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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받는다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아랫사람에게 받는 평가는 더욱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사실 교사에 대한 평가는 불가능하다. 백번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교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다 그렇다. 심지어 사형 선고를 받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 인간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불가능하다. 예수도 십자가 사형수 아니었던가. 다만 우리는 한 인간이 행한 어떤 행동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학생이 교사의 인격을 평가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교사가 학생의 인격을 평가할 수도 없다. 아니 나름대로야 평가할 수도 있겠으나 이를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교사의 수업행위에 대해서 학생들은 얼마든지 평가할 수 있다. 교사가 학생의 학업행위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수업(또는 학업)에 임하는 성실성이나 수업(또는 학업)을 위한 준비성이나 수업(또는 학업)의 결과 등에 대해서는 충분히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평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업의 결과가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았을 경우, 교사는 수업 내용을 학생 수준에 맞게끔 가르쳤는가, 혹은 학생은 학업에 정말 열심히 임했는가 하는 문제들을 우리는 충분히 따지고 평가해볼 수 있는 것이다.

교사들의 인격에 관하여 도올은 '2천여 년의 유교전통을 지닌 우리 나라의 교육자의 양심과 양식이 아직 그런 수준에까지 변질되어 있지는 않다'라고 단언한다. 정말 그런가. 제자에 대한 성추행으로 섬이나 벽지로 귀양(?)갔던 교사가 더 많은 점수(벽지 근무는 점수가 더 높다)를 얻어 더 빨리 승진을 하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말이 도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결코 적절하지 못한 선언이다.

퇴계 서원에 모인 학생들이야 퇴계 선생의 가르침에 승복(평가다)했기에 남아있는 것이고 만일 그들 중에 퇴계 선생의 가르침을 수용할 수 없는(이것도 평가다) 학생이 있었다면 그는 그곳을 떠나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우리의 학교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결코 승복할 수 없는 스승이라 해서 수업을 안 듣고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저 자기들끼리 모여 수군대며 씹다가(?) 들키면 버르장머리없는 놈들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학생 놈이 그러면 안 된다고 꾸중듣기가 십상이다.

학생의 평가를 거부함으로써 스승의 권위가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스승의 권위는 평가를 통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 가르침과 행동이 진정 제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했을 때, 진정한 교권이 생겨나는 것이다. 점수를 매겨서 교사의 질을 평가하는 게 마땅치 않다고 해서 이를 근본적으로 거부할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 봉건제 사회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평가의 대상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설사 그 평가가 불완전하다고 해도 말이다. 어차피 불완전한 인간이 불완전한 평가를 통해 그나마 그 불완전함을 보완해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임을 어찌하랴.

교권은 반드시 평가를 통해 지켜져야 한다. 학생들이 그 수업을 어떻게 들었는지, 교사가 학생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수업에 대해 열의가 있는지 등에 대한 학생들 나름의 판단을 공식화해서(이는 점수가 될 수밖에 없다) 드러낼 필요가 있다. 사실 이제까지 교사에 대한 평가를 학생들이 안 해왔던 것이 아니다. 언제나 스승은 제자들의 평가 대상이었다. 스승으로 모신다는 자체가 벌써 평가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제까지는 그 평가를 겉으로 공식화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변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교사에 대한 학생의 평가를 숨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평가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교사에게 못할 짓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교사 자신이 그 평가를 솔직히 받아들이고 자기 성숙과 반성의 기회로 삼을 것을 요구한다. 비록 그러한 평가가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학생들의 교사에 대한 평가를 믿을 수 없다면 과연 교사들의 학생에 대한 평가는 믿을 만한가. 더 이상 학생의 비전문성을 내세워 교원 평가를 반대하지는 말자. 전문적이라고 평가를 잘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업에 관한 한, 수년 간 각양각색의 교사들로부터 수업을 들어온 학생들을 비전문가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수치화되어진 교원 평가를 절대화해서도 결코 안 되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를 빌미로 수치화되는 평가 자체를 거부한다면 이는 교사들의 철밥통 고수 전술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면키가 힘들 듯하다. 그게 이 시대의 흐름인 걸 어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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