글을 다시 한번 겸허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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